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라는 말은 위험과 기회라는 두 단어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반드시 위험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위기는 위험과 기회가 같이 오기 때문에 위기에 직면했을 때 90%의 사람들은 위기를 보고 낙심하고 절망하나 10% 정도의 사람들은 위기를 기회로 삼고, 감사하며 다시금 희망과 용기를 가지고 나갑니다. 위기가 올 때 낙심과 좌절하지 말고 위기 속에서 오히려 기회를 발견한다면 그 위기는 오히려 더 큰 축복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물의 깊이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개울의 깊이, 강의 깊이, 그리고 바다의 깊이는 다릅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의 깊이에도 차이가 있습니다. 그 차이를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습니다.
1) 조건부 믿음, ‘그렇게 해 주시면’ 믿음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만일 이렇게 해 주시면…”하고 조건을 붙이는 믿음의 태도를 말합니다. 창세기 28장을 보면 야곱은 루스(Luz)에서 하나님을 만납니다. 형님에서의 보복이 두려워서 집을 떠나 외갓집으로 피신 중입니다. 하룻길을 가다 날이 저물어 루스(Luz)에서 밤을 지새웁니다. 꿈에 사닥다리로 하나님의 사자가 오르내리는 것을 보았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어 복을 내려주실 것이라는 약속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창28:13) 야곱이 잠에서 깨어 베개 하던 돌을 세워 기둥을 삼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서원하여 하나님께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사.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양식과 입을 옷을 주사, 나로 평안히 아비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전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창 28:20-22)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고 약속을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야곱은 조건을 제시합니다. 조건부로 하나님을 믿겠다는 것입니다. 조건에 맞으면 감사할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원망하고 불평합니다. 심할 경우 하나님을 떠날 것입니다. 그 믿음의 깊이가 개울처럼 얕은 사람들입니다.
2) 순종하는 믿음, ‘그리하실 줄로’ 믿는 믿음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마치 꼭 그렇게 될 것처럼” 추호도 의심치 않는 순종하는 믿음의 태도를 말합니다. 여호수아 3장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는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언약궤를 맨 제사장들을 앞세워서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요단강 물로 들어가라고 명하셨습니다. 요단강의 물이 넘실거려 강둑이 넘쳤다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놀랍게도 저들은 아무런 인간적인 대책도 없이 강물로 뛰어들었습니다. 다리를 마련한 것도 아닙니다. 배를 준비한 것도 아닙니다. 심지어 구명조끼를 입은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줄로 믿고 뛰어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도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줄로 믿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하나님 앞에 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선한 길로 인도하실 줄로 믿고 추호의 의심도 없이 나아갑니다. 그 신앙의 깊이가 강물처럼 깊은 사람들입니다. 믿음이 개울 같은 사람들이 볼 때는 대책 없는 사람들으로 보이지요.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이 책임져 주십니다. 아멘.
3)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음,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믿음입니다.
“비록 그렇게 되지 않더라도” 끝까지 하나님을 믿겠다는 믿음의 태도입니다. (합 3:17-18)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아멘
결과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비록 내 바람대로 내 믿음대로 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하나님 앞에 감사하며 찬양하며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신앙의 깊이가 바다처럼 깊은 사람들입니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두 번째 그리고 세 번째 유형의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풀무에서 건져줄 확신도 있고, ‘그리 아니하실지라도’의 믿음도 있습니다. 강 같은 믿음, 아니 강보다 깊은 바다 같은 믿음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현실을 초월한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아멘
4)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의 믿음 (단 3:16-30)
바벨론 왕 느브갓네살이 약 30m (10층 건물 높이) 크기의 금 신상을 만들고, 나라의 모든 공직자 및 온 백성들에게 절하라고 명령을 내립니다. ‘만약 절하지 않으면 풀무불(용광로)에 던져 태워 죽인다’는 것입니다. 그날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절하지 않았는데 그걸 본 바벨론 사람이 왕에게 고소를 합니다. 화가 난 왕이 세 사람을 부르고 묻습니다. “정말로 절을 하지 않았느냐? 지금도 늦지 않았다. 기회를 주마. 절해라. 그렇지 않으면 풀무 속에 던지겠다.” 그러나 세 사람은 절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능히 왕의 손에서 풀무에서 건져 줄 것입니다. 그렇게 해 주시지 않아도 우리를 하나님을 믿고 절하지 않을 것입니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 이 세 사람도 절하라는 강요를 받습니다. 절하지 않으면 죽인다는 것입니다. 죽느냐 사느냐하는 현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 사람은 절하지 않았습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왕이 드디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바벨론 도에서 더욱 높이니라’ (31절)
믿음으로 살면 손해를 보는 것 같아도 결코 손해가 아닙니다. 사드락,메삭, 아벳느고는 풀무불에까지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살려주셨습니다. 그 뿐 아니라 그렇게 교만한 느부갓네살 왕도 감동을 받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인정합니다. 높은 자리에 앉힙니다. 이 세 사람의 믿음이 가져온 축복은 여기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느부갓네살 왕마저 회개하고 하나님의 능력에 굴복하고 하나님을 찬양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기적이, 이런 은혜가, 이런 하나님의 역사가 여러분의 삶의 현장에서 일어나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류복현 목사 (킬린한인침례교회 담임목사. 254-289-88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