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을 뜻하는 명(名)은 저녁 석(夕자) 아래 입 구(口)를 받친 글자이다. 어두운 밤에는 사람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입으로 이름을 부른다는 뜻에서 만들어 졌다고 한다. 성경에서는 이 세상을 영적으로 어둠의 세상이라고 말한다. 어두운 이 세상에 살아가고 있는 모든 인간들에게 각자의 이름을 부여했다. 어두운 세상에서 밝은 빛으로 구원받은 사람들의 이름을 부르시기 위함이 아닌가 생각 된다. 그래서 하늘나라에 가면 생명책에 구원받은 자들의 이름을 기록하지 않았는가!
만물에는 다 이름이 있다. 말없는 자연세계는 다 각자의 이름 값을 하고 있다. 사람은 자고로 이름값을 해야 한다. 한국 속담에 “사람은 죽으면 이름을 남기고 호랑이는 죽으면 가죽을 남긴다”고 했다. 사람이 세상을 떠난 후에도 그 사람의 이름을 부르면 그 사람의 존재가치가 드러난다. 사람의 이름은 자기자신을 나타내는 소중한 가치이다. 그래서 누군가는 “내 이름에 먹칠을 하지 말라”고 한다든가 “내 이름 석자를 두고 약속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만큼 이름은 소중한 자산이다. 명불허전(名不虛傳)이라 했다. 어떤 사람의 명성이나 명예가 널리 알려진 데는 그럴 만한 삶이 있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한 사람의 이름 값은 그 사람의 삶에서 만들어 진다는 뜻이다.
참으로 흥미로운 것은 요한복음 마지막 장에 보면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세상으로 돌아가버린 제자들을 찾아가신 자리에서 제자 베드로의 이름을 이렇게 부르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요21:15)
세례 요한을 따르던 두 제자 요한과 안드레가 가장 먼저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다(요1:35). 어느 날 안드레가 친형제 시몬을 데려와서 예수님께 소개했다. 예수님께서 시몬 베드로를 처음 만났을 때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요1:42)로 하셨다. 그때 예수께서는 그에게 게바(베드로)라는 이름을 새로 주셨었다. “시몬”이란 단어는 “굴러다니는 짱돌”이라는 뜻이라면, 아랍어로 “게바”(כיפא)는 헬라어 “베드로”(Πέτρος)로서 흔들리지 않는 “바위”이라는 뜻이다. 그에게 장차 수제자(首弟子)로서의 가능성, 흔들리지 않는 바위 같은 믿음의 가능성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후로부터 예수님께서는 그를 베드로라고 부르셨다.
그런데 왜 부활 후에 베드로를 옛이름 그대로 “바요나 시몬”이라고 부르셨을까? 그 이유는 베드로가 그 이름 값을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바요나”(Bar Jonah)는 “요나의 아들”이라는 뜻이다. “시몬”이라는 이름은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부르던 옛날 이름이었다.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날 밤에 베드로는 예수님을 도무지 모른다고 세 번씩이나 부인함으로써 “베드로”(Πέτρος 흔들리지 않는 무거운 바위)이라는 의미의 이름에 걸맞은 행동을 하지 못하였다. 그 뿐만이 아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두 번씩이나 목격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제자 도마와 함께 못자국난 손과 발을 만져보고 확인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버리고 옛 생활로 되돌아가 버렸다. 그는 아직도 “시몬”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는 아직도 옛 습관, 옛 생활 습성, 옛 성품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진정한 의미에서 아직 그는 베드로라는 이름으로 불려 질 수 없었다. 이것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딜레마이다. 거듭난 사람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그리스도인이란 새로운 이름을 받았음에도불구하고 아직도 옛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 세상에는 이름 값을 제대로 하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 대통령이라는 이름 값, 높은 직책의 이름 값, 장로라는 이름 값, 집사라는 이름 값, 성도라는 이름 값, 하나님의 자녀라는 이름 값, 아버지라는 이름 값, 아내라는 이름 값, 내 자신의 이름 값을 제대로 하고 있는가를 이 시간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내 자신의 본분을 다 하지 못하고 내 자신의 이름 값을 제대로 하지 못할 때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내가 무엇을 잘 못했는가를 기억하고 깨달어야 한다. 그리고 지금 당장 다시 회복의 기회를 가져야 한다. 지금이라고 하는 때가 오직 주어진 기회일 뿐이다.
예수님께서는 믿음을 버리고 예수님을 버리고 디베랴 바다의 옛생활로 되돌아가버린 제자들을 찾아가신 것은 그들의 신앙과 믿음을 회복시켜 주시려고 기회를 주신 것이었다. 시몬에서 “네가 나를 다른 사람들보다 더 사랑하느냐?”(요21:15)고 세번씩 연거푸 반복하여 물으신 것은 그가 예수님을 만났을 때 가졌던 신앙의 기본으로 다시 돌아가게 하려는 것이었다. 처음 베드로를 만났을 때 “시몬”이라는 “짱돌”에서 흔들리지 않는 육중한 “바위”같은 베드로라고 지어 주었던 이름 값을 못한 베드로에게 회복의 기회를 주시려 하셨다. 지난 과거의 실수를 기억하고 바로잡아 주시려 하셨다. 베드로의 자격을 박탈하거나 그의 나약함을 들추어 내기 위함이 아니라 주님을 배반했던 과거를 기억하고 그에게 다시 새로운 소명을 주시기 위함이었다.
송영일 목사 (Y Edward Song, Th.M, D.Min)
케이티 새생명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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