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 전에 신학교에 다니던 시절에 매우 감명 깊게 보았던 “평화의 아이(Peace Child)”라는 영화가 있었다. 캐나다의 단 리차드슨(Don Richardson) 선교사 부부가 쓴 책을 배경으로 한 선교 영화이다. 리차드슨 선교사 부부는 오스트레일리아 북쪽에 있는 뉴기니아 (New Guinea)섬에 파송이 되어 1962년부터 15년 동안 복음을 전하면서 선교를 했다. 그 영화는 선교현장에서 현지 부족을 실재로 등장시켜서 더욱 생생한 현실감이 있었다.
리차드슨(Don Richardson) 선교사 부부가 처음에는 몰랐는데 막상 가 보니까, 그 곳에 사는 사위(Sawi)족은 원시적인 삶을 살면서 사람을 잡아먹는 식인종들이었다. 그렇다고 다시 되돌아 갈 수도 없었다. 함께 그들에게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언제 어디에서 그들에게 비참하게 잡혀 먹힐지 모르는 처지라 그야말로 목숨을 거는 선교 사역이었다.
사위 부족에게는 매우 특이한 생활방식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배반과 배신”의 문화였다.
상대를 잡아먹기 위해 일부러 친하게 지내며 상대의 환심을 산 후에, 어느 순간 때가 되면 상대를 유인하여 잡아먹는 것이다. 사위 부족의 최대의 기쁨은 자신이 배신한 사람이 죽어 가면서 배신감에 절망하는 모습을 보고 승리의 희열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해골을 자랑스럽게 집에 걸어 놓거나 목에 걸고 다녔다.
이처럼 같은 인간을 잡아먹으면서도 양심의 가책을 전혀 느끼지 못한 악한 마음을 가진 그들에게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는 것은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참으로 흥미로운 사실은 성경의 이야기 중에 가장 인기있는 대목은 가룟 유다의 배신 이야기였다.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배반하여 십자가에 매달리게 된 이야기를 하면 환호성을 지르며 좋아서 어쩔줄 몰라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온 마을 사람들이 모여 웅성거리며 요란스럽게 떠들고 있었다. 무슨 일인가 봤더니 사위 부족과 적대관계에 있던 다른 부족과 싸움을 그치고 서로 잡아 먹지 않기로 평화식을 한다는 것이었다. 그들의 평화식은 6개월된 사위족의 추장 어린 아들과 다른 부족의 추장의 6개월된 아이를 서로 맞교환을 하는 것이었다. 뉴기니아 섬에서는 부족 간에 충돌이 있을 때에 서로간의 평화를 위하여 상대방 추장의 어린 아이를 화해의 상징으로 맞교환을 하는 전통이 있었다. 그러면 그 아이로 말미암아 두 부족 간에는 평화가 유지되었는데 그 아이를 일컬어서 “평화의 아이(Peace Child)”라고 불렀다. “Peace Child”는 결국 피흘려 죽임을 당하게 되고 상대방의 부족들이 모인 가운데 화해의 제물이 되었다. 부족의 족장은 자신의 어린 아들을 희생의 제물로 내어 줌으로써 서로의 평화를 이루는 하나의 희생제사 같은 것이었다.
리처드슨 선교사 부부는 그들의 평화식을 보고 난 후 드디어 예수님이 바로 그들이 보낸 “평화의 아들”과 같은 분이라고 소개하기 시작했다. 하나님께서 자기의 아들 예수를 화해의 아들로 이 세상에 내어 주셔서 화목의 제물이 되게 하심으로 사람들이 이 땅에서 하나님과 평화를 누리게 되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몸을 십자가에 내어 줌으로써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영원한 화목의 제물이 되었다고 소개했다. 그렇게 예수님을 전했더니 드디어 사위부족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 후로부터 온 부족이 다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놀라운 이야기이다.
예수님은 베들레헴의 말구유에서 평화의 아이로 태어나시고 십자가에서 화목의 제물로 드려졌다. 이 세상에서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가장 끔찍하고 가장 잔인한 고통을 당하셨다. 사순절 기간동안에 예수님의 채찍질 당하신 고난을 묵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먼저 질문할 것은 무엇 때문에 예수님께서 채찍질을 당하셨을까? 죄수에게 하는 채찍질은 외국인들이나 종들이 죄를 지을 때 주는 로마의 형벌중의 하나였다. 이런 형벌을 할 때에는 죄수를 벌거벗겨서 기둥 같은데 매달고 채찍으로 인정사정없이 잔인하게 내리치는 것이다. “Passion of Christ”라는 영화에 보면 예수님께서 채찍질 당하신 형벌의 모습이 잘 나타난다. 채찍에는 39가닥의 줄이 매달려 있는데 그 끝에는 낚시바늘 같은 갈고리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채찍을 내리칠 때 마다 낚시 바늘이 살에 박혀 찢기고 터져서 피가 솟구친다.
예수님께서는 도대체 무슨 죄때문에 그런 무서운 채찍질을 당해야 했을까? 예수님께서는 도대체 누구를 위하여 그렇게 채찍질을 당하셨을까? 채찍질 당하신 예수님의 모습에서, 온갖 수치와 부끄러움을 당하신 모습에서, 십자가를 지시고 신음하신 극한의 고통의 모습에서, 진정한 예수님의 모습이 선명하게 드러나셨다. 예수님께서 과연 누구를 위하여 그런 채찍질을 당하셨는가? 이사야 선지자는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다”(사53:5)고 했다. 만일 누구든지 구원받은 사람이라면 개인적으로 예수님께서 채찍질을 당하심으로 나음을 입었다고 그렇게 믿음으로 고백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나 때문이라고 나를 위하여 나를 대신하여 당하신 채찍질이라고 고백해야 한다.
마땅히 내가 맞아야할 채찍질을 대신 당하신 것이었다. 무엇을 위하여? 하나님과 우리의 “영원한 평화”를 위하여 하나님의 독생자 자신을 평화의 제물이 되시려고…
송영일 목사 (Y Edward Song, Th.M, D.Min)
케이티 새생명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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