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 탄생하신 동네가 어디였는가? 베들레헴이었다. 베들레헴이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떡집(Bread-House/Bakery)이라는 뜻이다. 예수님은 베들레헴의 어느 장소에서 탄생하셨는가? 마구간의 말 먹이통이었다. 예수님이 탄생하셔서 처음으로 누우신 곳이 바로 말구유였다. 왜 하나님께서는 떡집이라는 동네의 말 먹이통에 몸을 푸셨을까? 첫째로 그것은 이미 베들레헴에서 탄생하리라는 구약에서 예언을 이루시려는 것이었다. 둘째로 소망 없는 인생에게 생명양식이 되시려는 것이었다. 생명을 위한 밥으로 떡으로 빵으로 오셨음을 나타내셨다. 어떤 생명이든 끊임없이 양식을 먹어야 한다. 그래야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 영적인 양식의 본질은 바로 예수님 자신이시다. 예수님은 스스로 자신을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떡이라”(요6:33)고 하셨다.
왜 예수님은 자신을 생명의 떡이라고 하셨을까? 그 이유는 양식은 매일 먹어야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생명을 얻기 위하여 날마다 필요한 양식시다. 매일 주님을 먹어야 한다는 말은 주님과의 연합을 의미한다. 음식을 먹듯이 날마다 기도하고 날마다 예배를 드리고 날마다 말씀을 읽고 묵상해야 한다는 뜻이다. 음식을 먹지 않으면 굶어 죽을 수밖에 없다. 예수님을 떠나면 영혼이 죽을 수밖에 없다. 음식이 생명의 절대적 필요 요소이듯이 예수님은 생명을 주시는 분이시다. 예수님을 먹는 음식으로 묘사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밥 한 그릇 빵 한 조각이 우리 입에 들어오기까지의 과정을 생각해 보면 예수님의 일생을 짐작할 수 있다. 먼저 씨를 뿌려야 하고 자라야 한다. 예수님은 하늘에서 땅으로 떨어진 생명의 씨앗이다. 움트고 싹트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으면 추수를 하고 알곡을 얻는다. 알곡은 가루로 빻아 반죽이 되고 뜨거운 불에 구워서 사람이 먹고 생명을 유지하는 음식이 된다. 쌀밥 한 그릇이 우리 입에 들어오기까지 농부는 80 공정이라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예수님이 생명의 떡이 되시려고 바로 이러한 과정을 겪으셨음을 기억해야 한다. 예수님은 생명 없는 광야 같은 이 세상에 뿌려진 생명의 씨앗과 같다.
예수님은 죄인들을 위한 알곡이셨고 고난을 통해서 빻아지고 부서지고 십자가 위에서 우리의 진노를 대신 받으셨다. 우리의 죄악을 대신 지셨다. 우리가 받아야할 심판을 대신 받으셨다. 우리가 죽어야 할 죽음을 대신 죽으셨다.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심으로 우리에게 주실 영원하신 생명의 떡이 되셨다. 그런 과정을 거친 후에 비로소 우리의 영원한 생명이 되셨다. 이러한 사실을 인식시키시려고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몸소 성만찬이라는 예식을 정하셨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날 밤에 마지막 만찬을 베푸시는 자리에서 떡을 떼어 주시고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니 받아먹으라”(고전11:24/눅22:19)고 하셨다. 자신을 생명의 떡으로 표현하셨다. 그리고 “누구든지 내 살을 먹지 아니하고 내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그 안에 생명이 없고 주님과 상관없다”고 하셨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먹으면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게 하셨다. 그리고 예수님은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요6:27)고 하셨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야 한다”(마4:4/눅4:4)고 하셨다.
그렇다면 생명의 떡을 먹으라는 말은 무엇을 의미할까? 예수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뜻한다. 예수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먹으므로 예수님과 우리가 하나되는 비결을 말씀하신다. 우리가 떡을 먹으면 떡이 우리 안에 들어와 생명을 만들고 생명을 유지시켜 주듯이 예수님 안에 내 있고 내가 예수님 안에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과 내가 함께 연합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이것이 생명의 떡을 먹는 일이다. 음식을 먹으면 음식이 육체와 하나가 되듯이 예수님이 우리 안에 계셔서 하나가 되는 삶이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을 먹는 일이다. 음식은 먹음으로써 그 음식이 육체 속에서 생명으로 나타나듯이 우리가 예수를 믿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예수님을 지식적으로 안다고 주님과 일체가 되는 것이 아니다. 직분을 가졌다고 일체가 되는 것은 아니다. 주님을 오래 믿었다고 일체가 되는 것도 아니다. 교회를 오래 다녔다고 일체가 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음식을 곁에 둔 것에 불과하다. 주님과 일체 되는 증거는 음식이 힘으로 나타나듯이 주님이 나의 삶을 통해서 나타나야 한다. 먼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 상에서 연합하여 죽어야 한다. 예수님이 죽으실 때 또한 예수님과 함께 연합하여 죽어야 한다. 예수님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실 때 예수님의 부활과 연합하여 부활해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연합이다. 그것이 진정한 생명을 얻는 일이다. 그러므로 베들레헴에 오신 예수님은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시려고 친히 베들레헴의 떡집에서 탄생하셨다. 예수님은 오늘도 당신의 신령에 생명의 떡으로 탄생하기를 원하신다.
송영일 목사 (Y Edward Song, Th.M, D.Min)
케이티 새생명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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