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켈러 소개하는 일은 잠시 멈추고 두 번에 걸쳐 피터 스카지로의 책을 소개하고자 한다. 그의 책, [정서적으로 건강한 교회], [정서적으로 건강한 리더]는 자신을 돌아보며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묵상해 볼 만한 책이란 생각이 든다. 금주는 전자를 소개하고자 하며 편의상 [교회]라고 표시할 것이다.
[교회]는 자신의 고통스런 목회 경험을 토대로 쓰여진 책이다. 1987년 9월 뉴욕 퀸즈 지역에서 40명 남짓한 성도들과 더불어 교회를 개척했고 부흥했다. 교회 안에서 히스페닉 예배도 시작했다. 몇 년 지나지 않아 영어권 예배자들이 400명, 스페인어 예배자들이 250명으로 늘어났다. 그런데 스페인어 사역자가 2백여 교인들을 데리고 교회를 떠났으며 이후로도 남은 성도들에게 담임목사를 끊임없이 비방하며 교인들을 끌고 나갔다.
믿었던 사람에게 당한 배신감, 수치심에 몸을 떨었고, 심지어 믿음을 지켜야 할지 말지를 방황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는 온갖 종류의 모임과 부흥회를 참여했고 심지어 예언을 받아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에게서 ‘더 이상 교회를 나가지 않겠다’는 통보를 받았다. 이젠 다 끝난 것이다.
저자는 자신의 아픈 경험 외에 또 한 사람을 소개한다. 그는 한국 사람이라면 알만한 월드비전 선교회를 설립한 밥 피어스다. 선교회는 한국 전쟁 고아들을 돕기 위한 단체로 시작했지만 이젠 103개국에 5천만명의 후원자를 둔 세계 최대 규모의 NGO 로 성장했다. 각종 출판물들은 밥을 두고 “영혼을 구하기 위해 쉬지 않고 일하는 사람” “그처럼 깊은 동정심을 가진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소개했다. 실제로 그는 열정에 불탔다. 그는 평소 “하나님의 마음을 슬프게 하는 것들로 인해 내 마음도 울게 하소서”라고 기도했다.
하지만 정작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않았다. 그의 딸이 한 번은 전화를 걸어 집으로 돌아와 달라고 했다. 아내 역시 돌아가자고 사정을 했다. 하지만 밥은 베트남 행 비행기 표를 끊었다. 나중에 딸은 “안 오실 줄 알았다”고 술회했고 몇 년 뒤에 그녀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아무런 대화 없이 부부가 몇 년을 지내기도 했다. 과로로 감정의 저수지는 말랐고 건강은 악화되었다. 정신은 조금씩 끊어졌고 행동은 나날이 변덕스러워갔다. 세상을 떠날 즈음에는 그는 직계가족 모두로부터 따돌림을 당했다. 1967년 결국 월드비전 이사회는 그를 면직시키게 된다. 10년이 지나 64세의 나이로 백혈병으로 사망했다. 그는 늘 이렇게 기도했다고 한다. “주님 나를 늘 불태우게 하소서!”(p. 70). 그를 태운 불이 성령 불일까?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저자는 성도도 한 인간이기에 무수한 외적인 부정적인 영향 아래 거한다고 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사도 바울은 한 사람이 일단 그리스도를 믿게 되면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다’(고후 5:1)했다. 하지만 나는 가정을 매개로 세대에서 세대로 전달되는 유력한 죄의 패턴이 아직도 효력을 발휘하고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않았다”(p. 55). 또 그는 실패의 아픔 속에서 자신을 들여다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신의 열정 중에 얼마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었지만 나머지 부분들은 복잡한 동기들로 좌우되고 있었던 것을 깨닫게 된다. 자신 안에 하나님의 손길이 미치지 않았던 정서적인 층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결론을 내린다. ‘목회란 무슨 일을 하느냐가 아니라 어떤 사람이 되느냐의 문제이다(p. 58). 리더의 변화는 교회의 변화를 가져온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저자는 정서적으로 건강한 교회를 만드는 7가지 원칙을 제시한다. 지면상 세 가지만 소개하려 한다.
- 이면을 들여다보라.
