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미주중일보의 Headline에는 “내년말까지 쇼핑몰 기반 백화점 최소 절반 폐업”이라는 기사가 올라왔다. 부제목에는 “아마존에 밀리고 코로나19에 치이고…” 라고 되어 있었다. 대형 백화점들과 쇼핑몰들이 위기에 몰렸다. 사실 대형백화점 체인들의 폐업은 지난 2018년부터 우후죽순(雨後竹筍) 처럼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세상이 그렇게 흐르고 있다. 막을 수 없게 되었다.
반면에 가장 호황을 누리고 있는 기업은 아마존 같은 Direct-Delivery 업체들이다. 아마존이 주도한 온라인·모바일 쇼핑이 대세로 자리 잡으면서 오프라인 쇼핑은 수년 전부터 사양길로 접어들었다. 여기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Shutdown을 부채질하면서 세계적인 “경제활동 셧다운”으로 이미 오프라인 유통업의 하락세를 되돌리기 어려워졌다. 그래서 여기저기서 코로나바이러스 후에 일어날 세계의 변화에 대한 예측들이 봇물이 터지고 있다. 종교, 문화, 경제, 과학, 교육 등 모든 면에서 획기적인 변화들이 일어날 것이 분명해 보인다.
한 마디로 현시대의 흐름은 해체주의(楷體主義)이다. 해체주의 뿌리는 인본주의(人本主義)라고 할 수 있다. 인본주의 근본은 자기중심(自己中心)이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 자기중심의 사고는 이기주의를 바탕으로 한다. 이기적인 사람의 가장 큰 특징은 자기중심이다. 자기중심은 개인주의 (個人主義)를 낳았다. 개인주의 시작은 15세기 종교개혁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구원은 단체적인 구원이 아니라 누구든지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고백하는 개인적인 구원이기 때문이다. 그 영향으로 문화, 철학, 경제, 인간생활구조는 개인주의화가 되었다. 개인주의 절정은 역시 미합중국이다. 개인주의 철학은 20세기 후반에 시작된 Post-modernism(탈현대주의)을 낳았다. 포스트모던이즘의 핵심은 다양성이다. 절대적인 신(神)에서 다양한 신(神)을 인정한다. 절대적인 가치관에서 다양한 가치관을 인정한다. 거기서 종교다원주의를 주장하며 모든 종교에는 다 구원이 있다고 강조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만일 다른 종교에는 구원이 없고 오직 기독교에만 구원이 있다고 말하면 법률 위반으로 고소의 대상이 된다. 결혼다원주의를 주장하여 남녀의 결혼의 가치에사 남남여여 동성간의 결혼을 합리화와 법제화가 이루어졌다. 만일 이를 바판하면 법률위반으로 고소의 대상이 된다.
더 나아가서 Post-modernism은 해체주의(楷體主義)를 만들고 말았다. 기존질서를 완전히 해체하려는 것이다. 미국에도 민주질서를 해체하려는 폭력이 오늘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공공안전을 위한 경찰을 해체하라고 곳곳에서 데모를 하고 있다. 경찰의 숫자를 줄이라고 경찰을 위한 예산삭감이 여러 주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가정이 해체되고 가치관이 해체되고 있다. 예배의 질서가 해체되고 있다. 해체주의 도구는 첫째가 폭력이다. 둘째는 악법이다. 셋째로는 메스컴이다. 폭력과 악법을 무기로 세상을 해체하려고 하고 있다. 이를 메스컴이 연합하여 부채질한다. 코나바이러스를 도구 삼아 악법을 만들어 단체로 모여 예배를 드리면 법률을 위반하였다는 구실로 교회의 문을 닫고 예배를 해체하기 시작했다. 벌써 정부가 교회를 통제하기 시작했다. 이제 교회가 핍박을 받는 시대로 돌입한 것이다. 교회는 이제부터 핍박을 받기 시작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믿음을 지킬 것인가? 정부에서 허락한 대로 그저 인터넷으로 예배를 드려도 아무 문제가 없을까?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해야 한다.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눅18:8)
예수님께서 재림할 때에는 그리스도인들이 믿음을 버리고 현상에 편승하고 안일무사주의 (安日無事主意)와 정부의 통제에 따라 세상의 풍조에 흘러가리라는 뜻이다. 그래서 너도나도 666표를 받아 살 것이다. 지금 현시대가 판을 치는 해체주의는 예배를 해체하려하고 있다. 해체주의를 뒷받침해 주는 악법은 믿음을 지키려는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고 옭아매는 위협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제 점점 더 핍박의 강도는 거세질 것이다.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훈련 시키면서 영적으로 무지한 상태를 보시고 무척 답답해 하셨다.
“나는 받을 세례가 있으니 그 이루기까지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눅12:50)
무슨 말인가? 예수님께서 지상에 계시면서 아무리 가르쳐도 알아듣지 못한 제자들을 보시고 마음이 답답하셨다. 십자가의 고난의 세례를 받고 부활승천하시고 성령이 강림하셔야 제자들의 마음이 열리고 생각이 열리고 영적인 안목이 열릴텐데 그때까지 참고 기다려야 하니 답답하시다는 뜻이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눅12:49)
그렇다. 성령의 불을 받아야 한다. 사는 길은 성령님의 도우심이시다. 성령님의 능력을 의지해야 한다. 위협에 굴복하지 말고 성령님의 도우심에 굴복해야 한다. 그래서 어려운 시대일수록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담대함으로 이길 수 있다. 성령의 충만을 받는 길이 승리의 길이다.
송영일 목사 (Y Edward Song, Th.M, D.Min)
케이티 새생명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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