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가 널리 보급되지 않았을 때 있었던 일입니다. 어떤 사람이 시골학교 운동장에서 자전거를 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교실에서 공부하던 한 아이가 우연히 그 장면을 보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신기한지 넋을 잃고 쳐다보았습니다. 선생님이 몇 번이나 부르는데도 듣지 못할 정도로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선생님이 다가가서 꿀밤을 주자, 그제서야 그 아이는 깜짝 놀라며 정신을 차렸습니다. 선생님은 공부시간에 딴짓을 한 벌로, 그 아이에게 그만 하라고 할 때까지 자전거 타는 흉내를 내라고 했습니다. 그 아이는 책상에 올라가서 계속 자전거 타는 흉내를 냈습니다. 그런데 한참 보니까 그 아이가 페달을 돌리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그 아이에게 야단을 쳤습니다. “너, 페달을 돌리지 않고 왜 가만히 있는 거냐?” 그 때 그 학생이 뭐라고 대답했는지 아십니까? “선생님, 지금 내려가는 중인데요”
그렇습니다. 내려갈 때 페달을 밟으면 걸려 넘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려갈 때에는 가만히 있으면 됩니다. 마찬가지 원리입니다. 우리 인생살이가 내리막길로 향할 때, 발버둥을 치다보면 더 깊은 수렁 속으로 빠져 들어갈 수도 있습니다. 내 힘으로 풀려고 하면 할수록 더 꼬일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도 그렇습니다. 내가 해야 할 때가 있고 하나님의 도움을 필요로 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 할 때는 하나님께 전폭적으로 맡겨야 합니다. 그럴 때 문제가 해결됩니다. 오늘도 우리 앞에는 홍해가 가로막고 있습니다. 뒤에는 애굽의 군대가 좇아오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가만히 서서 너희를 향하는 구원을 구경만 하라.
1. 믿음으로 홍해를 육지같이 건넜으며
‘믿음으로 저희가 홍해를 육지같이 건넜으나, 애굽 사람들은 이것을 시험하다가 빠져 죽었으며’ 이스라엘은 숙곳을 출발해서 에담을 지나 바알스본 맞은편에 장막을 칩니다. 그곳이 바로 홍해 앞입니다. 홍해가 갈라지는 듣도 보도 못한 일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은 춤을 추며 노래하며 건너갑니다. 홍해를 건너는 일은 믿음이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건너가다가 물이 합쳐지면 어떻게 하지?’하는 염려가 있으면 건너기가 힘들지요. 두렵고 무섭고 하면 건너지 못합니다.
하나님 믿는 일, 교회 나오는 일이 무섭고 두려우면 못 나옵니다. ‘교회가서 나쁜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하지?’ 혹은 여러 가지 불길한 생각이 들면 나오지 못합니다. 믿음의 문제입니다. 믿음으로 홍해를 육지같이 건넜습니다.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또 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하리라’ (출 14:13)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 백성들의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애굽은 완전히 잊어버리고 새로운 땅,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가는 새로운 사람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2. 애굽 사람들은 이것을 시험하다가 빠져 죽었으며
믿음은 흉내내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의 말과 병거와 마병이 홍해를 지나간 이스라엘 백성을 잡으려고 뒤따라가다가 홍해에 수장되는 사건입니다. (출 15:19) 이스라엘 백성이 지나갔으나 우리도 괜찮겠지 하고 지나가다가 물에 수장되고 말았습니다. 이것을 히브리서는 시험했다고 말합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흉내냈다는 말입니다.
예루살렘교회의 바나바가 밭을 팔아서 헌금을 했습니다. 그러자 아나니아 삽비라 부부도 밭을 팔아서 헌금을 합니다. 바나바의 헌금함으로 인하여 교회에서 칭송이 자자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아나니아 삽비라 부부도 땅을 팔아서 헌금을 합니다. 문제는 일부를 감추고는 전부라고 거짓말을 합니다. 베드로는 그들을 향해서 ‘성령을 속였다’고 말합니다. 그리고는 부부는 3시간 간격으로 사망을 합니다.
믿음은 순수성과 정직함입니다. 교회는 순결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속일 수도 없고, 하나님은 속지도 않는 분이십니다. 거짓말은 정말로 위험합니다. 거짓말로 인하여 죽을 수도 있습니다. 거짓말은 사탄이 주는 은사이지 성령의 은사는 아닙니다. 믿음생활을 하면서도 종종 거짓말하는 사람들을 보는데 정말로 위험합니다. 아나니아 삽비라 부부가 바나바를 흉내 낸 것입니다. 흉내는 거짓입니다. 정말로 위험합니다. 자신의 믿음의 분량만큼만 하면 됩니다. 결코 흉내 낼 필요가 없습니다. 받은바 은사대로 하면 됩니다. 십일조 낼 믿음이 없으면 안 내면 됩니다. 남들이 내니깐 나도 내야지 흉내내는 일은 위험합니다. 흉내내다가 시험에 들어서 넘어집니다.
믿음이 없으면 기도하십시오. 믿음을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체면을 세울려고 하는 일은 위험합니다. 그러나 때론 억지로라도 하면 하나님이 믿음을 주시기도 합니다. 구레네 사람 시몬이 억지로 십자가를 졌으나 은혜를 받고 그의 온 가정이 구원 받고 큰일을 감당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억지로 하는 것과 흉내내는 것은 다릅니다.
3. 모세의 믿음
모세는 무식한 사람이 아닙니다. 당시에 애굽은 피라미드를 만들 정도로 학문이 발달된 나라입니다. 수사학 물리학 철학은 대단히 높은 수준이였습니다. 그것을 다 공부한 사람이 모세입니다. 그런 모세가 ‘양을 잡아서 그 피를 문설주에 발라라. 홍해 앞에서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으로 갈라지게 하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 육지로 행하리라.’ 이 말씀을 믿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자신의 지식을 내려놓았습니다. 자신의 경험도 내려놓았습니다. 애굽에서 배운 학문, 80년을 살아 온 자신의 인생 경험들을 하나님 말씀 앞에서는 아무 것도 아님을 깨닫습니다. 홍해를 향해서 손을 바다 위로 내밀었습니다. 얼마나 우스운 행동입니까? 그러나 그것이 믿음입니다.
우리의 주변 상황이 어둡고 참담합니다. 여러분 앞에 홍해가 있어도 걱정하지 마시고 하나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믿음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믿음으로 살아가시는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은총이 있음을 믿습니다. 아멘
류복현 목사 (킬린한인침례교회 담임목사. 254-289-88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