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 존경하는 목사님의 교회 사무실을 처음 방문했을 때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시는 장면의 그림이 걸려 있었다. 그분의 사모께서 직접 그려서 거기 걸어 주셨다고 했다. 아마도 “목회를 이렇게 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걸어 놓았다”고 해서 하신 것이다. 참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 그림의 실제 장면은 예수님께서 3년반의 공생애를 마치며 십자가를 앞두고 계실 때였다. 세상을 떠나시기 전에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 자리를 마련하셨다. 예수님께서 일어서서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이에 직접 대야에 물을 떠서 한 사람씩 차례대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셨다(요13:4-5). 베드로의 차례가 되자 완강히 거절했다. “주여, 주께서 내 발을 씻기나이까?… 내 발을 절대로 씻지 못하리이다.”(6,8) 이는 베드로가 스승에게 너무 황송해서 한 말이었다. 단 한 번도 그렇게 예수님을 섬겨드리지 못한 자신에 대한 당황스러움이었을지도 모른다.
유대인의 풍속에서는 종이 주인의 발을 씻겨준다. 외출할 때 신발을 신겨주고 집에 들어오면 신발을 벗겨 준다.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증거할 때 “나보다 능력 많으신 이가 내 뒤에 오시나니 나는 굽혀 그의 신들메를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막1:7/눅3:16)고 했다. 자신은 예수님의 신발을 벗겨 드리는 종만도 못하다는 뜻이다.
예수님께서는 섬김을 받아야만 할 위치에 계셨지만 주인을 섬기는 종의 모습으로 허리에 수건을 두르고 대야에 물을 담아 제자들의 발을 한사람 한 사람씩 일일이 씻겨 주셨다.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섬기는 것은 쉽지만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섬기는 것은 쉽지 않다. “겉옷을 벗으셨다”는 말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이다. 겉옷은 자신의 신분을 나타낸다. 예수님의 신분을 벗어 버리셨다. 왜? 섬기기 위해서다.
그렇다. 섬기는 자는 자신의 신분을 벗어 던져야 한다. 자신의 자존심도 체면도 모두 벗어 던질 때 비로소 다른 사람을 높이고 섬길 수 있다. 예수님은 또 “수건을 허리에 두르셨다.” 허리에 수건을 두르는 차림 역시 종이 취하는 태도이다. 신발을 신겨 드리다가 만일 신발이 더러워져 있으면 즉시 허리에 두른 수건으로 깨끗이 닦아야 한다. 부엌에서 주인의 밥상을 준비하는 종은 허리에 수건을 두르고 수고의 땀을 닦아야 한다. 그래서 종은 언제나 수건을 두르고 대기한다. 예수님은 이렇게 종의 자리로 내려가셨다. 예수님은 이제 이별할 때가 가까워 왔음을 아시고 제자들이 언제나 지켜야 할 겸손의 본을 보이셨다. 왜 하필 발을 씻겨주는 섬김의 본을 보이셨을까? 아마도 제자들이 서로 높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다투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누가복음 22:24에 보면 “제자들 사이에 그 중 누가 크냐는 다툼이 났다”는 장면이 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앞두고 계셨다. 어느 날 요한과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가 예수님을 찾아왔다. 그녀에게 “무엇을 원하느냐?”(눅20:21)고 물으셨다. 그런데 그녀가 무어라 대답했는가?
“나의 이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마20:21)
모친이 와서 두 아들의 출세를 청탁했다. 그랬더니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다른 제자들이 화를 냈다.
“열 제자가 듣고 그 두 형제에 대하여 분히 여겼다”(마20:24)
왜 그랬을까? ‘함께 다닌 우리는 뭐냐, 왜 너희들만 높은 자리를 차지 하려고 하느냐?’ 그런 뜻이다.
제자들이 그렇게 자리다툼을 하는 모습을 보고 예수님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셨을까? 그런 제자들에게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본을 보이시고 서로 낮아지기를 힘써야 한다고 마지막 행동으로 설교하셨다. 하늘 나라의 높은 자리를 원하면 먼저 낮아져서 신분을 버리고 다른 사람의 발을 씻겨주는 섬김을 다 하여야 한다고 설교하신 것이다. 물론 예수님의 행위의 설교로써 온 세상을 향하신 예수님의 속죄의 역사를 비유하신 것이다.
“내가 주와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어 주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요13:14)
그렇다. 인간관계는 경쟁이 아니라 “섬김”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신 것이다. 인간이라는 뜻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뜻한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섬김의 관계이다. 마치 몸의 지체들과 같은 이치이다. 몸의 지체는 스스로를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모든 지체들은 다른 지체들을 취해 존재한다. 서로 돕고 섬김으로 온전한 몸이 된다. 이것이 창조주께서 인간을 만드실 때 기획하신 원리이다.
송영일 목사 (Y Edward Song, Th.M, D.Min)
케이티 새생명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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