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는 형통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이 등장한다. 사람은 누구나 형통하기를 바라는 본성이 있다. 무엇이 진정한 형통의 길일까? 성경에 나타난 형통의 사람들을 생각해 보고자 한다. 요셉의 형통의 길이 무엇이었을까?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창 39:23)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셨다는 말은 요셉이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말씀대로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성령이 요셉을 다스리시고 지배하셨다는 뜻이다. 요셉은 전심으로 하나님께 순종하였다. 다윗의 형통이 어디에 있었을까?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셨더라”(삼하 8:14)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순종하였으므로 전쟁을 할 때 마다 하나님께서 승리하게 하셨다. 왜? 말씀과 함께 하였기 때문이다. 여호와께서 다윗과 함께 하심으로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셨다. 하나님의 성령이 다윗을 다스리시고 지배하셨다. 다윗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였기 때문이다. 그것이 형통의 길이다.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깨달을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성령은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 일하신다는 사실이다. 말씀을 묵상하면 성령께서 깨닫게 하실 뿐만 아니라 그 말씀에 순종하고자 하는 열정을 주신다. 특히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성령 하나님이 내재하시므로 말씀에 순종하고자 하는 마음을 강하게 주신다. 예수님께서 내재하신 성령님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저를 받지도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니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요14:17)
성령님이 믿는 자 안에 내재하신다. 말씀에 집중하면 진리의 영이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고 진리 가운데로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 순종할 때 형통이 온다.
누가복음 24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자 실의에 빠진 두 제자들이 엠마오로 되돌아가고 있었다. 3년 동안 예수님과 함께 있었고, 날마다 말씀을 듣고 기도하던 생활에서, 이제는 옛 생활로 되돌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실의에 빠져 고향을 향해 걸어가던 두 제자들에게 길 한 복판에 부활하신 예수님이 그들에게 나타나셨다. 그들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다. 왜? 부활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성경말씀을 풀어 해석해 주셨다. 이렇게 복음을 풀어 가르쳐 주시자 어떤 결과가 나타났는가?
“저희가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눅24:32) 말씀을 듣자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가슴이 뜨거워졌다. 마음이 열렸다. 눈이 다시 열렸다. 예수님이 보였다. 복음의 말씀을 들을 때 우리의 믿음이 회복된다. 성령은 말씀과 함께 일하신다. 다시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제자들에게로 달려 갔다.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다고 증거했다. 그것이 회복된 형통이다. 실의와 좌절에 빠져 옛 생활로 되돌아 가는 것이 형통이 아니라 믿음과 신앙이 회복된 것이 형통이다. 사도 바울이 아시아로 가서 복음을 전하려고 했으나, 성령님의 지시대로 모든 자신의 계획을 포기하고 순종하여 빌립보로 갔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루디아 일행을 만나도록 준비하셨다. 순종할 때 여호와 이레의 축복이 임하신다. 루디아 일행에게 복음을 전했다. 그랬더니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성령님이 말씀을 듣고 있던 루디아의 마음에 뜨거운 성령이 임하여 마음을 열어 주셨다. 마음을 열어 회개하게 하셨다. 믿게 하셨다. “저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고 우리에게 청하여 가로되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 하고 강권하여 있게 하니라.”(행16:15)
루디아 일행은 세례를 받기만 한 게 아니라, 바울 일행을 섬겼다. 봉사의 일을 시작했다. 그리고 루디아는 자신의 집을 드림으로 유럽 최초의 빌립보 교회가 되었다. 헬라파와 유대파가 심각하게 대립되었던 초대 예루살렘 교회가 사도들이 가르친 말씀훈련에 집중하였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행6:7)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하였더니 말씀이 왕성하고 제자의 수가 많아지고 성도들이 말씀에 복종하고 교회가 흥황하고 세력을 얻게 되었다. 신자의 신앙의 부흥도 영적인 부흥도 교회의 부흥도 말씀의 흥왕으로부터 시작된다.
여호수아의 일생이 평탄하고 형통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수1:8)
여호수아가 평생 형통한 삶을 살았던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여호수아를 지배하고 다스렸기 때문이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고 그 말씀대로 순종했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는 것”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말씀을 입술로 읽는 일이다. 다음은 말씀을 외는 일이다. 항상 강조하지만 말씀을 소리 내어 읽든지 외우든지 가장 먼저 누가 듣게 될까? 읽고 외는 사람의 자신의 귀에 가장 먼저 들려 진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신다.”(히4:12)
그러므로 입술을 열어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외울 때 얼마나 엄청난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를 알 수 있다. 말씀의 검은 “좌우에 날선 어떤 예리한” 의사의 수술칼 보다도 더 예리하여 육신과 영혼을 수술하고 회복시킬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것이 형통의 법이 아닌가?
송영일목사
새생명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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