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교를 갓 졸업한 전도사가 야심차게 교회를 개척하면서 교회의 이름을 짓는데 고민을 하다가 교회의 이름을 ‘의인교회’로 지었습니다. 그리고 교회를 개척하고 열심히 전도를 하고 목회를 했으나 교회에 새 신자는 오지 않고 교회는 부흥되지 않았습니다. 고민하다가 신학교 교수님을 찾아가서 상담을 했습니다. 이런 저런 상담을 다가가 교회 이름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교회 이름이 의인교회이기에 사람들이 부담이 되어서 안 오는 것 같으니 교회 이름을 바꾸어 보아라고 조언을 해 주셨습니다. 그러면 무슨 이름이 좋겠습니까? ‘죄인교회’라고 해 보아라. 교수님과 상담을 마치고 돌아와서는 교회의 간판을 바꾸었습니다. 그랬더니 사람들이 교회에 나오기 시작하면서 큰 부흥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이 이야기 속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두 가지를 착각합니다. 하나는 나는 죄인이라 교회를 나갈 수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전도를 해 보면 어떤 사람들은 “저는 죄가 많아서 교회를 못나갑니다. 이 다음에 선하게 살면 나갈게요” 여러분 교회는 죄인이 나오는 곳입니다. 죄가 없으면 나올 필요가 없지요.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그러므로 교회는 죄인들이 모이는 것입니다. 저부터 죄인입니다. 우리 모두가 죄인입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롬 3:10) 세상사람 모두가 다 죄인입니다. 병든 사람이 병원에 가기 전에 집에서 병 좀 나은 다음에 간다고 하면 말이 되는 소리입니까? 아프니깐 병원에 가는 것입니다. 교회는 ‘죄인을 위한 처소’ 입니다.
두 번째의 착각은 자기는 의인이라는 것입니다. 교회에 갈 필요가 없다고 합니다. 그리고 교회 다니는 사람들을 정죄합니다. 집사가 권사가 장로가 나쁘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누가복음 18장에 등장하는 바리새인과 세리의 이야기 같은 이야기입니다. 바리새인은 세리와 비교하면서 자기는 의인이라는 것입니다. 일주일에 두 번씩 금식하고, 십일조를 드리고, 간음하지 않았고, 도둑질하지 않았고, 불의하지 않았고, 토색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저 뒤에서 기도하는 세리와 같지 않다는 것입니다. 내가 누구와 비교해 보면 나는 그 사람보다 나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내가 의인은 아닙니다. 역시 죄인입니다.
1. 시 몬
안드레는 침례 요한의 제자였습니다. 그러다가 예수님이 오신 소식을 듣고 그의 선생 침례 요한이 예수님에게 소개를 해 줍니다. 안드레는 밤이 새도록 예수님과 만남을 통해서 그 분이 메시야임을 깨닫게 됩니다. 믿게 됩니다. 너무나도 기뻐서 그의 형제 시몬을 예수님에게로 데리고 옵니다. 그래서 시몬도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때에 예수님이 시몬에게 “지금은 시몬이지만 장차는 게바가 되리라” 지금은 시몬입니다. 앞으론 게바(반석-베드로)가 될 것이다. 게바란 말은 아람말입니다. 베드로는 헬라 말이지요. 뜻은 반석이라는 말입니다. 시몬이라는 말은 갈대란 말입니다. 시몬은 갈대라는 의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갈대 같은 연약한 존재요. 흔들리는 존재입니다. 언제 부러질지 모른 존재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으나 여전히 시몬입니다. 요한복음 21장에 등장하는 예수님과의 베드로와의 결정적인 만남 속에서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요한의 아들 시몬아”라고 부르십니다. 3년 동안 예수님의 제자로써 생활을 했으나 변한 것이 없습니다. 갖가지의 은혜를 체험했으나 여전히 시몬입니다. 갖가지의 은사를 체험했으나 여전히 시몬입니다. 예수님을 만난 지 얼마가 되었습니까? 예수님을 만난 지 몇 년이 되었습니까? 과연 여러분은 변하셨나요? 게바가 되셨습니까? 시몬에서 베드로가 되셨습니까?
예수님을 만나기 전의 성격이 성품이 인격이 생활이 변했나요?
