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성탄절 Christmas
덴마크의 신학자요 철학자인 키엘케골의 ‘왕과 시골처녀의 사랑’이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왕이 시골을 순회하는 도중에 시골 처녀에게 한 눈에 반했습니다. 꼭 그 처녀를 자신의 아내로 삼고 싶은 생각이 들어 신하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저 처녀와 결혼을 하고 싶다. 저 처녀를 데리고 와서 결혼할까?” 그러나 신하는 “그건 안 됩니다. 폐하께서 신분이 없는 시골 처녀를 데리고 오는 것은 국법에 어긋납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럼 내가 가서 결혼할까?”라고 하였지만 신하는 역시 “폐하께서 가신다면 번거럽고 도저히 안 됩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할까. “내가 왕관을 포기하면 될까?”
이 이야기는 하나님이 사람이 되어 이 땅에 오신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 성육신 사건을 표현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 날이 성탄절입니다.
성탄은 하나님이 하늘을 포기하고 땅을 선택하신 날입니다. 성탄의 큰 뜻은 나를 구원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독생자 아들 예수님을 주신 날입니다. 하나님께는 쓸쓸한 날이고 고통이 시작된 날입니다. 그러나 사람 편에서는 기쁨의 날이며 축복의 날입니다.
성탄절을 크리스마스(Christmas)라고 부르는데 이 말은 라틴어에서 왔습니다. Christ는 ‘메시야. 그리스도. 구세주’라는 말이고 Mass는 ‘만남’으로서 Christmas는 ‘메시야와 만나는 날’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2. 그리스도인 (Christian)
예수님을 만나 구원을 받은 사람을 그리스도인이라고 합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크리스찬)이란 말이지요. 헬라어 성경 원어로는 ‘오이 데 투 크리스투 예수’라고 읽는데, 이 말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그리스도의 소유물이라는 뜻입니다. 완전히 그리스도의 노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의 모든 서신마다 자기는 그리스도의 노예(종)이라고 소개를 합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그리스도께 소속된 사람을 뜻합니다. ‘소속’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리 사람들은 ‘명함’을 가지고 다니며 처음 만나는 사람과 인사할 때 건네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그 명함에 쓰여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이름 석 자와 직장명과 직함입니다. 다시 말하면 나는 이 직장에 속한 사람이다 하는 것을 나타내 줍니다. 그러니까 ‘소속’을 밝히는 것이 바로 나에 대한 증명이 되는 것이지요. 명함에 나는 돈 얼마를 가졌다고 써넣는 사람은 없습니다. 명함에 ‘나는 집이 몇 채가 됩니다’하고 써넣은 사람도 없습니다. 명함에 쓰는 것은 오직 ‘소속’뿐입니다. 우리 사람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는 것에는 세 가지가 있다고 말하는데, 첫째가 소유요, 둘째가 능력이요, 셋째가 소속입니다. 이 모두가 다 중요한 것들이지만, 그러고 보면 그 중에서도 ‘소속’이 가장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 그리스도인은 더 중요한 소속을 가지게 됩니다. 바로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입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이라면 이 ‘소속’부터 분명히 해야 합니다. 이 소속은 최후 심판 때 하나님 앞에서 통하는 소속입니다. 그러고 보면 가장 중요한 소속이지 않습니까?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박았느니라’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새롭게 거듭났습니다. 새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 주셨습니다.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도 만나주시고 낮은 계층 사람도 만나주시고, 병든 사람도 만나주시고 건강한 사람도 만나주셨습니다. 실패한 사람도 만나주시고 성공한 사람도 만나주셨습니다. 부자도 만나주시고 가난한 사람도 만나주셨습니다. 남녀노소 불문하고 만나주셨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삶이 변화됩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 모습을 자신의 욕심이나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이라고 설명합니다.
3.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
1) 막달라 마리아, 끝까지 주님을 따른 여인
‘마리아’ ‘높여진 자’의 의미입니다. 그래서 부잣집 딸이고 하니 이름을 마리아로 지은 듯 싶습니다. 그런데 막달라 마리아는 불행이도 일곱 귀신에게 사로잡혔던 여인입니다.(눅 8:2) 정신적으로 정말 고통스러운 삶을 살던 여인입니다. 그 당시 귀신들린다는 것은 일종의 부도덕적 의미를 포함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나서 귀신에게서 해방되고 자신의 소유로 주님을 섬겼던 헌신적인 믿음의 사람이 됩니다. ‘막달라 마리아, 구사의 아내 요안나, 수산나, 다른 여자들과 함께 자신들의 소유로 예수님을 섬겼다’ (눅 8:2-3)고 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한 번도 변심하지 않고 죽는 날까지 충성스럽게 감사하면서 예수님의 제자로 살았던 사람입니다. 예수 만난 후 영혼의 자유를 얻어서 충성스럽게 헌신한 여인입니다. 즉, 새롭게 거듭난 여인이지요. 자신의 욕심이나 꿈은 십자가에 못 박은 헌신된 그리스도인입니다.
갈보리 산에서 주님이 못 박히는 광경을 목격합니다. 사도 요한 외에는 다른 제자들은 없었습니다. (눅 23:49).
십자가 곁에서 주의 고통과 임종을 지켰습니다. (요 19:25).
무덤에 시체가 안치된 것을 목격합니다. (막 15:47, 눅 23:55).
최초로 주님의 부활을 목격합니다. (마 28:1-9;막 16:9;요 20:1-16).
부활의 첫 메시지 전파를 맡습니다. (마 28:10, 요 20:17,18).
제자들에게 갈릴리에서 보자고 하라는 말씀을 듣고 전합니다..
부활의 첫 목격자 됨으로 주께 그녀의 헌신을 보답 받은 것 같습니다.
자신이 귀신들렸던 사람이였기에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따갑고 그리고 비난이 있었을 것입니다. 주변에서도 ‘예수님 막달라 마리아는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하세요’라고 주문한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달라 마리아는 변함없이 주님을 따르며, 예수님의 사역의 비용을 다른 여자들과 함께 뒷받침한 여인입니다. 물론 예수님의 버림이 없었고요. 예수님이 여론 때문에 막달라 마리아를 버릴 분이 아니시지요.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을 만나고 영혼 육신이 구원을 받고, 아이 같이 순수한 신앙을 가진 순진한 사람이였습니다.
일평생 주님을 따르겠다고 다짐했던 제자들도 주를 버리는 상황에서 연약한 이 여인은 결단코 주님의 곁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우리에게 어떤 시련이 온다고 해도 예수님을 버리지 말고 주님을 따르는 멋진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류복현 목사 (킬린한인침례교회 담임목사. 254-289-88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