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개의 도전 그리고 변신
솔개는 부리가 기역자로 날카롭게 구부러져 있습니다. 몸의 크기는 약 60Cm 정도입니다. 가만히 살펴보면 독수리를 축소시켜 놓은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부리 끝이 바늘처럼 날카롭고 눈은 동그랗고 예리한 빛을 발산합니다. 그리고 발톱도 칼날처럼 매섭습니다. 주로 들쥐, 뱀, 개구리 같은 것들을 먹고 삽니다. 닭도 잘 잡아 먹습니다.
시력이 얼마나 좋은지 8Km 떨어진 곳에 있는 먹이감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솔개의 눈은 인간이 가진 시력의 20배가 되는 놀라운 기능을 갖고 있습니다.
날개를 활짝 펴고 부드럽게 날아가다가 목표물이 나타나면 고속도로를 달리는 승용차의 4배 정도의 속도로 급강하해서 먹이를 날렵하게 채어 갑니다.
이 솔개가 40년 정도를 살면 날개도 터부룩하게 무거워지고 부리도 둔해집니다. 그 부리가 크게 자라서 가슴까지 닿게 되고 발톱도 그리 날카롭지 않을 정도로 뭉툭해져서 생존의 위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더 이상 하늘을 비행하면서 사냥하는 일이 좀처럼 쉽지 않은 지경에 이르고야 맙니다. 그 정도로 늙고 둔한 모습으로 바뀌게 된 솔개는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첫째는 그냥 늙어서 쓸쓸하게 죽든지, 둘째는 다시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서 멋지게 살든지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솔개들은 그냥 죽지 않고 새로운 변신의 삶을 추구한다고 합니다.
높은 산의 정상에 올라가 부리로 바위를 쪼아서 자신의 부리를 전부 깨뜨려 버립니다. 그 끔찍한 도전이 얼마나 아프고 힘든 작업입니까. 그래도 솔개는 새로운 삶을 위하여 자신의 부리를 매섭게 깨는 일을 멈추지 않습니다.
깨지고 부서진 부리가 홀라당 빠져버리면 신기하게도 새싹이 돋아 나오듯이 그 자리에서 새로운 부리가 자라납니다.
예리하고 멋진 부리가 나오면 그 다음 작업에 들어갑니다. 그것은 그 새부리로 자신의 발톱을 하나씩 뽑아내는 일입니다. 피가 나고 살이 찢어지는 고통이 오지만 그것을 참고 솔개는 그 발톱을 남김없이 모두 부리로 쪼아서 뽑아 냅니다. 그러면 날카롭고 깨끗한 발톱이 나옵니다.
마지막 작업은 그 부리로 깃털을 한 개씩 뽑아내는 일이다. 발톱을 뽑는 일에 비하면 깃털을 제거하는 일은 쉬운 일입니다. 깃털이 뽑혀진 자리에서는 새로운 깃털이 나옵니다.
그렇게 약 6개월이 지나면 그 솔개는 노인이 아니라 세련되고 멋진 청년처럼 스마트한 솔개로 다시 태어납니다. 새롭게 변신한 그 솔개는 그 이후로 약 30년을 더 살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참으로 상상을 초월하는 놀라운 솔개의 변신이 아닐 수 없습니다.
솔개의 삶을 통해서 깨달은 점이 많습니다. 그리스도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과거의 옛사람을 과감하게 깨어서 벗어버리고 새로운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지 않으면 절대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새로운 사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생각이 변하고, 말이 변하고, 행동이 변해야 합니다. 여전히 옛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하나님과 상관이 없는 삶을 사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골 3:1-2)
“있는 책 자랑 말고 읽은 책 자랑하자” “아는 것이 힘이 아니고, 행하는 것이 힘이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지식은 교만케 하지만 행동은 겸손케 하며 사람들에게 감동을 줍니다. 믿음생활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니고 행동으로 하는 것입니다. 유창한 기도보다는 더듬거리면서 전도하는 것이 능력입니다.
새사람은 예수님처럼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흉내 내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곧 예수님을 닮는 것입니다. 믿음이 깊은 사람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세상에 바람이 좀 불어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시험이 와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왜? 예수님을 닮아있기 때문입니다.
‘좋아한다는 것’은 그 사람으로 인해 내가 행복해졌으면 하는 것이고,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이 나로 인해 행복해졌으면 하는 것입니다. 좋아한다는 것은 자신의 감정에 충실한 것이고, 사랑한다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의 감정에 충실한 것입니다.
열심히 교회를 다니고 예수님이 좋다고 말하는 사람이 정작 시간이 지나도 자신의 삶이 변하지 않는 이유는 단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하고 주님의 마음과 감정에는 별로 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텍사스 의과대학의 스미스 박사는 심장 분야에서 세계적인 권위자입니다. 그가 어느 날 심장마비로 쓰러졌습니다. 그런데 그가 쓰러진 후에 신비한 체험을 하게 됩니다. 사람들이 쓰러진 자기 몸을 응급실로 싣고 가 응급조치를 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온갖 조치를 다하였으나 효과를 보지 못하자 의사들이 그의 얼굴을 흰 시트로 덮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어디론가로 한없이 가다가 마침내 심판대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가 심판을 받게 되었는데 심판의 기준은 그가 살아 생전에 쏟아낸 말이었습니다. 천사는 내가 평소에 무심코 내 밷은 말들로 상처를 입고 괴로워 하는 지인들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반면에 대수롭지 않게 던진 위로의 말 한마디로 힘을 얻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말 한마디가 그렇게 중요한지를 비로서 깨달았습니다. 자신의 모습을 후회하면서 천사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달라고 했습니다. 천사는 말했다. “말은 씨앗이다. 씨를 뿌리면 자라서 열매를 맺듯이, 말도 상대방의 가슴에 자라서 열매를 맺는다. 좋은 말을 하면 좋은 열매를 맺고 나쁜 말을 하면 쓴 열매를 맺는 법이다” 천사의 말을 듣고 기적적으로 스미스 박사는 다시 깨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 후로 틈틈히 “우리가 평소에 하는 말이 상대방에게 얼마나 중요한가?”를 주제로 강연을 다녔다고 합니다.
“그리스도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보라 옛 것은 지나갔으니 새 것이 되었도다” 새사람이 되면, 생각이 변합니다. 생각이 변하면 말이 변합니다. 말이 변하면 행동이 변합니다. 행동이 변하면 인생이 변합니다. 여러분의 인생이 새로운 인생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류복현 목사 (킬린한인침례교 담임) 254-289-88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