사람들을 칭찬할 때에 우린 대개 이렇게 칭찬을 합니다. 어린 아기들을 보고 ‘참 예쁘다’라고 칭찬합니다. 좀 더 커서 10대를 보고는 ‘참 착하다’고 칭찬합니다. 20-30대를 보면 ‘참 똑똑하다’라고 칭찬합니다. 40-50대는 ‘인격적이다’라고 칭찬합니다. 60-70대가 되면 ‘덕이 있는 분이다’라고 존경을 표합니다. 80이 넘으면 ‘어르신’이라는 표현으로 역시 존경합니다. 예쁘고, 착하고, 똑똑하고, 인격적이고, 덕이 있는 분이라고 해도 그들에게서 ‘감사’가 없다면 진정한 인격자는 아닐 것입니다. 하나님은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감사하는 것도 유형이 있습니다. 무엇인가를 가졌기에 감사하는 ‘소유형 감사’가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가진 것 때문에 감사를 합니다. 그러다가 가진 것을 잃어버리면 속상해하고 원망하고 불평합니다. 그런가하면 가진 것이 없어도 감사하는 ‘존재형 감사’가 있습니다. 내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 그 자체가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즉, 내가 살아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범사에 감사하며 사시기를 축복합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유형을 3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첫째형은 은혜를 알고도 은혜를 잊어버리는 사람들입니다. 이것을 배은망덕이라고 합니다. 배은망덕한 사람이 있습니다. 둘째형은 은혜를 알고도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이것은 교만한 사람입니다. 이기적인 사람입니다. 셋째형은 은혜를 받고 감사할 줄 아는 사람들입니다. 인격이 성숙한 자요, 신앙인의 모습입니다.
감사할 때 우리의 믿음은 더욱 굳센 반석 위에 세워집니다. 감사할 때 우리는 더욱 큰 은혜 안에 머물게 됩니다. 감사할 때 우리의 영혼은 더욱 하나님께 가까이 다가설 수 있습니다. 감사가 넘치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감사가 넘치면 축복이 넘쳐납니다. 감사가 넘치면 삶이 새로워집니다. 똑같이 예수님을 믿고 살면서도 행복을 느끼며 사는 사람이 있고, 스스로를 불행하게 여기며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고 부유한 사람은 누구일까요? 은혜를 알고, 감사할 줄 아는 사람들입니다. 이 시대의 안타까움이 있다면 은혜를 망각하고 산다는 점입니다. 은혜를 모르면 감사를 잃어버립니다. 감사를 잃어버리면 늘 원망과 불평의 삶이 됩니다. 영국의 성서학자인 메튜 헨리는 ‘감사는 더하기와 같다’고 했습니다. 내 입술에 감사가 넘치면 마음에 기쁨이 있고, 평화가 있습니다. 세상이 아름답게 보입니다. 반대로 원망과 불평은 마이너스(-)와 같습니다. 이미 주어진 것도 빼앗기게 됩니다.
감사의 말을 하는 것입니다 (살전 5:18)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인간의 언어중추신경이 모든 신경계를 지배한다는 것입니다. 뇌에 대한 발명 중에 놀라운 것은, 말이 모든 다른 신경을 지배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언어중추신경이 가장 중요합니다. 성경은 네 입의 말로 죽고 산다고 말했고, 네 입술의 말이 너를 지배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과학적으로 이것이 검증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감사’라는 말을 하면 우리의 뇌는 감사에 해당되는 많은 자료들을 끌어내어 마음에 기쁨이 넘치게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감사라는 말은 우리 신체 면역체계를 강화하여 감사를 일명 ‘감사약’이라고도 합니다. 우리가 범사에 감사할 때 우리 마음에 기쁨과 행복이 다가오고, 우리 몸은 더욱 튼튼해집니다. 뿐만 아니라 내가 감사할 때 그 말을 듣는 주위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끼쳐주어 주위를 밝게 하고 평안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 마음에 행복을 위해서, 내 몸과 마음의 건강을 위해서, 내 주위를 밝고, 맑고, 환하게 만들기 위해서 결심하고 감사하다는 말을 해야 합니다.
미국의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가르치는 6마디가 있다고 합니다. 1) Thank you 2) Please 3) Excuse me 4) I am sorry 5) You’re welcome 6) I love you. 이런 표현은 삶의 질을 높여주는 자존감 넘치는 삶의 모습들입니다.
비가 많이 내리는 어느 날 피츠버그의 한 가구점 앞에서 초라한 모습의 할머니 한 분이 서성거리고 있었습니다. 이때 가게 주인이 나와 할머니를 안으로 모셨습니다. 할머니는 “가구를 사려는 것이 아니라 차를 기다리는 중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주인은 따뜻한 차를 대접하며 “물건은 안 사셔도 괜찮으니 편히 앉아서 구경하시며 차를 기다리세요”라며 차 번호를 적어 몇 번이나 밖에 나가 차가 오는지 확인했습니다. 그는 차가 올 때까지 미소를 잃지 않고 할머니에게 친절을 베풀었습니다. 며칠 후 가구점 주인은 미국의 대재벌 카네기로부터 편지를 받았습니다. “비 오는 날 제 어머님께 베푼 당신의 친절에 감사드립니다. 우리 회사와 고향 스코틀랜드의 집을 짓는데 필요한 가구를 모두 당신의 손에 맡기겠습니다.”
친절한 행동에 감사라는 반응이 일어났습니다. 친절이라는 씨앗에 감사라는 열매가 맺혔습니다. 정말로 보기 좋은 멋있는 일이 아닙니까?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아멘.
류복현 목사 (킬린한인침례교회 담임목사. 254-289-88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