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에 “지붕 위에 바이올린” 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주인공은 딸들에게 철저하게 신앙을 통한 가정 교육을 시켰다.
어느 날 주인공은 딸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너희는 믿음에서 떠나지 말아라. 식사기도 기도하는 일 하나라도 우습게 여기지 마라. 너희가 하나님을 떠나 믿음이 없이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마치 지붕 위에서 바이올린을 켜는 것과 같이 불안하고 위험한 거란다.”
바이올린은 섬세한 악기여서 든든한 반석 위에서 연주를 해야지 불안하게 지붕 위에서 연주한 다는 것은 실패하기 쉬운 일이다.
우리들의 삶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먼저 반석같이 든든한 신앙을 발판으로 인생을 살아가야 한다.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 이르렀을 때 예수님은 갑자기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마16:13)면서 물으셨다.
그때 제자들의 대답이 가로되 “더러는 세례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중의 하나라 하나이다”(마16:14)이라고 했다.
제자들의 대답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그 당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세례요한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예수님과 세례 요한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라고 동일한 천국메시지를 전파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을 보고 하늘에서 불을 내리게 했던 엘리야의 기적을 연상하게 했을 것이며 또 어떤 사람들은 민족을 향해 탄식과 눈물로 호소했던 예레미야의 모습을 예수님에게서 보았기 때문이었다.
주님은 다시 물으셨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마16:15)
예수님께서 정말 묻고 싶으셨던 질문이었다.
구원은 단체구원이 아니라 개체구원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기를 좋아한다.
하나님의 말씀의 적용은 철저하게 나와 하나님의 1:1 개인적이어야 한다.
예수님은 남이 뭐라고 말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너희는 나를 어떻게 고백하느냐가 중요하다.
주님의 물음에 대해 시몬 베드로가 대답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16:16)
이것이 주님과 나와의 관계, 나는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고백하는 것이 신앙고백이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나는 누구이며, 주님을 향한 내 신앙 고백은 무엇인가?”를 분명히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신앙고백은 내가 구원받았다는 직접적인 고백이다.
그때 주님은 올바른 신앙고백을 한 베드로에게 이렇게 축복하셨다.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마16:17)
올바른 신앙 고백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복있는 사람이다.
예수께서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고백할 수 있는 분은 복있는 사람이다.
누가 가장 행복한 사람일까?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동행하며 살아가는 사람이다.
예수님 없이 잘사는 것보다 힘들고 어렵더라도 예수님 때문에 살아가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다.
행복은 물질의 소유와 환경적인 요소가 아니다.
아무리 물질의 소유가 많아도 아무리 지식이 많아도 그 사람의 삶 속에 예수가 없다면 그 인생은 불행한 인생이다.
송영일 목사 (Y Edward Song, Th.M, D.Min)
케이티 새생명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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