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제리에서 결혼식을 올린 한 남성이 첫날밤을 보낸 후 아내의 민 낯을 보고 깜짝 놀라 자신의 아내를 고소했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이 알제리 남성은 아랍에미리트연합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화장을 지운 채 옆에서 자고 있는 아내를 보고 자신이 결혼한 사람과 같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또 그는 “옆에 누워있는 여자의 모습이 자신의 아내와는 너무나 달라 낯선 사람이 자신의 아파트에 침입한 줄 알았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는 그들이 결혼하기 전에 아내가 화장품으로 그녀의 얼굴을 덮고 있어 자신이 속아 결혼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결혼 전에는 매우 아름답고 매력적으로 보였지만 아침에 일어나 처음으로 민 낯을 마주했을 때 그녀가 그의 집에 침입한 도둑인 줄 알았다는 것입니다. 남성은 사기죄로 아내를 고소하고 그녀에게 정신적 피해보상으로 2만 달러를 지급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래서 여자는 남자보다 늦게 자고 남자보다 일찍 일어나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행복이 어떤 조건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돈이 많으면 행복한가? 물론 없는 것 보다는 있는 것이 좋습니다. 건강하면 행복한가? 아픈 것 보다는 건강한 것이 좋습니다. 높은 권력을 가지면 행복한가? 천한 직업보다는 고급직업이 좋을 수 있습니다. 얼굴이 잘 생기면 행복한가? 못 생긴 것 보다는 잘 생기면 좋지요. 그러나 분명한 것은 행복이 외형적인 조건이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돈이 없어도 행복한 사람은 많습니다. 건강하지 못해도 행복한 사람도 많습니다. 사람들이 존경하지 않는 직업을 가져도 행복한 사람은 많습니다. 외모가 못 생겨도 행복한 사람은 많습니다. 행복이 외적인 조건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외적인 조건과 상관없이 볼수록 매력이 있는 사람이 있고, 볼수록 매력이 없는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볼수록 매력이 있는 사람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어떤 사람이 볼수록 매력이 있을까요. 1) 감사합니다. 미안합니다. 참 잘 했습니다. 칭찬과 격려를 많이 하는 사람입니다. 긍정적인 말을 하는 사람입니다. 2) 매사에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입니다. 3)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4) 남을 잘 돕는 사람입니다. 5) 범사에 겸손한 사람입니다. 6)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입니다. 7) 표정이 밝은 사람입니다. 성경을 중심으로 행복을 만드는 사람을 살려 보겠습니다. 행복은 우리가 만드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1) 항상 기뻐하는 사람 2) 항상 기도하는 사람 3)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 4) 성령님의 인도를 받는 사람 5) 말씀을 따라 순종하는 사람 6) 범사에 좋은 것은 취하고,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1.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은 취하고 (분별의 은사)
진리인가 비 진리인가를 구별할 줄 아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성령의 은사 중에 ‘영 분별의 은사’입니다. 진리의 성령님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악령이나 미혹하는 영, 거짓의 영을 받으면 비 진리로 인도 받게 됩니다. 좋은 사람인가 나쁜 사람인가도 구별해야 합니다. 믿음의 사람인가? 불신앙의 사람인가? 이기적인 사람. 부정적인 사람. 폭력적인 사람. 폭언하는 사람. 조심해야 할 사람들입니다. 좋은 교회인가? 나쁜 교회인가? 진리를 가르치는가? 비진리를 가르치는가? 정상적인 교회. 비정상적인 교회 (이단교회) 영 분별의 은사가 필요한 때입니다. 어느 시대나 그랬습니다. 초대교회 시대에도 순교를 각오하면서도 믿음을 지킨 사람이 있고, 살아남기 위해서 배교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초대교회 교회 역사를 보면 12살 된 아이가 믿음을 지키면서 순교한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옳고 그름에 대한 기준이 흐려졌습니다. 그 동안 인류 사회가 옳게 여겨 왔던 진리, 전통, 권위를 거부하거나 부정하며 반대를 합니다. 따라서 ‘서로 다른 것은 인정하자’는 상대주의가 생겨나고, ‘진리는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다’는 다원주의가 판을 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무엇이 기준인지, 무엇이 진리인지,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지 불명확해졌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혼란스러워합니다. 그래서 교회가 잘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서로 다른 것을 인정하는 것은 좋습니다. 나쁜 것, 악한 것까지도 다른 것이기 때문에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아닙니다. 다른 종교에도 구원이 있다고 하는 다원주의. 다른 것도 인정하자는 상대주의. 최근에 논란이 되고 있는 동성애도 같은 맥락입니다. 고대 로마 사회는 동성애를 정죄했습니다. 중세 때에도 동성애자를 정죄했습니다. 독일이나 영국 등에서도 동성애를 사형으로 다스리는 법률이 제정되었습니다. 미국에서도 18세기 말까지 사형에 해당하는 죄였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19세기에 이르러서는 동성애를 범죄로 인식하기보다 ‘정신적 요인에서 비롯된 성적 일탈 행위’ 쯤으로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미국에서는 주에 따라서 동성간의 결혼도 허락을 했습니다. 또 다른 나라에서는 성인들이 서로 동의하는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동성애는 범죄로 여기지 않고 있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정죄하기 보다는 그들을 위해서 기도해 주어야 할 것입니다. 정죄가 최선은 아닙니다. 모든 사람을 용서하고 진리가운데로 인도해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러시아의 소설가 도스토옙스키 (Dostoevskii) 는 “하나님이 없다면 무슨 일이라도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솔제니친(Aleksandr Solzhenitsyn)은 “만약 6천만 러시아인의 생명을 삼킨 무서운 혁명이 왜 일어났는지 내게 설명해 보라고 한다면, 나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잊어버렸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 외에 다른 답변을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2. 악은 모양이라도 버려라 (22절)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엡 2:10) 그렇다면 선하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성경에서 말하는 ‘선’은 ‘가치 있고 올바르며 좋은 것’을 뜻하는 말로 악의 반대말입니다. 성경에서 ‘선한(good)’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토브’는 ‘아름다운, 매력적인, 사모할 만한, 유용한, 도덕적으로 올바른, 사랑스러운 ’의 뜻을 지녔습니다. 헬라어 ‘아가토스’ ‘칼로스’도 비슷한 뜻입니다. 이처럼 ‘선’은 철학적인 개념이 아닙니다. 실제적으로 가장 좋고, 기쁘며, 유익한 것을 말합니다. 친절. 아름다움. 상냥함. 행복함. 즐거움. 풍부함. 장수. 유명해짐 등을 의미합니다. 선하심을 따라 사는 것이 악을 버리는 것입니다. 남들이 다 악하게 산다고 해도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겨야 (롬 12:21)’ 악에게 지면 안 됩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갈 6:9) 빛은 캄캄해졌을때 밝음이 필요한 사람에게 빛을 내야 그것이 아름다운 것입니다. 소금은 자신을 녹여 음식 사이사이에 들어가야 맛이 나는 것입니다. 행복한 세상, 행복한 가정, 행복한 교회를 우리 서로 만들어 가십시다. 그래서 여러분은 행복한 성도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류복현 목사 (킬린한인침례교 담임) 254-289-88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