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세의 믿음을 정리해 봅니다.
1) 좋은 것을 거절하는 믿음. 2) 스스로 고난을 선택한 믿음. 3) 상급을 바라보는 믿음. 4) 담대하고 인내하는 믿음. 5) 언제나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의 사람. 모세는 정말로 멋있는 사람입니다. 모세같은 사람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이어서 (히 11:28) 믿음으로 유월절과 피 뿌리는 예를 정하였으니 이는 장자를 멸하는 자로 저희를 건드리지 않게 하려 한 것이며. 아멘
첫째로 모세는 믿음으로 유월절을 제정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유월절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구원의 길을 제시해 주셨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유월절 그 자체가 그들에게 구원을 준 것은 아니었습니다. 10번째 재앙, 즉 애굽 사람의 장자와 짐승의 첫 새끼도 죽이는 재앙과 동시에 이스라엘 백성은 한 사람도 죽는 사람이 없이 다 구원받은 사건입니다. 살아남는 방법은 양을 잡아서 양의 피를 자신들의 집 문설주에 바르면 됩니다. 그러면 죽음의 사자가 피가 묻어있는 집은 넘어가고 피가 없는 집에 들어가서 사람의 장자든 짐승의 첫 새끼든 다 죽였습니다. 무시무시한 재앙입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모세야, 내가 애굽 땅을 두루 다니면서 사람과 짐승을 무론하고 애굽 나라 가운데서 처음 난 것을 다 치리라. 그러나 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고하여 어린양을 잡아 그 피를 그들의 집 좌우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도록 하여라. 그리하면 내가 그 피를 보고 그 집을 넘어가리라. 그것이 표적이 되리라. 너희는 이날을 기념하여 대대로 지켜라’ (출 12:12-14) 유월이라는 뜻이 넘어간다는 것입니다. (넘을 유, 넘을 월) 영어로는 pass over입니다.
그런데 이 유월절은 모세가 스스로 생각해내서 고안해 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모세가 믿음으로 순종해서 제정했을 뿐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사 64:6) ‘대저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쇠하고 패망함이 잎사귀 같으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같이 우리를 몰아가나이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인간의 의는 더러운 옷에 불과합니다. 인간의 선행, 인간의 생각, 인간의 지식, 인간의 의로는 구원에 이를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을 그대로 믿고 따르며 순종하는 자만이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예컨대 하나님은 노아를 향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노아야, 내가 세상을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리라. 너는 방주를 만들어라. 누구든지 방주 안에 들어가는 사람은 구원을 얻으리라. 구원의 길은 명확합니다. 그리고 쉽습니다. 간단합니다. 누구든지 방주 안에만 들어가면 다 구원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노아는 그 시대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했습니다. 그러나 그 시대의 사람들은 노아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홍수가 나서 다 멸하기까지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는 일에만 바빴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제시하신 구원의 길, 방주 속에 들어가는 일은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결국 그들은 심판을 받고 말았습니다. 홍수로 인하여 죽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를 향해서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믿음으로 십자가에 달린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자는 살리라.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로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으리라’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자는 삽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바라보지 않는 자는 멸망할 수 밖에 없습니다.
둘째로 모세는 믿음으로 피 뿌리는 예를 정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어린양을 잡아 그의 피를 문설주 인방에 발랐습니다. 그날 밤 죽음의 사자 애굽 전역을 덮칠 때 피가 묻어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집은 구원을 받고 피가 없는 애굽 사람들의 집엔 사람의 첫째 승들의 첫 새끼가 모두 다 죽었습니다. 믿음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모세를 통한 믿음으로 제정한 피 뿌리는 예는 결국 무엇을 상징하는 것입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건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린양의 피를 집 문설주에 발라야 구원을 받을 수 있었듯이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만이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침례 요한은 예수님을 보면서 이렇게 외쳤습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사도 바울은 좀 더 구체적으로 고전 5:7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켜서 유월절 양이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사랑하셔서 그의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그 뜨거운 보혈을 아낌없이 우리를 위해서 다 흘려주셨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구원이 임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구원을 얻고자 하는 자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나의 죄 때문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었다는 것을 믿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죄 사함을 받았다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오래 전에 나이아가라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배 한 척이 나이아가라 폭포 근처에서 뒤집혔습니다. 배에 탄 두 사람이 급류에 휩쓸려 낭떠러지로 떨어지기 직전이었는데 마침 강가에 있던 사람이 그것을 보고 밧줄을 던졌습니다. 그래서 두 사람이 다 붙잡았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강가로 나온 사람은 한 사람 뿐이었습니다. 왜 그런가 하고 보니까 한 사람은 계속 밧줄을 붙잡고 있었는데 다른 한 사람은 마침 큰 통나무가 떠나가는 것을 보고 밧줄을 놓고 통나무를 붙잡은 것입니다. 그는 생각할 때 밧줄보다는 통나무가 크고 안전하게 보였던 것입니다. 결국 통나무를 붙잡은 사람은 통나무와 함께 낭떨어지로 떨어지고 밧줄을 붙잡은 사람만 살았습니다. 이것이 구원입니다.
구원은 눈에 보기 좋은 것을 붙잡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던진 은혜의 밧줄을 붙잡아야 합니다. 은혜가 밧줄이고 그것을 붙잡는 것이 믿음이고 그 은혜에서 난 믿음이 우리에게 구원의 강가로 인도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피만이 우리를 구원합니다. 아멘
류복현 목사 (킬린한인침례교회 담임목사. 254-289-88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