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단어가 “사랑”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성경구절은 요한복음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한다. 사람들은 매일 가족들에게 “사랑한다”고 말한다. 신자들은 매일 “하나님 사랑해요”라 고백한다. 사랑이란 말은 누구나 좋아하는 것 같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사랑만큼 좋은 것도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가 이웃을 사랑하든 하나님을 사랑하든 주님은 성경을 통해서 분명히 그 이유를 알고 사랑하라고 말씀하신다. 왜 사랑해야 할까? 어떻게 원수를 사랑할 수 있을까?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어떻게 사랑할 수 있을까? 그 이유를 알아야 가능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맹목적인 사랑은 사랑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신자들에게 “새계명”을 주셨다. 예수님께서 주신 “새계명”이 무엇인가?
“새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13:34)
우리가 가족과 이웃과 원수라도 사랑해야 할 근본적인 이유는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사랑하고 하신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셨는가? 하나님과 원수된 우리를 위한 “화목제물”이 되셔서 하나님과 우리를 화목하게 하셨다.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롬5:10)
우리는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들이었다”(엡2:3) 그러나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엡2:4-5)
그런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가엾게 여기시고 십자가에서 우리를 대신한 대속의 제물이 되셨다. 하나님과 원수였던 우리를 대신하여 하나님께 자기 자신을 제물로 내어 놓으셨다. 그리고 이를 믿는 자마다 무죄선언(無罪宣言)과 의롭다는 선언을 해 주셨다. 이것이야 말로 인류역사에서 전무후무(前無後無)한 지고의 사랑이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우리를 사랑하셨다. 바로 이 사랑을 가리켜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하셨다. 이것이 우리가 원수라도 사랑해야 할 이유이다. 사도요한은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였음이라”(요일4:19)고 확인해 준다.
그러므로 만일 우리가 사랑한다고 말하고 그 말을 실천하지 않을 때 성경은 우리에게 무어라 할까?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을 가리켜 거짓말쟁이라고 말한다. 성경도 마찬가지로 말씀한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요일4:20)
간단한 진리이다. 말만 하고 행함이 없으면 거짓말쟁이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사랑의 실천에 대한 말씀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특히 세상이 어려울수록 행함으로 사랑을 보이라 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라”(마25:45)
예수님께서는 지극히 작은 자를 자기 자신과 같은 Identity를 가지셨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지극히 작은 자이든 못난 자이든 그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어 주시고 십자가의 값을 치르시고 사셨기 때문이다. 사도 요한은 그 진리를 우리에게 늘 가르쳐주고 있다.
“누가 이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줄 마음을 닫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하겠느냐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요일3:17-18)
사랑의 새계명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행함으로 해야 한다. 말과 행함은 마치 기찻길과 같다. 만일 행함의 레일이 고장이 나면 달리는 기차가 어찌될까? 우리가 천국을 달리는 기차와 같다면 이 두 가지의 레일이 온전하게 나란히 달려 가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그럴 때 우리는 담대함을 얻고 거리낌없이 기도할 때 구하는 바를 받을 수 있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요일3:23)
송영일 목사 (Y Edward Song, Th.M, D.Min)
케이티 새생명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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