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바라보시고 무어라고 표현하셨는가?
“내가 네 곁으로 지나갈 때에 네가 피투성이가 되어 발짓하는 것을 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라. 다시 이르기를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라 하고… 내가 네 곁으로 지나며 보니 네 때가 사랑스러운 때라. 내 옷으로 너를 덮어 벌거벗은 것을 가리우고 네게 맹세하고 언약하여 너로 내게 속하게 하였느니라.”(겔16:6,8)
우리는 더러운 피비린내를 풍기던 흉측한 인간이었다.
그래도 하나님은 살아야 한다고 격려하신다.
죄악의 흉측한 피로 얼룩진 우리를 바라보시고도 도리어 우리를 사랑하셨다.
이것이 하나님의 인애이다.
사랑하면 모든 것이 사랑스러워 보인다.
죄악으로 벌거벗은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옷을 입혀 주심 같이 거룩하신 하나님의 의의 옷으로 우리의 부끄러운 몸을 가리워 주셨다.
많은 성도들이 뜻하지 않는 고난이 오면 왜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날까…. 내가 어떻게 신앙생활을 열심히 했는데…. 내가 뭘 잘못했다고 이런 일이 일어나도록 하셨을까…. 원망하기도 하고 당황스러워 한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할 것은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고난당하심을 원하신 분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렘29:11)
하나님이 우리를 향하신 본심은 재앙이 아니다.
하나님의 본심은 우리의 평안이다.
그러므로 평안을 위협하는 우리의 죄와 허물과 사망을 십자가에서 도말하셨다.
그리고 죽음에서 부활하셨다.
그리고 부활하시던 첫날 부활의 몸으로 마가의 다락방에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요20:21)라고 하셨다.
제자들은 평강을 잃고 두려워 떨고 있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평강”을 선포하셨다.
무슨 말인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본심의 “평강”을 이뤄 주셨다는 뜻이다.
나아가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본심은 “우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다.
미래와 희망의 종착지는 두 말할 것도 없이 하나님 나라가 아니겠는가?
그렇다.
하나님의 본심을 알았다면 이제는 하나님을 원망하기 전에 신뢰해야 한다.
이 사실을 믿는다면 근본적으로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해야 한다.
어떤 고난이 찾아와도 하나님의 본심이 무엇인가를 안다면 결코 우리에게 주신 평강을 일히 말아야 한다.
내 앞에 어떤 상황이 벌어지더라도 하나님의 본심으로 나를 영접해주셨음을 믿는다면 이제는 하나님을 신뢰해야 하지 않을까?
“저가 비록 근심케 하시나 그 풍부한 자비대로 긍휼히 여기실 것임이라.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며 근심케 하심이 본심이 아니시로다.”(애3:32-33)
혹 우리의 생활에 근심이 오고 시험이 올지라도 그건 하나님의 본심이 아니시라는 말이다.
그보다 더 은총을 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은총을 믿어야 한다.
우리 삶의 장에 남모르는 아픈 상처가 있을지라도 우리의 마음에 아무도 모르는 고통과 근심이 있을지라도 뜻하지 않는 시험거리가 닥쳐올지라도 그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본심이 아니시다.
다만 그분을 신뢰하면 평강과 희망을 주시리라.
송영일 목사 (Y Edward Song, Th.M, D.Min)
케이티 새생명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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