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단에서 “제발 성령충만을 받으세요”라고 다그친다고 성령을 받을 수 있겠는가? 아무리 “믿으라”고 외치고 “믿어야 구원을 받는다”고 소리친다고 믿을 수 있겠는가? 학창 시절에 교육학 교수님에게 들었던 감동적인 한 마디가 생각난다. “유대인들은 친자식에게는 물고기를 사다 주지 않고 물고기 잡는 법을 먼저 가르쳐 준다”고 했다. 참 지혜롭고 창조적인 교육방식이 아닐 수 없다. 신자들에게 외치고 강조하기 전에 먼저 성령을 받는 길을 가르쳐 주고 믿음이 어디서 오는가를 먼저 알려 주어야 하리라고 생각한다. 한 가지 이런 질문을 던져 보자.
“믿음이 먼저인가? 성령이 먼저인가?”
성령이 먼저라고 답해야 한다. 왜 그럴까? 성령이 임하시면 우리가 믿도록 하는 일을 도우시기 때문이다. 믿음과 신념은 다른 것이다. 우리가 분명히 알고 넘어가야 할 것은 “믿음”은 내가 스스로 믿으려고 애를 쓴다고 믿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믿음”은 성령의 은사 가운데 하나이다. 고린도전서 12장은 성령의 은사에 대한 종합적인 말씀으로 가득차 있다. 거기에 보면 “어떤 사람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다른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고전12:8-9)이라고 말씀하신다. 즉 “믿음”은 여러가지 성령의 은사 가운데 하나이다. 이 말씀은 성령이 임할 때 “믿음의 은사”를 주신다는 뜻이다. 즉 성령이 믿음보다 먼저라는 말이다.
믿음에 대하여 좀 더 깊게 살펴 보자. 믿음은 어떻게 올 수 있을까? 믿음은 어디서 올까? 이 해답은 로마서 10장에서 찾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10:17)
복음의 말씀을 전하는 설교와 가르침을 들을 때, 성령님이 전하는 자와 듣는자 사이에서 교통하시며 듣는 사람에게 말씀을 듣고 깨닫게 하여 기쁨을 주고, 회개하게 하여 눈물을 주고, 성령의 감동으로 믿게하여 주신다. 이것이 성령님이 하신 일이다. 성령이 임하지 않으면 아무도 믿을 수 없다.
예수님께서 3년반 동안 제자들과 동고동락하시면서 천국복음을 전파하고 가르치셨지만 도무지 깨닫지 못하고 믿지 않았다. 아니 제자들은 실상 예수님이 누구인지 조차 알지 못했다. 예수님께서 그토록 십자가에서 죽은 후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고 얼마나 많이 가르쳐 주셨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 한 사람도 그 사실을 믿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붙잡혀 가실 때 단 한 사람도 예외없이 날 살려라 도망을 치고 말았다. 제자 베드로는 예수님의 예언대로 첫닭이 울기 전에 심문 당하신 주님의 등 뒤에서 예수님을 세번이나 부인하고 저주까지 하지 않았던가? 제자 마가는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을 가다가 로마 군인에게 붙잡히자 “베 홑이불을 버리고 벗은 몸으로 도망”(막14:52)을 갔던 수치스러운 장면을 기억하고 있다.
왜 제자들이 예수님을 그토록 믿지 않았을까? 아직 성령이 임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예수님께서는 아무리 가르쳐도 깨닫지 못하고 믿지 못한 제자들을 바라보시고 대단히 답답해 하셨다.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 나는 받을 세례가 있으니 그것이 이루어지기까지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눅12:49-50)
이 땅에 성령의 불을 던지려고 오셨는데 아직 성령의 불이 붙지 않았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받으실 세례 곧 십자가의 죽음이 지난 다음에야 비로소 하늘로부터 성령이 불같이 내려오실 것을 아셨다. 그래서 성령강림이 있기까지 깨닫지 못하고 믿지 못하는 제자들을 바라보시고 답답하시다고 고백하신 것이다. 비록 지금은 듣고 깨닫지 못하고 믿지 못할지라도 성령님이 오시면 주님께서 하신 모든 말씀이 기억나고 생각나게 해 주심으로 믿게 해 주시겠다고 말씀하셨다.
“이제 일이 일어나기 전에 너희에게 말한 것은 일이 일어날 때에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
(요14:29)
“일이 일어나기 전” 은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과 부활 후에 오실 성령의 강림을 의미한다. 성령이 강림하시면 누구든지 그냥 믿어진다. 그래서 십자가를 지고 고난 당하실 예수님을 기뻐하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과 죽으심을 기뻐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음을 알아야 한다. 예수님께서 세상을 떠난다고 말씀하시자 제자들이 매우 슬퍼했다. 그 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은 대단히 의미심장하다.
“너희가 나를 사랑했다면 내가 아버지께로 감을 기뻐했으리라.”(요14:28)
직역하면 “내가 십자가 지는 것을 기뻐했으리라.”는 뜻이다. 그래야 성령님이 오셔서 믿음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게 예수 믿는다는 뜻이다. 역전승을 믿는 예수님께서 역전승을 믿으라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신다. 우리의 믿음의 싸움은 이미 이겨 놓고 싸운 것이다. 성령이 먼저다.
송영일 목사 (Y Edward Song, Th.M, D.Min)
케이티 새생명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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