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들의 부활은 예수님의 재림 때 이루어진다.
믿는 자는 영생의 부활로 믿지 않는 자는 영멸의 부활이다.
그러나 부활은 이미 시작되었다.
예수님은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에게 달라붙은 부활의 열매들이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우리도 함께 죽었고 죽은 지 사흘만에 다시 부활하실 때 우리도 함께 부활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부활의 삶을 살아야 한다.
부활의 삶이란 갈릴리에서 주님을 만나는 삶이다.
마가복음 16에 보면 부활하신 주님께서 천사를 통해 무덤을 찾은 세 여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가서 그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이르기를 예수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전에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거기서 뵈오리라 하라 하는지라.”(7)
본문은 “그는 다시 살아났다 여기 계시지 않다 갈릴리로 가서 그를 만나라”라는 말로 부활에 대한 모든 말을 마친다.
부활을 믿어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다만 갈릴리로 가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날 것이라는 말로 부활에 대한 이야기를 마치고 있다.
결국 세 여인은 죽은 예수님의 시체를 보려고 무덤으로 왔지만 예수님은 살아나셨고 세 여인의 발길을 갈릴리로 돌려놓았다.
갈릴리는 어디인가?
갈릴리는 예수님께서 처음으로 공생애 복음활동을 시작하신 곳이다(막1:14).
예수님은 세 여인의 발길을 무덤에서 갈릴리로 돌려놓으셨다.
제자들에게도 미리 “내가 살아난 후에 갈릴리로 가리라”(마26:32)고 약속하심으로써 우리들의 발걸음도 갈릴리로 돌려놓고자 하셨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이렇듯 부활하신 후에 세 여인들이나 제자들의 발길을 갈릴리로 향하게 하시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예수님의 일을 처음처럼 다시 시작하라는 뜻이다.
갈릴리는 예수님이 처음 복음 전파를 시작하신 곳이다.
갈릴리에서 예수님이 시작하신 일을 이제 다시 우리들이 시작이 해야 한다는 말씀이 아닐까?
우리가 예수님을 따른다면 그분이 하시던 일을 우리도 해야 하고 그가 사신 삶을 우리도 살아야 하지 않을까?
우리가 구원을 받았다면 예수님의 죽음이 나의 죽음이 되어야 하고 예수님의 부활이 나의 부활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갈릴리에서 시작하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기까지의 삶이 우리에게 그대로 이어져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진심으로 주님을 따른다고 말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럴 때 내가 주안에 주께서 내 안에 사신다는 고백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이것이 바로 마가복음에서 말하는 예수님의 부활이다.
그래서 “다시 사셨다”고 “갈릴리에서 그를 뵈오리라”고 한 것이다.
예수님이 계신 곳은 무덤이 아니라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님이 아니라 부활하셔서 갈릴리라는 삶 속에 살아 계신 주님을 찾아야 한다.
부활의 삶은 오늘 갈릴리에서 주님과 동행하는 삶이다.
오늘을 부정하면서 어떻게 내일을 기다릴 수 있을까?
오늘이 없으면 어떻게 내일이 있을 수 있을까?
신앙생활이란 오늘 내가 살아가는 부활의 삶이다.
그럴 때 오늘 밤 주님이 강림하실지라도 우리는 영생의 부활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송영일 목사 (Y Edward Song, Th.M, D.Min)
케이티 새생명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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