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의 고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40년 생활 가운데 10번의 원망 불평사건이 성경에 기록되고 있습니다. 40년 동안에 10번이라면 그리 많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고요, 더 많은 불평과 원망이 있었는데 10번만 기록이 되었을 수도 있구요. 시내산을 떠나 바란 광야를 거쳐 다베라에 진을 쳤을 때에 섞여 사는 무리들이 원망 불평합니다.
그러자 전염이 되어서 이스라엘 백성들도 함께 원망과 불평을 합니다. 애굽에서는 생선도 먹고, 수박도 먹고, 부추도 먹고, 파와 마늘도 먹었는데 광야에서는 만나만 주신다는 것이지요. 물론 하나님도 진노하셨습니다.
모세도 너무 견디기가 힘들어 하나님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께 여쭈오되 주께서 어찌하여 종을 괴롭게 하시나이까, 어찌하여 나로 주의 목전에 은혜를 입게 아니하시고 이 모든 백성을 내게 맡기사 나로 그 짐을 지게 하시나이까. 이 모든 백성을 내가 잉태하였나이까, 내가 어찌 그들을 생산하였기에 주께서 나더러 양육하는 아비가 젖 먹는 아이를 품듯 그들을 품에 품고 주께서 그들의 열조에게 맹세하신 땅으로 가라 하시나이까’ (민 11:11-12)
얼마나 힘들었으면 이렇게 말을 했겠습니까? 그러나 그 고난을 이기므로 무사히 40년의 광야생활을 마치고 나머지 여정을 여호수아에게 인계합니다. 사명의 승리자가 됩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롬 8:28)
고난도 고통도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냥 우리에게 고난이나 고통이 오는 것이 아닙니다. 고난 고통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욥 역시 그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 우리의 가는 길을 아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그 분께서 우리를 단련시키셔서 정금처럼 나오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즉 고난 고통을 통해서 귀하게 사용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난을 슬기롭게 잘 극복해야 합니다.
요즘 코로나 바이러스로 전세계가 숨 막히는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이 고난을 극복하면 더 좋은 하나님의 은혜가 있을 것을 믿습니다. (시편 30:5) ‘노염(코로나)은 잠깐이요, 은총은 평생이라. 저녁에는 슬퍼서 울어도 아침이 되면 기쁨이 올 것이다’ 아멘.
‘여호와께서 욥의 말년에 복을 주사 처음 복보다 더하게 하시니 그가 양 일만 사천과 약대 육천과 소 일천 겨리와 암나귀 일천을 두었고’ (욥 43:12) 고난 받기 전에 가졌던 재산이 두 배로 늘어났습니다. 아들 7, 딸 3, 총 10명을 얻게 됩니다. 딸들은 당시에 그 누구보다 더 아름다웠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욥 42:15)
우리의 영적인 생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용광로를 통하지 않고는 찬란하고 아름다운 정금이 나올 수 없는 것처럼, 고난을 통해서 영광을 얻게 된 것입니다.
영광을 받기 위해서는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합니다.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롬 8:17,18)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이 없었으면 부활도 없었습니다. 고난 이후에는 승리가 보장되어 있습니다. 믿음은 동굴이 아니고 터널입니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고난의 연속이 아니고 고난 끝에는 부활이라는 승리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믿는 기독교가 부활의 종교인 것입니다. 그 누구도 흉내내지 못하는 부활이 있습니다.
고난은 잠시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인내가 필요합니다. 고난이라고 하는 말은 훈련이라고 하는 말입니다.
모세도 80년을 훈련받은 사람입니다. 민족의 지도자가 그냥 되는 것은 아니지요. 다니엘도 바벨론에서 포로의 삶을 통해서 훈련받은 사람입니다. 요셉 역시 13년 동안 고난의 학교에서 훈련받은 사람입니다. 욥도 훈련을 받은 사람입니다. 바울도 엄청난 훈련을 받은 사람입니다.
누구라도 고난이라는 훈련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고난없는 면류관을 바랍니다. 십자가 없는 면류관은 없습니다. (No Cross, No Crown)
욥이란 사람은? (욥 1:1)
‘우스 땅에 욥이라 이름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 순전하고는 다른 것이 섞이지 않고, 거짓이 없고, 순수하며, 도덕적으로 결백하며 완벽하다는 뜻입니다.
정직하다는 말은 거짓이 없고, 누구를 속이지 않고, 하나님을 경외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공경하며, 하나님을 어려워한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난이 있었습니다. (욥 1:12)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내가 그의 소유물을 다 네 손에 붙이노라 오직 그의 몸에는 네 손을 대지 말지니라.
사단이 곧 여호와 앞에서 물러가니라’ 자녀들이 다 죽었습니다. 종들도 다 죽었습니다. 재산도 다 사라집니다. 몸엔 피부병이 생깁니다. 부인은 저주하고 떠나갑니다. 친구들은 와서 염장을 지릅니다. 잠깐은 흔들렸으나 끝까지 믿음을 지켰습니다. 하나님은 욥의 믿음을 보상해 주셨습니다. (욥 42:16-17) ‘그 후에 욥이 일백사십 년을 살며 아들과 손자 사대를 보았고, 나이 늙고 기한이 차서 죽었더라’
고난주간입니다. 어떤 고난도 이기시기를 축복합니다. 고난에서 승리로. 아멘.
류복현 목사 (킬린한인침례교회 담임목사. 254-289-88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