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통(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단장의 미아리 고개’
♬ 미아리 눈물 고개 님이 넘던 이별 고개. 화약 연기 앞을 가려 눈 못 뜨고 헤매일 때. 당신은 철사 줄로 두 손 꼭꼭 묶인 채로. 뒤 돌아보고 또 돌아보고 맨발로 절며 절며. 끌려가신 이 고개 한 많은 미아리 고개.
625 때에 북한으로 끌려간 가족의 애타는 마음을 그린 노래입니다. 단장이란 말은 ‘창자가 끊어지는 듯한’이란 말입니다. 가족이 끌려간 미아리 고개를 보면서 창자가 끊어지는 듯한 아픈 마음을 그린 노래입니다.
중국의 진나라 ‘환온’이 촉나라를 정벌하러 가다가 한 지역을 지나가는데 한 병사가 원숭이 새끼를 한 마리 잡아 데리고 갑니다. 그러자 어미 원숭이가 슬피 울며 백 여리를 뒤 따라 오는 것 입니다. 새끼 원숭이를 잡은 병사가 배에 타자 어미 원숭이가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병사들이 어미 원숭이의 배를 갈라 보니 창자가 토막토막 끊어져 있었다는 것입니다. 새끼를 잃은 슬픔이 그만큼 컸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큰 슬픔을 가리켜 ‘단장의 슬픔’ 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애통은 바로 단장의 슬픔과 같은 것입니다. 가슴이 찢어지듯 아파하며 우는 상태를 말합니다. “흐르는 눈물은 괴로우나 그보다 더욱 괴로운 것은 흐르지 않는 눈물이다.” 라는 아일랜드 속담이 있습니다. 눈물 그 자체는 괴로운 것이지만 눈물을 잃어버린 이 시대는 더욱 비극적인 시대입니다.
“인생은 없고, 없고, 없다가, 없어지는 존재이다”라고 말이 있습니다. 어릴 때는 철이 없고, 젊어서는 정신이 없고, 중년이 되면 돈이 없고, 늙어지면 건강이 없다가, 마지막에는 울음소리를 들으며 없어지는 존재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인생살이가 힘들고, 눈물겨운 일들이 많은데 어찌하여 예수님은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일까요?
예수님은 ‘마음이 아파서 울고 몸이 아파서 우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마음이 아파서 우는 자들에게도 긍휼을 베풀어 주셨고 몸이 아파서 우는 자들에게도 긍휼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우는 자는 주님의 위로를 받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눈물이 없는 세대를 향하여 한탄하셨습니다.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하여도 너희가 울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눅 7:32)
마태복음에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누가복음엔 같은 말인데 다른 표현이로 “우는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웃을 것임이요” (눅 6:21) 이것이 기독교의 역설적인 진리입니다. “밤새도록 눈물을 흘려도 새벽이 오면 기쁨이 오리라” (시 30:5) 다윗의 고백입니다. “슬픔이 웃음 보다 나음은 얼굴에 근심함으로 마음이 좋게 됨이니라” (전 7:3) 솔로몬의 고백입니다. 우는 자가 웃습니다. 슬퍼하는 자가 기뻐합니다. 눈물이 많은 사람이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슬픔이 많은 사람이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위로를 받게 됩니다.
1. 나 때문에 우는 자가 복 있는 자입니다.
나의 죄와 불행 때문에 우는 자가 복 있는 자입니다. 다윗은 자기의 죄 때문에 애통하며 울었습니다. 자기 속에는 의도 없고 선도 없고 거짓과 탐욕과 죄악만 있는 것을 바라보며 애통하며 울었습니다. 자기 속에 옳은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며 슬프게 울었습니다. 다윗은 눈물이 많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하나남의 위로를 받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다윗이 위대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다윗을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다고 하셨습니다.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 (시 6:6). “여호와여 나의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소서. 내가 눈물 흘릴 때에 잠잠하지 마옵소서” (시 39:12)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 (시 56:8) 누구든지 자기의 죄악을 슬퍼하며 울기만 하면 하나님은 그를 불쌍히 여기시고 자비를 베푸십니다.
히스기야왕이 병 들어 죽게 되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를 보내 삶을 정리를 하라고 하셨을 때에, 히스기야왕은 기도합니다. 그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네 수한을 15년 더하고, 너와 이 성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건지겠고, 내가 이 성을 보호하리라” (사 38:5-6)
2. 다른 사람 (이웃, 남) 때문에 우는 자가 복 있는 자입니다.
‘남의 불행이 나의 행복’ 세상의 이치는 그래요. 그러나 남의 죄와 불행 때문에 우는 자가 복 있는 자입니다. 선지자 예레미야는 동족이 범한 죄악 때문에 그리고 동족이 당하는 불행 때문에 한 평생 슬프게 울었습니다. 바울은 소 아시아와 마게도냐에서 복음을 전하면서 그들의 불신앙과 불순종을 바라보며 애통하며 눈물을 흘렸다고 했습니다.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행 20:31).
남의 죄와 불행 때문에 우는 자가 복 있는 자입니다. 이웃의 죄와 불행 때문에 우는 자가 복 있는 자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우시는 마음이고 주님의 우시는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이웃을 위해서 우는 자가 하나님의 위로를 받기 때문입니다.
3. 주님 때문에 우는 자가 복 있는 자입니다.
주님의 사랑 때문에 그리고 주님의 일 때문에 우는 자가 복 있는 자입니다. 나사로의 동생 마리아는 주님의 사랑 때문에 눈물을 쏟으며 울었습니다. “그 동네에 죄인인 한 여자가 있어 예수께서 바리새인의 집에 앉으셨음을 알고 향유 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서 예수의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씻고 그 발에 입 맞추고 향유를 부으니” (눅 7:37,38) 자기에게 베푸신 주님의 사랑을 생각하면서 그 여인은 슬픔과 기쁨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주님의 한없는 사랑을 생각하면 할수록 그녀의 가슴에는 슬픔과 기쁨이 가득했을 것입니다. 진정한 사랑에는 슬픔도 있고 기쁨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 여인의 눈물이 바로 주님을 향한 뜨거운 사랑 때문에 흘린 눈물이라고 말씀하시면서 그 여인을 위로하시고 칭찬해 주셨습니다. “이는 저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47) 주님의 사랑 때문에 눈물을 흘리는 사람은 주님의 위로와 칭찬과 사랑을 받습니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위로가 있습니다. 나 때문에 울고, 이웃 때문에 울고, 주님 때문에 우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입니다. 어떻게 애통하는 자가 될 수 있습니까? 성령의 감동을 받아야 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행복으로 가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위로와 사랑과 축복을 받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애통하는 축복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류복현 목사 (킬린한인침례교 담임) 254-289-88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