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 세상으로 오신 목적이 무엇일까? 첫번째로는 우리의 구원을 위함이다. 예수님께서 하늘 보좌를 두시고 이 땅의 가장 연약한 인간으로 성육신하셨다. 오셔서 우리를 대신하여 고난을 당하셨다. 손발에 대못이 박히시고 옆구리에 창에 찔려 우리의 저주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 달리셨다. 그 보배로운 피로 우리의 죄악을 씻어주셨다. 우리가 그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것이다. 이 세상을 떠나시던 33살의 젊은 예수님의 외모는 근육질 있는 몸짱이 아니라 가장 연약한 모습을 지니셨다. 마른 땅에서 나온 연한 순 같이 풍채도 없으시고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외모가 전혀 아니었다(사53:2). 생각컨데 그 이유는 이 세상에서 가장 못나고 연약한 단 한 사람까지도 배려하지 않으셨을까? 못난 모습을 통해서 누군가의 못난 모습을 위로하려 하지 않으셨을까…?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요3:17)
죄악으로 마땅히 심판을 받아야함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심판을 대신 지시고 그를 믿는 자마다 구원을 받게 하셨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의 구원자이시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것은 “영접하는 자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시려고”(요1:12) 오셨다. 세상은 이미 사망의 노예가 되었고 하나님과 원수였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적으로 나의 구원자라고 믿고 고백할 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 그리하여 우리는 성령의 도우심으로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자격을 얻었다(갈4:6/롬8:15).
주님께서 세상에 오신 두 번째 목적이 무엇인가? 마귀의 일을 멸하려고 오셨다.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요일3:8)
도대체 마귀의 일이 무엇일까? 마귀의 일은 거짓말과 속임수와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이간질하여 죄를 짓게 하여 사망과 지옥으로 끌고 가는 일이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아담과 하와에게 접근하여 거짓말과 이간질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기어이 쪼개고 말았다. 그 결과 하나님과 관계가 깨어지고 죄가 우리를 지배하여 심지어 하나님의 원수로 살 수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관계를 가르고 쪼개는 일에 가담하지 말아야 한다. 예수님은 깨어진 관계를 화목케 하시려고 자기를 드려 화목의 제물이 되셨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모든 허물과 죄악을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서 대신 심판을 받으시려고 하나님의 어린양의 대속의 제물이 되셨다. 이를 믿음으로 우리에게 “무죄선언”을 받았다. 이제 죄가 더 이상 우리를 주장하지 못하고 성령이 우리를 주장하게 되었다. 사망이 우리를 주장하지 못하고 생명이 우리를 주장하게 되었다. 이로써 예수님께서 마귀의 일을 멸하셨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세번째 목적은 보혜사 성령을 통해서 영원토록 함께 하시려고 오셨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라.”(요14:16)
성령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 주시고 생각나게 해 주신다.
“…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요14:25-26)
보혜사께서 오시면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때나 들을 때 깨닫게 하시고 가르쳐 주신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하신 모든 말씀이 시기 적절하게 기억나고 생각나게 해 주신다. 성령님은 우리 속에 내제하고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나게 하셔서 죄를 회개하게 하시고 마음이 연약할 때 힘을 주신다. 그러므로 성령과 구원은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구원의 시작에서부터 신앙의 성숙 그리고 천국문에 이르기까지 모두 성령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성령이 없는 신앙은 마치 물 없는 곳에 심기운 나무와 같다. 성령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일거나 들을 때 그 말씀의 뜻을 깨닫게 해 주신다. 성령의 내적 사역이다. 성령의 내적조명이 없이는 아무도 하나님의 영적인 말씀을 깨달을 수 없다.
“영적인 것은 영적으로라야 깨달을 수 있느니라.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깨닫지도 못하느니라.” (고전2:14)
그리고 시시때때로 필요할 때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나게 하셔서, 위로가 필요할 때 위로의 말씀으로 위로하시고, 시험에 들 때 시험을 이길 수 있는 말씀을 기억나게 하셔서 시험에서 건져 주신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우리의 구원을 위함이요 성령님은 받은 구원의 적용을 위함이다.
송영일 목사 (Y Edward Song, Th.M, D.Min)
케이티 새생명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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