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허’라는 영화를 잘 아실 것입니다. 벤허는 미 육군 장군 출신인 왈레스(Lew Wallace)라고 하는 소설가가 쓴 작품을 영화화한 것입니다. 그런데 왈레스가 이 작품을 쓴 동기는 아주 우연한 것이었습니다.
어느 날 그의 친구인 봅 잉거졸이라는 사람이 성경에 나오는 인물을 소재로 소설을 쓰면 베스트 셀러가 될 것이며, 특히 예수의 생애에서 로맨스에 관하여 쓰면 대단히 인기 있는 소설이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왈레스는 예수를 알기 위하여 성경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왈레스는 본래 반기독자이며 무신론자였습니다. 그렇지만 소설을 쓰기 위해서는 예수를 알아야 했고, 예수를 알기 위해서는 성경을 읽었습니다. 그런데 왈레스는 읽은지 얼마되지 않아 예수님을 깊이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 무릎을 꿇게 되었습니다. 후에 그는 ‘나는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를 발견했을 뿐 아니라, 예수님이 내 책의 중심이 되었고 내 마음의 중심이 되었소’라고 고백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유명한 그리스도인이 되었던 것입니다.
벤허의 마지막 장면은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문둥병이 고침을 받고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만나게 될 때 인간의 마음이 새로워지는 변화의 역사를 체험하는 것을 그리고 있습니다.
세상은 온통 나쁜 소식들뿐입니다. 코로나 이야기, 실업자 이야기, 슬프고 암울한 이야기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 이야기는 우리에게 희망을 줍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자신감을 줍니다. 희망 그리고 자신감.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인생이 달라집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생명의 길, 영생의 길을 가게 됩니다. 왜냐하면 부활신앙을 갖기 때문입니다.
부활신앙은 절망하지 않고 희망가운데 살아가는 모습이지요. 십자가에서 나를 위해서 죽으신 예수님. 그리고 3일 만에 부활하신 예수님. 그 예수님을 만나면 인생이 달라집니다.
제 2차 세계대전의 영웅 윈스턴 처칠 수상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평소 유머가 넘치는 괴짜였는데, 이렇게 유언을 했습니다. 장례식을 할 때 처음에는 취침나팔을 불고, 마지막에는 기상나팔을 불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엄숙한 장례식에 기상나팔을 부는게 이상하지만, 거기에는 그의 신앙 고백이 들어 있습니다. 죽으면 우리 영혼이 천국에 가고 육체는 잠시 쉬다가 주님이 재림하는 그 날 천사장의 나팔 소리와 함께 무덤에서 일어나 부활할 것입니다. 부활의 신앙이 확실한 신앙고백이지요.
분명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확실한 믿음의 사람이지요.
웰치(Welch) 음료 회사를 아시죠. 세계적인 기업입니다. 그 창업자는 웰치입니다. 그는 본래 아프리카 선교사로 가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신체검사 결과 아내가 아프리카 기후에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체질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탈락한 후 그는 실망한 채 고향에 돌아갑니다. 방황하다 깨닫고 결심합니다. 선교사로 가지 못하면 좋은 일로 돈을 벌어서 선교사들을 후원하면 되지 않나 생각합니다.
웰치의 아버지는 치과의사였는데, 부업으로 알코올이 없는 성찬용 포도즙을 만들었습니다. 그는 그 사업을 물려받아 주님만 위해 돈을 쓰리라 결심하고 최선을 다합니다. 그 결과 세계적인 기업을 일구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약속한 대로 수입의 절반을 선교를 위해 드렸습니다. 절망에서 소망으로, 이것이 부활 신앙이지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사람의 모습입니다.
금년엔 4월 12일을 부활절로 지킵니다. 단순히 교회 달력에 의해서 부활절을 지키는 것이 아니고, 부활신앙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부활신앙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사람만이 부활신앙을 가질 수 있습니다.
말씀드린 윈스턴 처칠, 웰치 같은 분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기에 부활신앙을 가지고 살아간 것입니다. 취침나팔과 기상나팔을 불어 달라. 실망이 아닌 희망을 갖고 살아가는 모습들입니다. 이것이 바로 부활신앙입니다. 살아있는 믿음입니다. 죽은 믿음이 아닙니다.
막달라 마리아. 일곱 귀신들렸던 여인인데, 예수님을 만나서 귀신에게서 해방되고 예수님에게 헌신적인 삶을 살았던 믿음의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가에 못박혀 죽으시자, 심지어 12제자들도 예수님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막달라 마리아는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살로메가 함께 예수님의 무덤에 갑니다.
그들은 시체에 향품을 바르러 갔으나 시신 예수님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대신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제일 먼저 한 일은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들이 실망가운데 잠겨있을 때, 그들에게 가서 기쁜 소식을 전합니다. ‘예수님이 살아나셨다’
오늘 우리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다면, 우리가 제일 먼저 할 일은 ‘전도하는 일입니다. 예수님이 살아나셨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전도하는 일입니다. 전도하는 일은 공식도 법칙도 없습니다.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 열한 사도들은 절망가운데 슬퍼했었지만, 부활의 주님을 만난 후 기쁨이 넘쳤습니다. 희망으로 가득했습니다. 더 이상 세상이 두렵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두 제자가 가던 길에서 돌아서 예루살렘으로 달음질쳤던 겁니다.
에반스라는 박사가 군의관으로 전쟁에 참여했을 때의 자신의 경험담을 글로 발표한 적이 있습니다.
한 사병이 중상을 입고 야전병원으로 호송되어 왔습니다. 군의관 한 사람이 바쁘게 지나가다가 이 환자를 잠깐 들여다보고 무심코 말했습니다. ‘이 친구, 내일 새벽까지만 죽지 않으면 희망이 있어’ 신음하던 사병의 귀에 이 한 마디가 깊이 새겨졌습니다. 그리고 그는 춥고 긴 밤을 잘 견뎠습니다. 왜냐하면 해가 뜰 때까지만 살아 있으면 자신은 죽지 않는다는 희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는 밤새 고통을 잘 견디어 살아나게 되고 나중에는 퇴원하게 되었습니다.
희망은 사람을 살린다는 것입니다. 희망만 있다면 어떠한 난관도 극복할 수 있습니다. 희망은 사람을 살맛나게 만듭니다. 그러나 반대로 절망은 어떻습니까? 절망은 삶을 포기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절망은 산 사람도 죽음으로 재촉합니다. 그래서 절망이 무섭다는 것입니다.
부활 신앙이라는 것이 바로 희망을 갖게 하는 것입니다.
류복현 목사 (킬린한인침례교회 담임목사. 254-289-88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