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신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마지막 6일째는 사람을 창조하셨다.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시고 가장 먼저 무엇을 주셨는가?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셨다”(창1:28)
본래 인간에게는 복이 없었다. 그런데 복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사람을 만드시고 가장 먼저 복을 주셨다. 그래서 사람은 하나님의 복을 받는 존재가 되었다. 그래서 누구나 복을 사모하는 본성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창조물을 인간에게 맡기고 복을 누리며 살도록 하셨다.
그런데 하나님의 복을 이어받은 인간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 죄악을 저지르며 살게 되었다. 그래서 축복을 누리고 살던 에덴동산에서 쫓겨나는 불행한 인간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하나님의 축복을 잃어버린 인간의 길은 가시덤불과 엉겅퀴 같이 고통스럽게 되었다. 그 결과 인간은 병노생사(病老生死)의 고통을 겪어야 했다. 사탄의 유혹에 빠진 결과였다. 그 후로 인류의 역사는 죄악이 지배하게 되었다. 죄의 결과 모든 인간은 사망의 지배하에서 살 수밖에 없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인류를 만세전부터 구원을 시킬 계획을 세우셨다. 그래서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을 부지런히 구약의 선지자들에게 계시하시고 예언하셨다. 인류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계시와 예언의 핵심은 하나님의 독생자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였다. 그래서 히브리서 1장에서 이렇게 시작한다.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히1:1-2)
예수님을 통하여 태초에 아담과 하와에게 주셨던 하나님의 복을 다시 갱신 받게 하셨다.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요일3:8)
십자가에서 죄악이 다시는 우리를 지배하지 못하게 하셨다. 부활하심으로 사망을 이기시고 사망이 다시는 우리를 지배하지 못하게 하셨다(롬6:9). 대신 생명의 근원이 되시는 예수님의 생명을 다시 받게 되었다. 아담과 하와 이후 잃어버린 복을 다시 회복시켜 주셨다. 예수님은 우리를 살리시는 영이시다.
예수님은 생명의 근원이시다. 예수님은 복의 근원이시다. 하나님은 우리를 지키시기를 원하신다.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 프랑스는 독일의 국경을 따라 철저한 방어진지를 구축했다. 당시 국방장관이었던 마지노에 의해 구축되었다고 해서 이 방어선을 마지노선이라고 불렀다. 프랑스는 이 요새를 6년 이상 걸쳐 세웠다. 독일군의 전차부대의 침입을 막기 위해 철골 벽을 이중으로 세웠고, 보병의 침입을 막기 위해 1km의 철조망 지대를 설치했으며, 그리고 다시 넓이 6m의 콘크리트 벽을 세웠다. 이런 요새의 길이가 수십 마일에 달했다. 발전실과 탄약고 그리고 작전실은 전부 70m 지하에 설치했고 통신선도 전부 지하에 묻었다. 거기에다 모든 화력을 집중 배치했다. 당시로서는 그야말로 인간이 만든 최고의 난공불락의 요새였다. 그러나 막상 2차 대전이 터졌을 때 마지노선은 아무 소용이 없었다. 왜? 독일군이 미리 정보를 입수하고 마지노선의 반대편 벨기에지역의 삼림지방인 아르덴으로 침공을 함으로써 마지노선은 힘 한번 제대로 써보지도 못하고 무너지고 말았다.
역사를 돌아보면 사람이 구축한 요새 중 무너지지 않은 곳은 없다. 옛날 터키는 막강한 그리스 연합군을 막으려고 트로이성의 요새를 세워 10년간의 전쟁을 치렀으나 결국 무너지고 말았다. 만리장성은 달에서도 보이는 유일한 인간건축물이다. 중국의 진나라 시황제가 무려 5천 마일의 거대한 성벽을 쌓아 외세의 침략을 막았다. 그러나 한국 역사가들의 주장에 의하면 위대한 고구려의 광개토대왕이 두려워 만리장성을 쌓았고 결국 광개토대왕에 의해 무너지고 말았다고 한다. 이 세상에 안전한 곳은 그 어디도 없었다. 그 어떤 것도 안전하게 지켜줄 수 없었다.
솔로몬은 자신의 부족함과 허물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끝까지 지켜주시는 하나님을 이렇게 노래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숫군의 경성함이 허사로다.”(시127:1)
프랑스가 그처럼 철의 요새로 방벽을 세웠지만 하나님께서 지키지 않으심으로 무용지물이 되었다. 바로 그것이 헛된 수고요 파숫군의 경성함이 허사라는 뜻이다. 옛말에 열명이 지켜도 한 명의 도둑을 지키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하나님께서 지켜 주셔야 한다.
다윗이 사울 왕의 추격을 피해 거의 15년 이상을 도망자로 살았다. 순간순간 위험에서 건져 주시는 수 많은 하나님의 지켜 주심을 체험했다. 그래서 그는 어려운 처지에 빠질 때마다 이렇게 하나님께 기도했다.
“나를 눈동자 같이 지키시고 주의 날개 그늘 아래 감추사 나를 압제하는 악인과 나를 에워싼 극한 원수에게서 벗어나게 하소서.”(시17:8)
모세는 40년의 기나긴 광야생활을 끝내고 이제 요단강 건너편 하나님께서 주시리라고 한 약속의 땅을 바라보면서 시시때때로 지켜 주신 하나님을 이렇게 회고했다.
“여호와께서 황무지에서, 짐승의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났을 때도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 눈동자 같이 지키셨도다.”(신32:10)
하나님께서 “자기 눈동자 같이 지키셨다.”고 고백한다. 구약의 믿음의 순례자들은 어려운 상황에 처할 때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절히 사모했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께로다. 여호와께서 너로 실족지 않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자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시121:1-3)
이 고백은 상상의 산물이 아니라 순례자들의 생생한 체험의 소산이었다.
그렇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과 일대일의 관계를 맺는 사람이다. 하나님께서 지난 한 해 동안 나를 도와주시고 지켜 주셨다. 2020년 너머로 도움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새해에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지키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래야 행복이 보장되지 않을까?
송영일 목사 (Y Edward Song, Th.M, D.Min)
케이티 새생명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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