아직도 여전히 그 옛날의 성격. 아직도 여전히 그 옛날의 성품. 아직도 여전히 그 옛날의 인격. 아직도 여전히 그 옛날의 생활.
이제는 변해야 합니다. 성격도 변하고, 성품도 변하고, 인격도 변하고, 생활도 변하고 여전히 시몬의 자리에 앉아 있으면 주님께서 기뻐하지 않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가 아니고 “베드로야” 이렇게 불려져야 합니다.
2. 게 바 (베드로)
든든한 반석이 되어야 합니다. 갈대라는 말은 얼마나 연약해 보입니까? 그러나 ‘반석’은 얼마나 믿음직해 보이며 안정감이 있어 보입니까? 주님 안에서 교회 안에서 믿음 안에서 듬직해 보여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도 교회도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일을 맡기실 것 아닙니까? 변해야 듬직해 지는 것입니다. 시몬이 오순절의 성령을 체험하고 변합니다. 게바가 됩니다. 담대해 집니다. 옛날의 시몬이 아닙니다. 담대히 하나님의 복음을 전합니다. 예수 십자가의 구원의 복음을 전합니다. 오순절에 한 번의 설교로 3000명이 회개를 합니다. 두 번째 설교에 5000명이 회개합니다. 40년이나 앉은뱅이로 살아 온 사람을 걷게 합니다. 제사장 앞에서도 담대히 예수를 증거 합니다. 감옥에 들어감도 무서워 하지 않습니다. 죽으면 죽으리라. 이것이 변한 믿음의 사람의 모습입니다. 성격이 변했습니다. 성품이 변했습니다. 인격이 변했습니다. 인품이 변했습니다. 생각이 변했습니다. 말이 변했습니다. 행동이 변했습니다.
비겁하던 성격에서 담대한 성격으로 변했습니다. 생명도 아까워하지 않는 담대한 순교자로 변합니다. 변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을 아브라함으로 바꾸어 주십니다. 좋은 아버지에서 열국의 아버지로, 그릇을 크게 바꾸어 주십니다. 믿음의 그릇이 작은 분은 큰 믿음의 그릇으로 바꾸어지시길 축복합니다.
사래를 사라로 바꾸어 주십니다. 좋은 어머니에서 열국의 어머니로요. 역시 큰 그릇의 사람으로 바꾸어 주십니다. 하나님의 특징은 작은 것을 크게 바꾸시는 능력의 역사를 이루십니다. 크게 변합시다. 콩알만한 믿음이 아닌 농구공만한 큰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크게 도전합시다. 크게 변합시다. 기도하는 일도 크게 합시다. 전도하는 일도 크게 합시다. 선교하는 일도 크게 합시다. 봉사하는 일도 크게 합시다. 헌신도 크게 합시다. 헌금도 크게 합시다. 생각을 크게 바꾸십시다. 가슴을 크게 여시기 바랍니다. 큰 은혜를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양치기 모세는 지도자 모세로 바뀌었습니다. 세상일에 얽매여서 살지 말고 이제는 하나님의 일을 하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십시오.
돈을 벌어도 나를 위해서 벌던 것을 이제는 예수님의 복음을 위해서 버십시오. 출세를 해도 나를 위해서 하던 것을 이제는 예수님의 복음을 위해서 출세를 하십시오. 공부를 해도 성공을 해도 모두 예수님의 복음을 위해서 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직장을 그만 두고 사업을 그만 두고 교회 일만 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생각과 태도가 바뀌는 것입니다. 이제는 살아가는 목적이 바뀌는 것입니다.
쌈꾼, 구경꾼, 말꾼에서 일꾼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누가 무슨 말을 하면 시비를 거는 쌈꾼 이였으면, 이제는 일꾼으로 바뀌시기 바랍니다. 교회에서 무슨 일이 있어도 구경하던 구경꾼에서 이제는 일꾼으로 바뀌시기 바랍니다. 일을 하지 않고 말만 많던 말꾼에서 이제는 손으로 발로 일하는 일꾼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쌈꾼을 원하지 않습니다. 구경꾼도 용납하지 않습니다. 말꾼은 더더욱 원하지 않으시며 용납하지 않으십니다. 그저 일꾼만을 원하십니다. 일꾼으로 바뀌시기 바랍니다.
류복현 목사 (킬린한인침례교회 담임목사. 254-289-88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