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 보면“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빌 2:14)고 한다.
부정적인 마음과 입술을 버리라는 말이다.
원망은 나를 병들게 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낙심을 가져다 준다.
“원망과 시비”란 관계 속에서 일어난다.
원망과 시비는 좋은 관계를 깨뜨린다.
평강과 기쁨을 빼앗아가는 도독과 같은 것이다.
“원망”과 “시비”는 가정의 분위기를 살벌하게 만든다.
공동체의 기쁨을 빼앗아 간다.
사람과 사람의 불신의 관계를 만들어 낸다.
원망과 시비는 무익한 것이다.
원망과 시비는 상대방과 인격적인 관계가 이루어지지 않는 데서 비롯된다.
원망과 시비가 많은 사람과 함께 멍에를 메지 않는 게 좋다.
성경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보내어 애굽의 종노릇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가데스바네아”라는 곳으로 인도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즉시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하려 하셨다.
요단강이 앞에 가로 놓였고 건너편에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이 보였다.
그들은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전에 12지파를 대표하는 가장 믿음 있는 열두 사람을 선발했다.
열두 정탐꾼을 뽑아 가나안 땅으로 보낸다.
40일 후에 그들이 되돌아와 보고하는 장면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두 사람 갈렙과 여호수아는 긍정적인 보고를 함으로 백성들에게 믿음의 소망을 주었다.
나머지 10 정탐꾼은 고의적으로 부정적인 보고를 함으로써 200만의 이스라엘 사람들을 낙심케 만들었다.
그 결과 원망과 시비가 온 백성 가운데 팽배하게 되었다.
루머가 난무했다.
진실을 말해도 듣지 않았다.
원망과 시비로 백성들을 낙심케 한 사람들 때문에 하나님께서 진노하셨다(민32:1-14).
그래서 40년 동안 메마른 광야서 유리방황하게 하셨다(민32:13).
원망과 시비를 통해서 백성을 낙심케 만들었기 때문에 불신의 1세대들을 모두 광야에서 죽이셨다.
얼마나 큰 고통인가?
얼마나 많은 세월을 허비했는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는가?
그러나 오직 백성들을 격려하고 소망을 주었던 믿음의 사람 여호수아와 갈렙만 훗날 요단강을 건너 약속의 땅에 들어가게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원망과 불평의 소리에 귀가 아프다고 하셨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간이나 길고도 긴 세월동안 물없이 메마른 사막과 광야에서 유리 방황했던 근본적인 이유가 무엇이었는가?
“너희는 그 땅을 정탐한 날 수인 사십 일의 하루를 일 년으로 쳐서 그 사십 년간 너희의 죄악을 담당할지니 너희는 그제서야 내가 싫어하면 어떻게 되는지를 알리라.”(민14:34)
원망과 불평은 나를 죽이고 다른 사람도 죽인다.
그러므로 그런 사람과 함께 일하면 함께 죽는 일이 아니겠는가….?
송영일 목사 (Y Edward Song, Th.M, D.Min)
케이티 새생명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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