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밝았습니다. 지난날을 잊어버리고 새해에는 새 마음으로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사람들은 나름대로 성공하려고 몸부림을 칩니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다 이루었다고 해도 그것이 성공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신앙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죽은 후에 역사가 심판할 것이고, 신앙들은 죽어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야 그것이 정확합니다.
독일의 탄광촌 작은 신발 수선집에서 시작하여 유럽 신발업계의 신화를 창조한 독일의 13번째 부자가 된 가문이 있습니다. ‘다이히만’ 가문입니다. 다이히만은 독일 본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뒤셀도르프 대학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이후 정형외과 의사로 활동하다가 1956년 의사직을 포기하고 경영에만 매진하여 다이히만사를 유럽 최고의 신발기업으로 성장시켰습니다. ‘발을 위한 국민신발’로 불리는 다이히만사는 고객이 원하는 신발을 최소 이윤만 남기고 공급하는 기업으로 유명합니다. 그는 기독교 신앙을 토대로 ‘벌 수 있는 한 최대로 벌고, 할 수 있는 한 최대로 절약해서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나누자’ 라는 목표 아래 수많은 지원 사역을 펼쳐오고 있습니다. 인도에 나환자촌을 세워 물질적, 의료적으로 지원하고, 아프리카 탄자니아에는 병원과 학교를 건립해 지역주민이 자립할 수 있도록 돕고 있으며, 이스라엘 벤구리온 대학과는 사막을 농지로 바꾸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또 ‘말과 행동’ 이라는 구호단체를 설립하여 독일은 물론 제3세계의 여러 나라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경영자의 나눔 정신을 이어받은 직원들은 자신의 월급의 일정액을 이웃돕기 성금으로 내는데 적극적으로 참여합니다. 공적인 자리에서 스스로를 크리스천이라고 이야기하는 다이히만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 인생의 마지막에 하나님은 내게 얼마나 많은 신발을 팔았느냐고 묻지 않으실 겁니다. 그 분은 내가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았는지, 복음을 전파했는지 물으실 겁니다. 나는 그 일을 할 뿐입니다.” 독일에서 13번째 가는 부자였지만, 그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부를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관심을 가지고 보시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꺼이 내어주었습니다. 진정한 부자가 어떤 사람인지 보여준 사람이 바로 다이히만입니다. 우리는 무언가를 소망하며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 소망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서 달려갑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신에게 물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도대체 쉬지 않고 달려 얻으려는 것이 무엇인가?’ 라는 질문입니다.
바울이라는 사람은 좋은 가문에 태어나서 하고 싶은 공부도 많이 한 사람입니다. 신앙적으로도 흠과 티가 없는 바리새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에는 예수님을 핍박하는 어리석은 삶을 살았지만, 예수님을 만난 후에는 예수님을 위하여 평생을 헌신한 사람입니다. 기독교 역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믿음의 사람입니다. 그는 로마의 핍박에 의하여 목 베임을 당하는 순교를 당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그를 인생의 실패자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성공자라고 말합니다. 그는 로마 감옥에 있었습니다. 자신의 죽음이 다가옴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좌절하거나 실망하지 않고 오히려 더 믿음의 든든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바울은 예수님에게 잡힌 사람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리고 더 예수님 가까이에서 살기를 원한다고 말합니다. 그의 남은 인생을 예수님께 더 가까이 가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위하여 달려가고 있습니까? 무엇에 잡혀서 살아갑니까?
1) 아직도 미완성이라는 고백입니다 (12절)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바울처럼 신실하게 살아간 믿음의 사람이 아직도 부족하다고 고백하는 것은 겸손 그 자체입니다. 우리가 더 열심히 예수님 가까이 가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가 다 된 줄로 알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을 오래한 사람들 중에는 더 들을 것이 없는 사람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바울 같은 사람이 그것도 청춘을 바쳐서 목숨을 바쳐서 충성을 다 한 사람이, 이제 감옥에서 순교할 날을 기다리는 사람이 나는 아직도 부족하다고 합니다. 날마다 배우고 날마다 깨닫고 날마다 더 주님께 가까이 나아가도록 해야 합니다.
2)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일은 잊어버리고 (13절)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어제까지의 일을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좋은 일도 나쁜 일도 다 잊어야 합니다. 다만 하나님의 은혜는 절대로 잊어서는 아니됩니다. 뿐만 아니라 사람들에게 입은 은혜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살다보면 섭섭하고 서운한 것도 있습니다. 그래도 고마웠던 일을 생각해 보면 이해가 될 것입니다. 발명가 토마스 에디슨이 67세 되던 어느 겨울날 실험실이 불에 탔습니다. 실험실에 있던 모든 자료들과 실험 기구들이 잿더미로 변했습니다. 이런 안타까운 상황 속에서 에디슨은 아내와 아들, 그리고 동네 사람들을 불러 함께 불구경을 했습니다. 수십 년간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는 장면을 태연히 바라보는 에디슨에게 아들이 묻습니다. “아빠, 실망되지 않으세요?” “어차피 끌 수 없는 불인데 실험실을 잃었다고 해서 웃음마저 잃어서야 되겠니?” 얼마나 의젓한 자세입니까?
3)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14절)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좇아간다’는 말은 ‘멈출 수 없는, 달려간다’는 말입니다. 목표가 분명합니다. 무엇을 위하여, 어디로 가야 하는가? 헝가리 귀족의 딸로 태어나 성과 같은 집에 살면서 수많은 하녀와 하인, 그리고 개인 운전사와 가정교사가 있는 집에서 살았던 메리안 프레민저라는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여행을 갈 때에는 꼭 침구를 싸갔습니다. 왜냐하면 보통 사람들이 사용한 시트를 사용하는 것은 귀족의 존엄성을 해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18세에 의사와 결혼했으나 1년 뒤 헤어지고 배우가 되어 젊고 잘 생긴 영화감독과 재혼하여 헐리우드의 화려함과 환락 속에 빠져 살다가 이혼하고 유럽으로 돌아가 파리 사교계의 여왕처럼 지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을 교회에서 오르간을 치고 있는 슈바이처 박사를 만나 대화하던 중 그녀의 마음 속으로 하나의 빛이 들어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녀는 슈바이처 박사가 있는 아프리카 렘버린(Lambarene) 병원으로 날아갔습니다. 그리고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됩니다. 거대한 성에서 태어나 공주처럼 자라났고, 사교계의 여왕처럼 살았던 그녀가 흑인의 종이 되어 살았습니다. 매일 환자들을 헌신적으로 치료하고 아기들을 목욕시켜 주었고, 문둥병자들에게 식사를 먹여주었습니다. 그녀는 자서전에서 슈바이처의 말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는 돕는 사람과 또 하나는 돕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녀는 돕는 사람이 되기로 결심하고, 그 뒤로는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삶을 살았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2023년 새해를 맞아 새 결심으로 복된 삶을 사시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류복현 목사 (킬린한인침례교 담임) 254-289-88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