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풍이란 거스리는 바람, 거스리는 사람, 거스리는 환경을 말한다.
마가복음 6장에 보면 제자들이 노를 저어 바다를 건너던 중 거센 역풍을 만난 장면이 있다.
바다는 인생길을 말한다.
어떤 이유이든 간에 “빨리 여기를 떠나 배를 타고 건너편 마을로 가라”는 명령을 받고 제자들은 즉시 순종하여 배를 타고 떠났다.
사람들은 순종하면 모든 일들이 순퐁에 돛달듯이 형통하리라고 믿는다.
사실 그렇게 설교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논리라면 제자들이 예수님의 명령에 즉시 순종했다면 가는 길이 순조로웠어야 했다.
그러나 엄청난 역풍을 만나고 말았다.
역풍이 배 앞에서 거칠게 불어 닥치므로 제자들은 아무리 노를 저어 가려고 무진 애를 써도 도무지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그 바람은 제자들이 가는 길에 마주 불어오는 역풍(逆風)이었다.
배는 바다 한 가운데를 건너고 있었다.
그런데 순종하면 명령자께서는 우리가 고난을 만났을 때 반드시 책임져주신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같은 시각에 예수님께서는 산에서 기도를 하고 계셨다.
기도하시다 말고 예수님은 바다 한 가운데서 역풍을 만난 제자들을 바라보고 계셨다.
“바람이 거스르므로 제자들이 힘겹게 노 젓는 것을 보시고 밤 사경쯤에 바다 위로 걸어서 그들에게 오사 지나가려고 하시매” (마6:48)
여기서 “보시고”는 뜻은 예수님께서 그 광경을 지속적으로 예의 주시하셨음을 나타내 준다.
예수님은 여전히 제자들의 현재 당하고 있는 고초를 신적직관(Divine Intuition)으로 조용히 응시하고 계셨다.
시각은 “밤 사경 즈음”(새벽 3-4시)이었다.
한 두 시간이면 건너갈 수 있는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밤 새도록 고통을 당하고 있었다.
도무지 앞으로 나아가지 않았다.
제자들은 지치고 피곤하고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예수님은 제자들의 고난을 응시하고 계시다가 일렁이는 풍랑 위를 걸어오셨다.
그런데 물위를 걸어오시다가 그들을 지나가시려고 하셨다는 말은 여러가지 의문이 생긴 대목이다.
문제는 물위를 오셔서 그냥 지나치려 했다는 점이다.
이것은 앞뒤가 맞지 않아 보인다.
본문을 직역하면 “그는 그들의 곁을 지나가기를 원하고 있었다”가 된다.
결코 예수님께서 그들의 고난을 간과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들을 구원하시려고 오셨지만 그들이 믿음을 보이기를 원하셨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초청(招請)을 기다리고 계셨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렘 33:3)
그렇다.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마6:8)고 하셨다.
“다 아시는 것”과 “주신다”는 뜻은 다르다.
주님을 부를 때까지 기다리셨음을 잊지 말자.
결국 예수님이 제자들의 배안에 타셨을 때 바람이 그쳤고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도착할 수 있었다.
예수님은 왜 순종하는 제자들에게 역풍이 닥쳐오도록 두셨을까?
이유는 고난 가운데서 주님을 간절히 찾는 법을 깨닫게 하셨다.
역풍을 만났을 때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지 말고 우리의 고난을 응시하고 계신 주님을 부르는 법을 깨닫게 하셨다.
송영일 목사 (Y Edward Song, Th.M, D.Min)
케이티 새생명교회 담임
newlife0688@gmail.com
(832)205-5578
www.houstonnewlife.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