랍비 가말리엘이 하인에게 시장에 가서 맛있는 걸 사오라고 시켰습니다. 하인은 혀를 사왔습니다. 이틀쯤 지나서 랍비가 같은 하인에게 오늘은 싼 것으로 사오라고 했습니다. 하인은 또 혀를 사왔습니다. 랍비가 물었습니다. “전에 내가 너에게 맛있는 걸 사오라고 하자 혀를 사오고, 오늘은 싼 걸로 사오라고 했는데 또 혀를 사왔다. 어찌된 일이냐?” 하인이 대답했다. “혀가 좋으면 그보다 더 좋은 것이 없고, 또 나쁘면 그보다 더 나쁜 것이 없습니다”
우리 인간의 세치 혀는 매일같이 숱한 말들을 쏟아냅니다. 그 중에는 모두에게 피와 살이 되는 값진 말이 있는가 하면, 아무데도 쓸데없는 말, 오히려 자신과 남을 해치는 말도 있습니다. 어둠을 물리치고 진실을 밝혀주는 ‘좋은 혀’가 있는가 하면, 먹구름을 몰고 와서 진실을 가리는 ‘나쁜 혀’도 있습니다. 말들이 빚어낼 수 있는 피해가 너무도 크기에, 동서고금의 지혜서는 하나같이 인간에게 혀끝을 조심하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성경에서 말에 대한 교훈은 너무나도 많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말을 통해서 다른 사람과 교류를 하며 살아갑니다. 살아가면서 말을 안 하고 살 수도 없는 것입니다. 말은 그 사람의 인격입니다. 말을 들어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바로 알 수 있습니다.
말은 자신을 드러내는 자기의 모습입니다. 자신의 말에 따라서 자신의 인생이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부정적인 말을 하면 삶의 과정과 결과가 부정적입니다. 긍정적인 말을 하면 삶의 과정과 결과가 긍정적이 됩니다. 축복의 말을 하면 삶의 과정과 결과가 축복이 되고, 저주의 말을 하면 삶의 과정과 결과가 저주가 됩니다.
누에가 고치를 만드는 것과 같습니다. 누에는 자기 입에서 나오는 실로 자기 고치를 만듭니다. 입에서 좋은 실이 나오면 좋은 고치 속에 머물게 됩니다. 그러나 입에서 나쁜 실이 나오면 나쁜 고치 속에 머물게 됩니다. “네 입의 말로 네가 얽혔으며, 네 입의 말로 인하여 잡히게 되었느니라” 네가 한 그 말에 네가 걸려들고, 네가 한 그 말에 네가 잡힌다는 의미입니다. 말로 흥하고, 말로 망한다는 말입니다. 우리의 말이 우리의 삶의 환경을 만들어 간다는 것입니다. 긍정의 말, 축복의 말, 칭찬의 말, 격려의 말을 하면 삶이 밝아지고, 부정의 말, 저주의 말, 험담의 말, 더러운 말을 하고 살면 삶이 어두워 집니다. 내가 하는 말이 다시 내게로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잘못된 언어들. 이것들이 우리 인생을 불행하게 만들어 갑니다.
1. 불신의 말 (누가복음 1 장)
누가복음 1장엔 침례 요한의 출생 이야기가 나옵니다. 하나님이 천사를 통하여 말씀합니다. “사가랴야. 무서워하지 말라.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네게 아들을 낳아 주리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 (13절) 사가랴가 자식이 없어서 하나님께 기도했고,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어 응답하셔서 아들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18절을 보면 사가랴가 그 말을 듣고 이렇게 답했습니다. “내가 이것을 어떻게 알리요. 내가 늙고 아내도 나이가 많으니이다” 자기가 기도해서 하나님께서 아들을 주시기로 했다는데 정작 사가랴는 믿지 못했던 것입니다. 자기와 아내 모두 나이가 들어 노인인데 어떻게 아들을 낳을 수 있겠느냐고 말했습니다. 불신의 말을 한 것입니다. 그러면 기도는 왜 했습니까? 우리는 종종 내가 한 기도와 다른 삶을 살아갑니다.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게 하소서, 하면서 늘 자신이 잘났다고 말합니다. 사랑하게 해 달라고 하면서 미워합니다. 섬기게 해달라고 하면서 대접을 받으려고 합니다. 19절 이하를 보면 하나님께서 사가랴의 입을 막으셨습니다. 그가 갑자기 벙어리가 된 것입니다. 불신의 말을 내 뱉는 그 입을 막으신 것입니다. 불신의 말은 하나님의 역사를 가로막는 장애물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불신의 말이 하나님의 역사를 가로막습니다. 그래서 불신의 말을 내뱉는 사람들은 결코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결국 그의 인생은 하나님의 도움 없이 자기 힘으로 살아가야 하는 큰 불행을 겪게 되는 것입니다. 불신의 말이 아닌 믿음의 말을 하시기를 축복합니다.
2. 불평의 말 (민 13-14장)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는 불행한 이야기기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정탐꾼들이 그 땅을 둘러보고 와서는 부정적인 보고를 했습니다. 그 소리를 듣고 이스라엘 백성이 보인 반응이 이렇습니다. “온 회중이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백성이 밤새도록 통곡하였더라.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온 회중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14:1-2) 자기들에게 축복의 땅으로 들어갈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불평한 것입니다. 차라리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겠다고 한 것입니다. 우리가 그 결과를 잘 압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한 말 그대로 20세 이상은 모두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그들은 결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이 때 불평하지 않았던 갈렙과 여호수아와 그들의 다음 세대가 가나안 땅에 들어갔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불평의 말이 하나님의 복을 걷어갑니다. 그래서 불평하는 사람들은 결코 하나님 주시는 복을 맛 볼 수 없습니다. 결국 그의 인생은 하나님 주시는 복 없이 척박한 삶을 살아야 하는 큰 불행을 겪게 되는 것입니다. 불평의 말이 아닌 감사의 말을 하고 사시기를 축복합니다.
3. 악한 말 (엡 5:3-4)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조차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에게 마땅한 바니라.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악한 말들을 하는 것은 성도들에게 적절치 않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악한 말들이란 첫째 음담패설과 같은 음행에 관한 말들이 있습니다. 둘째 부정부패와 관련된 더러운 것에 관한 말들이 있습니다. 셋째 사리사욕을 쫓는 탐욕에 관한 말들이 있습니다. 넷째 천박하고 저질스러운 누추함에 관한 말들이 있습니다. 다섯째 쓸데없는 어리석은 말들이 있습니다. 여섯째 저속한 말로 남을 깔보는 희롱하는 말들이 있습니다. 이런 말들로는 주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엡 5:10) 다시 말하면 이런 말들은 주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시는 말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악한 말들은 결코 주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이런 말들을 내 뱉는 사람들은 주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진노 가운데 살아야 하는 불행을 맛보며 살게 됩니다. 악한 말 대신 선한 말을 하시며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 이런 말을 바꾸어야 합니다.
이처럼 우리의 잘못된 말들이 우리 삶에 불행을 가져옵니다. 그래서 우리는 말을 바꾸어야 합니다. 부정적인 말을 긍정적인 말로 바꾸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의 인생이 바뀝니다. 하나님의 복이 임하게 됩니다. 삶이 밝아집니다. 그리고 행복합니다.
류복현 목사 (킬린한인침례교회 담임목사. 254-289-88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