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을 따라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특별히 주목할 것이 두 가지가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하나는 거짓 믿음이고 다른 하나는 참믿음이다. 유대인들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과 기다리던 메시아로 믿지 않았다. 그들이 가진 메시아에 대한 잘못된 고정관념 때문이었다. 그들의 잘못된 고정관념은 미시아가 오시면 다윗의 위를 굳게 세우는 강력한 왕이었다. 강력한 이스라엘을 통해서 로마제국의 압제에서 해방을 시키는 정치적인 메시아를 기다렸다. 그런 고정관념 때문에 정작 이사야 53장의 고난당하는 어린양 같은 메시아를 거부했다. 그들은 애써 이사야53장을 읽지 못하도록 금기시키기까지 했다.
예수님 당시 주변에 몰려든 수많은 군중들은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과 능력을 보고 이제 왕이 되어 강력한 이스라엘을 세워 주시기를 기대했다. 그들은 죽은 지 나흘이 된 나사로를 무덤에서 한 마디의 말씀으로 죽은 자를 살리신 능력을 목격했다. 문둥병자를 치유하시고 태어나면서부터 앉은뱅이를 즉시 일어나게 하신 모습을 보았다. 맹인들을 치유하시고 귀신들을 내어 쫓으시며 죽은 자들을 많이 살리신 것을 보았다. 거센 풍랑으로 파선할 지경에 이른 제자들을 구원하고 바람과 파도를 말씀으로 명령하여 잠잠하게 하셨다. 어린 소년이 가진 오병이어를 가지고 장정만 5천명을 먹이고 12광리를 남기기는 이적을 보았다. 그래서 예수님이야말로 이스라엘을 구원할 자라고 믿었다. 막상 구원을 위하여 십자가게 달려 죽자 그들은 애수님을 떠나버렸다. 성경은 그들이 믿지 않는다고 말씀하고 있다.(요12:37) 참으로 슬픈 일이다.
열처녀들은 모두 등불을 들고 신랑을 기다리며 우리처럼 수십년 동안 신앙생활을 했다. 그러나 그 중에 미련한 다섯처녀들은 주님이 오실 때 기름을 준비하지 못하고 천국문은 닫히고 말았다. 그들은 졸며 게을렀다. 그들은 성령을 받지 못했다. 그들은 주님을 위하여 희생하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없었다. 이런 점에서 그들의 믿음은 거짓 믿음이었다.
거짓 믿음이라는 걸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거짓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한 가지 특징이 있다. 고난을 싫어하고 쉬운 길을 선택한다는 점이다. 좁은 길을 싫어하고 넓은 길을 선택한다. 십자가를 싫어하고 편한 길을 좋아한다. 조금만 힘들면 불평하기를 좋아한다. 주님을 따르는 길이 무엇인가? 좁은 길이다. 십자가의 길이다. 나를 부인하고 주님을 시인하는 믿음의 삶이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막8:34/마16:24/눅9:23)
신자들 중에는 예수님께 합당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가?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마10”37-38)
여기서 예수님께서는 합당치 않는 세 종류의 사람들을 지적하신다.
첫째로는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않다”고 하신다. 무슨 말인가? 부모를 사랑하지 말하는 뜻이 아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믿지 않는 사람들보다 더 부모를 사랑해야 한다. 다만 우선 순위에 대한 말씀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사랑을 알고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자는 더욱 부모를 사랑하게 될 수 있다.
둘째로는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않다”고 하신다. 무슨 말인가?
부모는 당연히 자식을 사랑해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믿지 않는 사람들보다 더 자식을 사랑해야 한다. 다만 우선 순위에 대한 말씀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을 알면 그리스도를 가장 우선순위에 두고 가장 사랑하면 자동적으로 자녀들을 사랑하게 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셋째로는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한다”고 하신다. “자기 십자가를 지기를 싫어 한다”는 뜻은 무엇일까? 고난을 싫어하고 힘든 일을 피하고 참고 견디기를 원치 않는 사람을 뜻한다. 그들은 편한 신앙생활을 원한다. 싫으면 떠나기를 밥먹듯이 한다. 그들은 넓은 길로 가기를 원한다. 그런 사람들은 예수님께 합당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결국 믿음과 행함은 나란히 달리는 기차길과 같은 것이다. 기차는 내 자신이다. 천국행 기차가 달리다가 만일 믿음이라는 레일이 무너진다면, 만일 행함이라는 한쪽 레일이 무너진다면, 천국행 기차는 중간에 전복되고 말 것이다. 참믿음은 행함이 있는 믿음이다. 그래서 “행함이 없는 믿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약2:17)고 하지 않았는가?
송영일 목사 (Y Edward Song, Th.M, D.Min)
케이티 새생명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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