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언제든지 버리지 않겠나이다.”(마26:33)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막14:31)
“주여, 내가 주와 함께 옥에도, 죽는데도 가기를 준비하였나이다.”(눅22:33)
“주여, 내가 지금은 어찌하여 따를 수 없나이까, 주를 위하여 내 목숨을 버리겠나이다.”(요13:37)
주님의 제자 베드로가 예수님께서 고난당하시기 전, 예수님께 어떠한 호언장담을 했는지 4복음서는 그렇게 증거하고 있다. 얼마나 자신만만한 호언장담인가? 베드로는 이처럼 장담만으로 그친 사람이 아니었다. 겟세마네 동산에 나타난 군대가 예수님을 체포하려는 순간, 검을 뽑아 휘두르며 그들 앞을 가로막아 선 사람은 베드로 한 사람뿐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베드로는 그처럼 담대하고 용감했다. 그는 예수님께서 로마를 물리치고 이스라엘에 독립을 가져다줄 정치적인 메시아이심을 믿어 의심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주님께서 광풍이 몰아치는 풍랑을 말씀 한 마디로 잠잠하게 하시던 그 능력으로,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장정만 5천명이 넘는 엄청난 군중을 먹이시던 그 권능으로, 그들을 완전히 물리칠 것을 굳게 믿었다. 그렇기에 그 주님 앞에서 그 주님을 위해 단신으로 군대와 맞선다는 것은 오히려 영광이었다. 그런 예수님께서 체포되어 오랏줄에 묶여 안나스의 집으로 끌려간 것이었다. 예수님은 체포되어 안나스에게로 끌고 갔다. 제자 시몬 베드로와 요한이 멀찍이 예수님의 뒤를 따라 안나스의 집까지 갔다.
“이 제자는 대제사장과 아는 사람이라 예수와 함께 대제사장 집 뜰에 들어가고 베드로는 문 밖에 서 있는지라.”(요15:15)
여기서 이름을 밝히지 않는 “이 제자”가 대제사장과 친분이 있었다는 사실은 문지기 여종에게 아무런 저지를 받지 않고 문을 통과해 들어갈 수 있었다는 점이다. 여기서 “아는”에 해당하는 헬라어 “그노스토스” (γνῶσις)는 “가까운 친척 관계”를 뜻한다. “이 제자”는 제자 요한이다. 요한복음을 기록한 제자 요한은 자신의 이름을 직접 가리키지 않고, “예수님의 사랑받은 자” 등으로 기록한다. 베드로는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대문 밖에서 기다렸다. 제자 요한은 문 지키는 여자에게 베드로를 들여 보내 달라고 말하니까 문밖에 있는 베드로를 데리고 들어오면서 베드로에게 이렇게 물었다.
“너도 이 사람(예수님)의 제자 중의 한 사람이 아니냐?”(17)
“나는 아니라.”(18)
이것이 베드로가 예수님을 첫번째로 부인하는 대목이다. 당시 비천한 하인 앞에서 베드로가 예수님을 치욕스럽게 예수님을 부인(否認)했다. 연약한 여종 앞에서 베드로는 담대함을 가지지 못하고 주님을 부인하는 비겁함을 보여주었다. 더 나아가 베드로는 대제사장 가야바의 집 뜰에서도 예수님을 두번씩이나 부인하고 말았다. 추위에 떨며 장작불을 쬐고 있던 사람들이 베드로는 보고 의심스로운 눈으로 물었다.
“너도 예수의 제자 중 하나가 아니냐?”(25)
“나는 아니라.”(25)
그런데 겟세마네 동산에서 대제사장의 부하 “말고”의 귀를 내리칠 때 곁에 있었던 사람이 베드로가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함에도 불구하고 베드로에게 확신하며 다그쳤다.
“동산에서 내 친척 말고의 귀를 검을 들고 내리친 것을 내가 분명히 보았거늘 네가 정말 예수를 모른다고?”(26)
베드로는 더 이상 피할 길이 없었다. 막다른 골목에 이른 것이다. 이때 베드로는 살아남기 위해 예수님을 세번째 부인하고 저주까지 하고 말았다. 바로 그때 새벽닭이 울었다. 베드로는 결정적인 순간에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베드로가 새벽 닭이 우는 소리를 듣고 대제사장의 집을 뛰쳐나가 통곡하며 회개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추운 날 밤 길목에서 베드로가 참회하며 통곡할 수 있었을까? 그 이유는 닭이 우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새벽닭 우는 소리가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기억나게 했다.
“닭이 곧 두번째 울더라 이에 베드로가 예수께서 자기에게 하신 말씀 곧 닭이 두번 울기 전에 네가 세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기억되어 생각하고 울었더라.”(막14:72)
그 말씀이 생각나서 말라붙었던 눈물 샘이 터지며 통곡할 수 있었다. 뜨거운 주님의 말씀을 기억함이 없이는 어느 누구도 양심이 깨어지고 참회의 눈물을 흘릴 수 없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영혼의 따뜻함을 가진 자만 참회할 수 있다. 참회의 눈물은 먼저 뜨거운 성령의 불꽃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렇다. 사순절 기간동안 우리는 주님의 고난을 묵상하여야 한다. 주님의 말씀을 기억해야 한다. 그 말씀만이 우리를 회개할 수 있게 한다. 우리의 입술로 우리의 마음으로 혹은 우리의 삶의 현장속에서 혹시라도 주님을 부인하지는 않았는지, 만일 그랬다면 베드로처럼 울며 가슴을 쳐야 한다. 왜냐하면 회개의 눈물은 우리를 베드로처럼 다시금 주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아름다운 축복이기 때문이다.
송영일 목사 (Y Edward Song, Th.M, D.Min)
케이티 새생명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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