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광복 75주년
금년은 광복 75주년이 됩니다. 당시 조선왕조는 극심한 당파싸움만 하고 있었습니다. 국가의 발전과 국민의 행복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이 틈을 타서 일본은 우리나라를 보호하고 사랑하고 발전시킨다는 미명하에 1905년 11월 을사보호조약을 체결하였습니다. 을사보호조약은 5개 조항으로 되어있습니다. 그 중 2개만 소개합니다.
1) 일본 정부의 중개없이는 국제 조약의 성질을 가진 어떤 조약이나 약속을 하지 못한다. (외교권이 없다.) 2) 일본은 한국 황제 휘하에 한 명의 통감을 둔다. 그리고 언제나 한국 황제를 배알할 수가 있다. (국내 정치 간섭)
그리고 서서히 조선을 압박하여 드디어 1910년 한국의 국호마저 없애버리는 한일합방을 8월 28일에 조인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습니다. 1) 우리의 문화, 심지어 이름 성까지 빼앗아 갔습니다. (창씨 개명) 2) 일본이 당시 자기들의 욕심을 채우기 위하여 일으킨 전쟁에 수많은 젊은이들이 끌려가서 우리나라가 아니라 일본을 위하여 피를 흘리고 억울하게 많이 죽었습니다. 3) 전쟁 물자를 대려고 놋쇠를 비롯한 쇠붙이는 물론 수많은 물질을 수탈하여 갔습니다. (쌀 등등) 4) 수많은 처녀들은 정신대로 징용하여 짐승만도 못한 그들의 성적 도구가 되어야 했습니다. (아직도 이 문제로 일본과 싸우고 있음) 이로써 당파싸움과 정치싸움만 일삼던 이조는 이성계가 세운지 27대 519년 만에 비극적 종말을 고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나라를 빼앗기고 자유를 빼앗긴 우리 민족은 가만히 있지 않고 항거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가장 극심하게 대항하는 사람들은 거의가 다 기독교인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총독은 늘 이렇게 말했습니다. ‘한국의 10만 명의 기독교인들을 조심하라. 그들이 바로 항일 투쟁가들이다’ 그래서 일본 사람들은 기독교인들을 가장 두려워하면서 교인들을 감시하였습니다. 그리고 할 수만 있으면 교인들을 잡아 죽이고 감옥에 넣었습니다. 그것이 그들에게는 가장 안전한 길이었기 때문입니다.
일본은 교회를 핍박하면서 경계하였습니다. 탄압정책은 종교의식을 간섭하는 것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설교 내용도 검열하였습니다. 어떤 목사님은 ‘하늘나라’에 대한 설교를 했다고 감옥에 가두웠습니다. 유일한 왕국은 일본 뿐이라는 것입니다. 일부 찬송가는 금지되었습니다. ‘십자가 군병들아 주 위해 일어나, 믿는 사람들은 군병 같으니’ 이 찬송가는 금지곡이었습니다. 다윗과 골리앗 이야기로 설교하는 것도 금지되었습니다. 걀국 1945년 8월 6일에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떨어뜨렸습니다. 20만 명이 몰사하였습니다. 그래서 일본은 8월 15일 무조건 항복하였습니다.
참으로 신기한 것이 있습니다. 일본은 8월 17일 한국의 애국지사, 교육계 지도자, 종교계 지도자, 정계 지도자 20만 명을 죽이려고 명단을 가지고 준비중에 있었습니다. 소름끼치는 일입니다. 그러나 도리어 자기들이 20만 명이 죽었습니다. 도저히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것이었습니다. 결론은 하나님이 주신 자유였습니다. 75년 전에 자유를 찾았습니다. 조국의 독립, 해방에 영적인 의미를 새겨 보아야 합니다.
2. 내 제자가 되리라 (31절)
예수님의 공생애 3년 동안에 기득권 세력인 바리새인, 사두개인, 서기관, 제사장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지 않으려고 무지 애를 썼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 중에는 더러 믿는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 특히 니고데모 같은 사람은 바리새인이요, 랍비요, 산헤드린 공회의 의원이였습니다. 그 역시 막강한 권력을 가진 사람이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행하신 기적을 보면서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예수님을 직접 찾아오기도 했습니다. 니고데모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믿었습니다. 오순절 이후에는 허다한 제사장들도 믿었다고 했습니다. (행 6:7) 그러나 기득권 세력들은 여전히 예수님을 죽이려고 온갖 계획을 세웠습니다. 트집도 잡으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내 제자가 되리라’ 하셨습니다. 신자, 성도, 교인이라는 말보다는 제자라는 표현을 사용하셨습니다. 12 제자에게도 물론 다른 명칭보다는 ‘제자’라고 하셨습니다. 마지막 분부하신 말씀에서도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마 28:19)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마 28:20)
3.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32절)
그러시면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요 8:32)
1) 질병으로부터의 자유
건강하지 못하면 만사가 다 귀찮습니다. 건강하여야 합니다. 예수님은 영혼이 잘 됨같이 범사가 잘 되고 강건하게 하시려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말했습니다.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사 53:5) 인간은 마른 뼈 같은 존재들입니다. 힘이 없습니다. 능력도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손에 붙들리면 강해집니다. 건강해집니다. 능력이 있습니다. 아멘 사람은 건강할 권리가 있습니다. 모든 병마를 물리쳐 주신 주님을 기억하면서 자기 몸 관리 잘 하시면서 건강하여야 진정한 자유가 있습니다.
2) 가난으로부터의 자유
가난하면 진정한 자유인이 될 수가 없습니다. 가난은 죄는 아니지만 명예도 아닙니다. 돈은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잠언 기자 말을 기억하여야 합니다. ‘나로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소서’ (잠 30:8) 왜 가난해서 도적질할까 두렵고, 부해서 하나님 모른다고 할까 두렵습니다.
3) 죄로부터의 자유 (요 8:34)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다’ 진리는 자유를 선물로 줍니다. 그런데 죄는 진리가 아닙니다. 동물은 본능으로 살고 사람은 선택으로 삽니다. 선택할 것을 선택하는 것이 자유이고 선택할 것을 선택하지 못하는 것이 억압입니다. 그런데 선택할 때에는 죄를 선택하면 진리가 아닙니다.
4) 죽음으로부터의 자유
예수님은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요 14:6)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세 가지는 같은 것입니다. 생명이 아닌 것은 진리가 아닙니다. 진리가 아닌 것은 길이 아닙니다. 죽음으로부터의 자유가 가장 놀라운 자유입니다. 우찌무라 간조는 ‘그리스도 없는 곳에는 참 자유가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진정한 자유는 진리 안에서의 자유입니다. 진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질병에서 독립, 가난에서 독립, 죄에서 독립, 죽음에서 독립하는 자유 있는 삶의 주인공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류복현 목사 (킬린한인침례교회 담임목사. 254-289-88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