건강한 영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때로는 깊고도 철저하게 내면을 성찰할 필요가 있다. 이는 종종 큰 고통을 당할 때 , 일례로 배우자가 관계를 끝내자고 할 때, 혹은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황에 몰릴 때 그제야 관심을 갖게 된다. 그런 일을 만났다면 자기의 느낌과 행동을 정확하게 파악해야 하고 또 ‘왜?’라는 동기를 묻는 것이 꼭 필요하다.
예수님은 감정적으로 정직했다. 때로 슬퍼했고 괴로워 하셨으며(요 11:33) 멸망할 에루살렘을 보시고 울기까지 하셨다(눅 19:31). 제자들을 야단 치셨고(막 10:14) 성전이 상인들로 더럽혀 진 것을 보시고 화를 내시기도 했다(요 2:13-17). 주님도 이렇게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셨다면 우리도 자신의 감정들을 정직하게 파악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감정을 깊이 들여다 보는 작업이 있어야 복음이 그 곳 깊은 곳까지 들어가서 전인적인 치유와 회복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또 “왜?”란 질문이 중요한 것은 행동하는 겉으로 드러난 가시적인 것에서 근본적인 이유나 목적, 동기, 마음이 지향해야 할 바른 방향을 설정할 수 있도록 돕기 때문이다. - 과거의 부정적인 영향력을 차단하라.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삶의 전 영역에 계시지만, 자신을 완전히 내 맡기지 않았기 때문에 그 분의 영향력이 온전히 미치지 못할 수도 있다. 고의적으로 거부했을 수도 있겠지만 스스로 깨닫지 못한 탓일 수도 있다. 특히 성장과정에서 가정에서 형성된 내면의 부정적인 감정들은 성인이 되어서도 알아 차리지 못하는 가운데 영향을 미치곤 한다. 다윗의 집안의 가계도를 그려놓고 보면 다윗. 솔로몬, 암놈, 압살롬, 르호보암으로 이어지는 흉악한 성적 범죄가 반복된다(p. 157-160). 그렇다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이상 삼대에서는 어떤 죄들이 발견되는가? 거짓말과 편애와 동기간의 갈등이다(p. 161-162). 그렇다면 이제 각자가 어떤 형태의 약점으로 시달리고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어떤 것이건 예수님 안에서 치료책이 있다.
교회가 새로운 영적인 가정임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아버지도 바뀌었다.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시다. 새 가정과 친척들 힘을 주셨다. - 깨지고 상한 심령으로 살라.
하나님께서 왜 인간들에게 아픔을 주셨을까? 타락한 이후로 인간은 관계 안에서 갈등과 경작할 토지가 가시와 엉겅퀴를 내는 저주를 감당해야만 했다. 미워서 그리하신 것이 아님을 다 아실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의 깊이를 볼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들에게 고통을 통해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시기 위함이었다(p. 193).
우리는 이런 일을 당할 때 자칫 도피나 포장을 택하기도 한다. 그렇지 않다. 약함이나 아픔을 바라보는 바울의 시각이 어떠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는 자신의 사도됨을 장광설로 늘어놓은 것이 아니라 도리어 ‘사단의 가시’(고후 12:8-10)를 논한다. 고대 문헌에서 가시는 전쟁 중에 적의 진군 속도를 늦추기 위해 땅에 박아 둔 말뚝이란 뜻이다. 즉 바울이 하려고 하는 사역마다 그 중심을 관통하는 이 말뚝이 그의 인생을 힘들게 했음을 짐작할 수가 있다(199).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금이 간 인생도 아름답게 쓰신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하는데 문제는 그렇게 깨진 삶의 단면들을 공개하기를 두려워한다. 하지만 바울은 달랐다. 자신이 교회를 박해했고 성도들을 죽이는 일에 가담한 것을 감추지 않았다 도리어 함께 열심히 믿음 생활을 권유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카일 아이들맨의 이야기로 오늘의 칼럼을 마무리 하려고 한다. .
일본에서는 깨어진 도자기를 보수하는 특별한 킨주기 장인들이 있다. “ 킨츄기란 일본에서 1500년에 걸쳐 발전해 온 도자기 보수 기술이다. 깨어진 도자기 조각을 붙여 보수하되 금을 감추지 않고 도리어 황금으로 깨진 부분을 보수하여 도리어 부각을 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일부로 비싼 도자기를 구입한 후 깨서 금으로 보수하는 수집가도 있었다. 이처럼 천국에서도 깨어진 것이 귀하다.
박영호 목사
선한목자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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