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내지선교의 개척자(Pioneer)라고 할 수 있는 영국이 낳은 위대한 선교사 테일러(James Hudson Taylor, 5.21.1832–6.3.1905)의 일기장에 있는 고백이다.
(중국 땅에 온 이래 줄곧 나는 하나님과 함께 살지 않았음을 깨달었다. 나는 기도도 했고, 금식도 하고, 예배도 드리고, 노력도 해보았고, 성경도 열심히 읽고, 오랫동안 묵상도 해보았고, 열심히 봉사도 해보았으나 소용이 없었다. 나는 매일 거듭거듭 실패하였고, 능력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나는 지난 7년 동안 단 한 명의 영혼도 구원시키지 못했다. 다른 해결 방법은 없는 것일까? 이렇게 계속 실패하는 삶을 끝까지 견디며 살아야만 하는 것일까? 선교비만 까먹고 이렇게 계속 머물러 있어야 하는가? 돌아가야 하는가? 그러나 나는 내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선교사가 아닌가?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렇게 그의 영혼의 고통이 절정에 달했을 때, 영국 런던의 한 친구로부터 온 한통의 편지가 눈을 뜨게 했다. 전에 알지 못했던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다. 그 내용을 다음과 같았다.
“하나님의 도움을 어떻게 얻을 수 있겠는가? 그것은 얻으려고 노력해서가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신실하신 그분에게 모든 것을 맡길 때, 그분을 의지할 때만 얻을 수 있다네. 성령님께 자네를 온전히 맡겨보게. 그분을 인정하게. 그분이 자네 속에 와 계심을 믿어야 하네. 그분이 자네 속에 분명 와 계신다면, 자네는 곧 하나님과 한 몸이 된 걸세. 그때 자네는 분명 날마다 하나님을 경험하게 될 거야.”
그 편지를 읽고 허드슨 테일러는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그가 주님을 의지하고 순종할 때 그의 몸의 한 부분이며 그의 육신과 뼈의 한 부분임을 알게 되었다. 가장 기쁘고 행복한 사실은 그리스도와 내가 한 몸을 이루었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이렇게 외쳤다
“나는 이제 더이상 혼자가 아니다. 어떤 것도 염려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나와 함께 계시기 때문이다. 나는 이제 내 안에 계신 성령님을 통해 하나님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 왜 내가 하려고만 했을까? 왜 내 안에 계신 성령 하나님, Immanuel(임마누엘)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았을까? 성령께서 내 마음속에서 아바 아버지라고 외쳤다. 하나님의 생기 곧 성령이 임한 사람은 하나님과 한 몸이 된다. 하나님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나는 하나님과 한 몸이다.
허드슨 테일러 선교사는 중국 내륙지방으로 들어간지 7년 동안 자기자신의 모든 노력으로 중국인들을 전도하려 했으나 단 한 명도 전도하지 못했다. 그동안 하나님은 저 멀리 계신 하나님이셨다. 하나님의 성령을 의지하지 않았다. 아니 성령님이 내 안에 계심을 느끼지 못했다. 하나님의 성령이 임하시고 하나님과 하나 되었음을 깨달었을 때, 그는 비로소 강력한 그리스도의 군사가 되었다. 그 후부터 비로소 중국인들과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걸 깨달었다. 그래서 중국인들처럼 먹고 중국인들처럼 말하고 중국인들처럼 옷을 입고 중국인들과 하나가 되었을 때, 드디어 중국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들의 마음문이 열렸다.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되었다. 중국에 복음의 씨앗을 뿌렸던 것이다. 보혜사 성령님이 우리 속에 함께 계실 때 우리는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을 살 수 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요14:16-18)
예수님과 동일한 본질과 능력과 권위를 가지신 보혜사를 우리에게 보내셨다. “보혜사”(파라클레도스 παράκλητος)란 말은 우리를 도우시려고 “곁으로 부름 받은 분”라는 뜻이다. 성령 하나님은 우리 곁에 계신다. 그리고 날마다 기도할 때, 예배드릴 때, 말씀을 읽고 묵상할 때, 깨닫게 하시고 알게 하심으로 하나님을 경험하게 하신다. 보혜사는 다른 말로 “대언자”(요일2:1)를 의미한다. 성령을 가리켜 예수님과 동등한 “또 다른 다른 대언자”라는 뜻이다. 예수님을 대신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주시고 깨닫게 하신다. 우리 마음 속에 계셔서 시시때때로 나님을 향하여 기도하게 하신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롬8:26)
“보혜사”란 말의 또 다른 뜻은 “위로자”란 의미이다. 그가 우리에게 힘과 평안과 기쁨과 능력을 주시며 이 세상을 이기게 하신다. 마음이 불안하여도 성령님께서 평강의 마음으로 위로하신다. “우리와 함께 거하심이요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고 하신 말씀은 우리 속에서 계셔서 교통하시며 우리를 변화시키신다는 뜻이다. 성령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변화될 수 없다. 때로는 탄식하시며 때로는 위로하시며 날마다 성령 안에서 하나님을 경험하게 하신다.
송영일 목사 (Y Edward Song, Th.M, D.Min)
케이티 새생명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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