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마른 Arizona 사막 한 가운데 갑자기 무서운 소나기가 쏟아졌다.
뜻하지 않던 홍수로 인하여 커다란 작은 웅덩이가 갑자기 큰 호수로 변했다.
전갈 한 마리가 미처 피하지 못하고 호숫가에서 개구리를 만났다.
전갈은 호수를 건너야 했지만 수영을 할 줄 몰랐다.
그래서 개구리에게 부탁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야, 개구리! 날 등에 업고 호수를 건너 줄 수 있니?”
“그러고는 싶지만…”
“왜, 안되니?”
“그러고는 싶지만… 헤엄칠 때 독침으로 날 찌르면 어떻게?”
“아니야, 널 찔러 득이 될게 뭐가 있겠니? 네가 죽으면 나 역시 호수에 빠져 죽을 텐데…”
전갈에게 찔리면 치명적이라는 것을 개구리는 잘 알고 있었지만 개구리는 전갈의 약속에 마음이 약해졌다.
‘설마 꼬리를 함부로 놀리진 않겠지…’라고 생각한 개구리는 전갈을 호수 저편으로 건네주기로 했다.
드디어 전갈은 개구리 등에 올라탔다.
둘은 호수를 함께 건너기 시작했다.
그런데 연못 한 가운데를 지날 무렵 전갈이 꼬리를 뒤틀더니 갑자기 그만 개구리의 옆구리를 여지없이 찌르고 말았다.
개구리가 괴로워서 신음하며 외쳤다.
“왜 날 찌른 거야? 너한테도 좋을 게 없는데, 내가 죽으면 너도 물에 빠져 죽을 게 뻔한데 왜 날 찔렀어!”
“나도 알아! 하지만 난 전갈이야. 너를 찌를 수밖에 없었어. 그게 내 본성이야. 아무리 참으려고 해도 안돼! 전갈은 전갈일 뿐이야!”
이것이 전갈의 한계이다.
전갈이 개구리가 될 수 없는 한계 말이다.
나쁜 나무가 어떻게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겠는가?
다시 말하면 존재의 문제이다.
종자의 문제요 뿌리의 문제이다.
그래서 옛말에 사람은 고쳐 쓸 수 없다고 하지 않았는가?
우리 속담에 “꾀꼬리 3년 되어도 황새 못된다.”는 말이 있다.
근본이 잘 못된 것을 제아무리 잘 가꾸어 보아도 결국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없다.
인간은 자고로 근본이 바뀌어야 한다.
살다 보면 전갈 같은 사람을 종종 만난다.
예수를 믿는 성도들 중에도 전갈 같은 신음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있다.
아무리 안 하려고 해도 실수를 하고 아무리 노력해도 또 다시 죄를 짓고 자신을 향해 신음하는 모습을 볼 때 마다 가슴이 아프다.
인간이 어떻게 해야 변화될 수 있을까?
근본이 어떻게 변화될 수 있을까?
뿌리를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을까?
나쁜 나무를 어떻게 좋은 나무로 만들 수 있을까?
그것은 오직 한 가지 길이 있을 뿐이다.
접붙임을 받아야 한다.
예수님의 생명이 내게로 들어와야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변화될 수 있다.
그래야 종자가 바뀔 수 있다.
들포도를 참포도 나무에 접을 붙이면 참 포도 열매가 주렁주렁 열리게 된다.
그렇다.
당신이 만일 새사람이 되어 새로운 삶을 살고자 한다면 예수 그리스로 접붙임을 받아야 그리스도인으로 탄생할 수 있을 것이다.
뿌리를 바꾸고 근본을 바꾸고 존재가 변화될 수 있는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접붙임을 받아야 한다.
만일 그렇지 않고는 전갈로 평생 다른 사람에게 독을 쏘는 사람으로 살게 될지 모른다.
송영일 목사 (Y Edward Song, Th.M, D.Min)
케이티 새생명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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