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는 값을 메길 수 없는 소중한 것들이 많다.
정말 소중한 것일수록 값을 메길 수 없을 만큼 가치가 있다.
“자유”(Liberty)는 값으로 치를 수 없는 소중한 가치가 있다.
자유를 얻기까지는 누군가의 피흘림의 값을 치렀기 때문이다.
자유는 영어로 두 가지의 단어가 있다.
Liberty와 Freedom이다.
그래서 “Liberty is not free” 혹은 “Freedom is not free”라고 말한다.
“Liberty”(자유)는 “…으로부터의 자유”라는 뜻이다.
“Freedom”(자유)은 “얻어진 자유”를 말한다.
억압으로부터의 자유, 질병으로부터의 자유, 죄로부터의 자유를 말할 때 “Liberty”(자유)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이런 자유는 누군가의 희생의 값을 치르고 쟁취한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로 얻은 Freedom은 값을 메길 수 없는 최고의 가치가 있다.
우리가 받은 구원은 최고의 희생의 값을 치르고 주셨다.
값을 치르지 않는 구원은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는 값없이 드릴 수 없다.
값없이 드리는 예배는 참다운 예배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기쁘시게 받으신 예배는 희생의 값을 치르는 예배이다.
우리가 7일 중에 단 하루 휴식할 수 있는 주일 날 아침, 피곤하지만 다른 때 보다 일찍 일어나야 하는 희생, 세상 사람들은 물질을 생명보다 더 소중히 여기지만,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것을 하나님께로 되돌려 드리는 희생의 값을 치르고 헌금을 하나님께 올려 드린다.
밤 늦게까지 Drama를 보다 아침에 일어나지 못하여 예배를 드리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께 드리는 희생의 값을 드리지 못한 사람이다.
왜 그럴까?
예수님의 고귀한 희생의 값을 치르고 구원하신 은혜가 없기 때문이다.
우주만물 가운데 가장 최고의 예배, 값으로 계산할 수 없는 최상의 예배는 무엇일까?
창조 이후 하나님께서 받으신 최고의 예배, 가장 최상의 제물은 골고다 언덕에서 드렸던 예수님의 십자가의 제사였다.
최고의 Living Sacrifice(산 체로 드리는 희생의 제물)였다.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는 전무후무한 희생의 제사였다.
성자 하나님께서 친히 자기자신을 희생의 값으로 치른 예배였다.
예배는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는 행위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때 가장 소중한 자기자신을 먼저 드려야 한다.
하나님은 먼저 우리 자신을 받으시기를 원하신다.
그래야 예배가 삶으로 이어진다.
우리의 일상생활이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예배가 되려면 마땅히 값을 치러야 한다.
다윗이 값을 치르고 드렸던 희생의 제사에 대한 위대한 이야기가 있다.
“여부스 사람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은 구속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역사적인 의미를 지닌다.
다윗 왕이 부하들과 함께 타작 마당에 나아 옴을 보고 아라우나가 왕에게 나가서 얼굴을 땅에 대고 부복하였다.
“왕이여, 아라우나가 이 모든 것을 다 왕께 거저 드리나이다.”(삼하 24:20)
그때 다윗왕의 위대한 고백을 보라.
“그렇지 아니하다. 내가 값을 주고 네게서 사리라. 값 없이는 내 하나님 여호와께 번제를 드리지 아니하리라.”(삼하24:24)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과 제사는 결코 값없이 드릴 수 없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송영일 목사 (Y Edward Song, Th.M, D.Min)
케이티 새생명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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