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은 어떤 것일까요?
아벨이 드린 예배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습니다. 예배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귀한 행위입니다. 그래서 아벨이 드린 예배를 기쁘게 받으셨습니다. 믿는 사람들이 그래서 예배를 소중하게 여겨야 합니다.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습니다. 믿는 사람들은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생활로 증거하는 것입니다. 지식으로만 하나님을 아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생활에서 하나님을 보여주는 일입니다.
노아의 방주 지음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습니다. 홍수를 경험해보지 못했지만, 하나님을 믿는 마음으로 순종했습니다. 홍수라는 것을 노아는 알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잘 이해가 되지는 않았어도 하나님의 지시대로 배를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이 그의 순종하는 행동을 보시고 기뻐하셨습니다.
아브라함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사람이라고 성경은 증거하고 있습니다.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창 15:6)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히 11:8)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인물 가운데 믿음이라는 단어가 제일 먼저 직접적으로 사용된 인물은 아브라함입니다. 아브라함 이전의 세 인물 아벨, 에녹, 노아에 대해서는 그들의 삶을 기록하고 있는 구약성경의 창세기 자체는 믿음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신약에 와서 히브리서 기자가 그들의 삶을 믿음의 시각을 통해서 조명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에 대해서는 믿음이라는 단어를 창세기가 직접 사용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브라함을 가리켜서 믿음의 조상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우리에게 보여주었던 아름다운 믿음에 대해서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을 살펴보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시는 은혜를 함께 나누기를 원합니다.
1.믿음이 생기려면,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창 12:1-3)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어요. 아브라함은 그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믿음이 생겨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 중요합니다. 믿음생활(신앙생활)의 출발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롬 10:17)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아멘.
하나님과 사람의 소통 방법은 다양합니다. 구약시대엔 직접 나타나셔서 말씀하셨습니다. 노아, 아브라함, 모세에게도 직접 말씀하셨습니다. 때로는 선지자를 통해서도 말씀하셨습니다. 엘리사, 이사야, 예레미야 등 선지자를 통해서도 말씀하셨습니다.
신약시대엔 성경으로 말씀을 하십니다. 성경은 완성된 계시입니다. 직접 성경을 읽을 때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설교를 들을 때에도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설교를 통해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때로는 특수한 방법으로 말씀하십니다. 쓰나미, 태풍, 흉년, 전쟁, 지진, 질병 등의 방법을 통해서 말씀을 하시고 계십니다.
기독교 철학자인 프랜시스 쉐이퍼 박사가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분은 거기에 계신다. 그리고 그는 말씀하신다. 그 분은 침묵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어디에도 계시고 어느 장소나 어떤 사건에서도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재난의 현장에도 계시고, 전쟁 중에도 계십니다. 그렇습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코로나 19’ 로 한국교회의 신실한 목사님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를 통해서 하나님이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는 것입니다. 한국교회를 향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우리가 듣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이 우주 속에는 가득합니다. 라디오에 다이얼을 맞춰 보세요. 당장 소리가 들려요. TV 채널을 맞추면 그림도 보고 소리도 듣습니다. 우리의 마음의 귀가 하나님에게 맞추어져 있으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이 백성에게 가서 말하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며, 보기는 보아도 도무지 알지 못하는도다’ (행 28:26) 듣지 못하고, 보지 못합니다. 그리고 깨닫지 못합니다.
어린 사무엘이 성전에서 엘리 제사장을 섬길 때 (삼상 3장)
밤중에 ‘사무엘아, 사무엘아.’ 부르는 음성을 듣고, 엘리 제사장에게로 달려갑니다. ‘내가 너를 부르지 않았다. 가서 자거라.’ 3번이나 같은 일이 반복되자 엘리 제사장이 “하나님이 너를 부르신다. 또 부르거든 ‘여호와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그렇게 대답을 하라”고 했습니다. 역시 네 번째 하나님이 사무엘을 부릅니다. 그 때에 엘리 제사장이 가르쳐 준대로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라고 응답합니다.
어떤 방법으로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십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멘.
류복현 목사 (킬린한인침례교회 담임목사. 254-289-88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