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사순절기간이 찾아왔다.
고난의 기간을 지나면 어김없이 부활절이 찾아온다.
어느 부활절 아침에 닭 한 마리와 돼지 한 마리가 어느 미국교회 앞을 지나가다 보니까 매우 우울한 배너(Banner)가 한 장 댕그라니 걸려 있었다.
“오늘 부활절 저녁-Ham & Sandwich Party!”
닭이 돼지에게 먼저 걱정스럽게 말했다.
“오늘 저녁 우리 둘 다 부활절 파티에 인간들의 기쁨을 위하여 산 제물이 되겠군.”
그러자 돼지는 화를 내면서 항변하는 것이었다.
“너는 부분적으로 헌신만 하면 되지만 나는 몸 전체적으로 바쳐야겠군!”
이 때 닭이 돼지에게 타이르듯이 이렇게 대꾸했다.
“이봐, 네가 뭘 잘 몰라서 그런 말을 하는 것 같은데, 너야 눈 딱 감고 한 번만 죽으면 되지만 나는 알을 낳을 때마다 계속적으로 계란을 바쳐야 하잖니? 그리고 결국 마지막에 가서는 내 몸 전체를 잡아 구이를 만들지. 중요한 것은 죽지 않고는 어떻게 부활이 오겠니?”
그렇다.
고난을 통과하지 않고 어찌 부활이 있겠는가?
죽어야 비로소 부활이 있다.
그런데 누구든지 부활은 좋아하는데 고난은 싫어하는 것 같다.
예수님께서 어느 날 꿈속에서 두 제자를 데리고 좁은 길을 가고 있었다.
한 곳에 이르러 예수님께서는 똑같은 무게와 똑같은 크기의 십자가를 두 제자에게 하나씩 건네 주면서 이렇게 말씀하시고 홀연히 사라지셨다고 한다.
“이 길이 끝나는 종점에서 내가 먼저 가서 기다릴 테니 그곳까지 십자가를 지고 오너라.”
첫 번째 제자는 가볍게 십자가를 지고 출발했다.
두 번째 제자는 너무 힘들어 하면서 뒤쳐져서 겨우 마지못해 따라가는 것이었다.
며칠이 지난 후 드디어 첫 번째 제자가 즐거운 얼굴로 종착역에 도착하자 예수님께서는 기다렸다는 듯이 제자의 어께에서 십자가를 벗겨 주면서 칭찬해 주시는 것이었다.
“사랑하는 나의 제자여, 참 잘 했구나! 나의 즐거운 잔치에 참여할지어다.”
두 번째 제자는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후 저녁 늦게 쯤 겨우 종점에 도착하더니 십자가를 예수님의 발아래 내동댕이치면서 불평을 하는 것이었다.
“주님, 이런 법이 어디 있어요? 제게는 다른 제자보다 더 무거운 십자가를 주시다니요!”
주님은 안타까운 모습으로 두 번째 제자를 바라보면서 대답해 주셨다.
“십자가는 둘 다 똑같은 무게와 크기였느니라.”
그래도 두 번째 제자는 불평하며 계속 투덜거리는 것이었다.
“그럼 저 제자는 가볍고 쉽게 지고 가는데 왜 저는 그렇게 힘들고 무거웠단 말이에요?”
이때 주님은 사랑스럽게 타이르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십자가를 탓하지 마라. 문제는 십자가를 지고 오는 동안 줄곧 불평을 늘어놓았던 너에게 있었단다. 네가 불평할 때마다 십자가의 무게는 점점 무거워 진거야. 다른 제자는 십자가를 지고 오는 동안 기쁨과 즐거움으로 십자가를 지고, 신나게 선행과 봉사를 하면서 왔기 때문에 바로 그 사랑이 십자가의 무게를 점점 가볍게 만들어 주었던 거란다.”
그렇다.
내가 해야 할 일, 나의 사명을 기쁨과 즐거움으로 감당할 때 우리의 십자가는 가볍고 쉬워질 것이다.
십자가 없는 영광은 없다.
고난 없는 기쁨도 없다.
죽음을 통과하지 않고는 부활도 없다.
아침에 일어나기 싫다고 불평하면 할수록 더욱 일어나기 싫을 뿐이다.
고난 없이 부활의 영광만을 바란다면 어리석은 사람이 아닐까?
송영일 목사 (Y Edward Song, Th.M, D.Min)
케이티 새생명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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