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에 연예인교회에서 소그룹 성경공부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 그룹에 연예인 구봉서 장로님도 같이 있었는데, 한 젊은 남자 연예인이 자기는 다 믿어도 동정녀 탄생만은 믿을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인도자가 친절하게 설명했지만 그는 여전히 못 믿겠다고 말했습니다. ‘아무래도 저는 믿을 수가 없어요. 어떻게 처녀가 아기를 낳아요? 성경이 비과학적인 책인가? 그러면 어떻게 지성인들은 성경을 믿죠?’ 그러자 옆에서 참고 있던 구봉서 장로님이 한 말씀을 했다고 합니다. ‘야, 임마, 남편인 요셉도 마리아를 믿었는데, 네가 뭔데 안 믿어?’ 말씀이 믿어지는 것은 축복 중에 축복입니다.
1. 밤새도록 수고하였으나 소득이 없었던 베드로
철저하게 실패한 밤이였습니다. 베드로는 나면서부터 오늘까지 갈릴리에서 고기잡이로 다져진 사람입니다. 경험이 풍부한 사람입니다. 고기잡이의 지식도 풍성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지난 밤에는 한 마리도 잡지를 못했습니다. 경험도 지식도 아무 쓸모가 없었습니다. 너무 허망한 아침입니다. 살다보면 풍성하고 넉넉하고 부유할 때도 있으나, 때로는 텅 빈 배일 때도 있습니다. 코로나 시대가 바로 텅 빈 배 같은 시대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서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텅 빈 배 같은 인생들입니다. 먹어도 먹어도 배부르지 않고, 벌어도 벌어도 만족함이 없습니다. 자꾸 욕심이 생기는 것이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욕심은 모든 사람들의 공통적인 마음입니다. 사람의 욕심이라는 것이 한도 끝도 없습니다. 우리의 빈 배는 내가 채우려고 해도 채워지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빈 배를 채워 주시고도 남는 분이십니다.
2. 찾아 오신 예수님
이른 아침 밤새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해 허망한 아침에 예수님이 찾아 오셨습니다. 실패한 사람의 현장에 찾아 오신 예수님, 병들고 아픈 현장에 찾아 오신 예수님, 외롭고 견딜 수 없는 현장에 찾아 오신 예수님. 베데스다 연못가에서 한가닥의 희망을 가지고 살고 있는 38년된 병자를 찾아오신 예수님. ‘네가 낫고자 하느냐?’ ‘예, 낫고 싶습니다.’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오라비의 죽음 앞에서 슬퍼하는 마리아, 마르다 자매를 찾아 오신 예수님. ‘예수님이 조금만 일찍 오셨어도 우리 오라비가 죽지 않았을텐데요.’ ‘내 말을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볼 것이다.’ 죽은지 4일이 지나 썩어서 냄새가 나는 나사로를 살려주신 예수님. 실패자에게 찾아 오신 예수님. 죽음 앞에 소망이 없어하는 자에게 찾아 오신 예수님. 낙심하고 낙담하는 자에게 찾아 오신 예수님. 그 예수님이 오늘도 이 자리에 찾아 오심을 믿습니다. 그 분을 환영하시기 바랍니다.
3. 말씀을 들은 베드로
예수님이 찾아 오셔서 베드로에게 배를 좀 빌려 달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 배에 서서 육지로부터 좀 띄기를 청하시고 베드로와 밤새 고기잡이 하던 어부들에게 말씀을 전하십니다. 예수님이 찾아 오심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오셔서 말씀을 가르쳐 주십니다. 말씀을 듣는 것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말씀을 들어야 믿음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았니니라’ (롬 10:17)
설교를 들을 때 어떤 마음이십니까?
어떤 분들은 오늘 설교를 나 들으라고 하신 것 같다고 하신 분이 계십니다. 문제는 그 다음의 반응입니다. 어떤 사람은 은혜를 받고, 어떤 사람은 시험에 들기도 합니다. 사도행전 2장엔 오순절에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가로되 ‘우리가 어찌할꼬’ 할 때에 베드로가 그들에게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라’ 하였습니다. 회개의 역사, 구원의 역사, 성령의 역사를 체험하게 됩니다. 반면 사도행전 7장에서는 스데반 집사의 설교를 듣고 역시 마음에 찔림을 받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스데반을 향하여 이를 갈고 돌을 들어서 스데반을 쳤습니다.
4. 순종하는 베드로
‘밤새 수고하여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립니다’ 믿음 생활에 가장 방해가 되는 것이 ‘내 생각’입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은 ‘내 생각’이 아니라 ‘주님 생각’이 중요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그러시다면, 하나님의 말씀이 그러시다면, 성경이 그렇게 기록되어져 있으면, 그 말씀을 믿고, 순종하겠습니다. 그럴 때에 능력은 역사하고, 기적은 나타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믿음을 통해서 역사하십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의외의 말씀에 대해서 자신의 경험이나, 경력이나, 지금의 피곤한 상황을 이유로 ‘내 생각에는’을 말하지 아니하고, ‘선생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니 그 말씀을 의지하여 그물을 내리리다.’라고 하였습니다.
5. 깊은 데로 가라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4절) ‘이 정도면 됐다. 이 만큼 하면 되지 뭐’ 정말로 위험한 생각입니다. 스스로에게 속고 있는 것입니다. 아침에 눈 뜨면 기도하는 것으로 됐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하루에 성경을 몇 장 읽는 것으로 만족해 마십시오. 일주일에 한 번 교회 나가는 일로 만족해 마십시오. 깊이 있는 믿음생활을 하십시오. 주님이 베드로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하신 것은 얕은 곳에서만 놀지 말고 위험부담이 있어도 깊은 곳으로 가서 깊이 있게 살라는 암시도 있습니다.
에스겔 47장에 보여준 환상. 성전 문지방 밑에서 나오는 물이 아라바까지 흘러갑니다.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이 환상을 보여주시면서 흐르는 물의 깊이를 재어보라는 것입니다. 성전에서 일천척을 (500m) 지나서 재어보니 발목에 이르렀습니다. 또 일천척이 지나서 재어보니 무릎에 찼습니다. 또 일천척을 지나 재어보니 허리에 찼습니다. 또 일천을 지나 재어보니 창일할 정도가 되어 헤엄을 쳐야 할 정도가 됩니다. 그 물이 아라바(여리고)까지 흘렀습니다. 죽은 바다가 살아나서 강물에 물고기가 심히 많아지고, 강 주변엔 각종 실과들이 열매를 많이 맺히게 됩니다. 그 열매는 먹고 잎사귀는 약초로 사용하게 됩니다. 발목이 아니고 무릎이 아니고 허리가 아니고 헤엄 칠 정도로 창일한 깊은 곳으로 가라고 하십니다. 여러분의 신앙의 깊이가 어느 정도입니까? 얕은 물가에서 믿고 있습니까? 중간 정도 아니면 깊은 물 속? 깊은 물 속에 들어가면 사람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저 주님만 보입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은 성령님만 보이지 사람은 보이지 않습니다. 겸손하게 깊은 데로 가서 주님을 바라보는 믿음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류복현 목사 (킬린한인침례교회 담임목사. 254-289-88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