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회에 걸쳐 해체주의에 대한 이 시대의 흐름을 나누었다. 이 시대는 모든 것이 다 무너지고 해체되고 있다. 중세기를 시작으로 종교개혁을 통하여 개인의 구원을 중심으로 개인주의가 탄생했다. 개인의 사상의 다양성을 주장하더니 이제는 다원주의가 탄생했다. 다원주의는 절대적 권위를 무너뜨렸다. 절대적 권위를 무너뜨리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을 무너뜨리고 누구든지 신(神)이 되었다. 인간 개개인이 신이 되었으니 그 다음은 모든 가치관과 주권을 해체시키고 있다. 하나님의 주권을 해체하면 인간은 멸망으로 치닫게 된다.
정치방식이 해체 중이다. 오늘날의 가장 좋다고 생각한 민주주의를 해체시키려 한다. 그래서 세계는 투표를 통해서 선출된 방식을 해체시키고 부정선거를 동원해 권력을 잡으려 한다. 미국도 예외가 아니다. 민주주의를 해체시키려는 자들의 무기는 폭력이다. 폭력을 정당화 한다. 이제 잘 못하면 투표를 통해서 베네쥬엘라와 같이 두 사람의 대통령이 서로 내가 대통령이라고 주장한다. 그런 경우가 이제 더 늘어날 것이다. 이처럼 해체시대는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실정이다. 왜냐하면 이제는 보편적 가치관과 상식과 도덕이 기준이 되지 못한다. 혼란의 시대이다.
더 나아가서 이제는 인간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각자의 선입견과 편견과 고정관념을 잘대화하고 있다. 왜냐하면 인간 개개인 모두가 신(神)이 되었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각자의 기준이 원칙이다. 선입견(先入見)은 어떤 대상을 처음 보기도 전에 어떤 사람이나 물건이나 내용에 대한 정보를 듣고 갖게 된 관념이다. 주위 사람들로부터 아무개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를 여러 번 반복해서 듣다보면 정말 아무개를 만났을 때 미리 가지고 있던 선입견의 잣대를 대고 바라본다. 그런데 장작 아무개와 여러 번 개인적인 만남을 가지고 나서야 비로소 부정적인 선입견을 가지고 바라본 것이 잘못된 것임을 알게 된다. 미리 가진 선입견이 완전히 잘못된 것임을 깨닫게 된다. 그러나 이제는 누가 뭐라던 내가 가지고 있는 선입견을 절대화 하려고 한다.
편견(偏見)은 한 쪽을 부당하게 편드는 의견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편견도 외부로부터 얻은 잘못된 선입견의 영향 때문일수도 있다. 그러나 편견은 대체로 자의적이다. 편견은 상대방이 옳은 말을 해도 옳게 듣지 않는다. 편견을 가지면 선한 일을 해도 선하게 평가하지 않는다. 왜 그럴까? 자의적 시각때문이다. 다시말하면 내 마음이 비뚜러져 있을 때 눈도 같이 비뚜러지기 때문에 바른 것이 바로 보이지 않는다는 말과 같다. 이 시대의 편견은 옳던 그르던 내 편만 옳다고 생각한다.
고정관념을 절대화한다. 사람들이 세상을 지각하는 가장 근본적인 방법은 범주화(帆柱化)라고 한다. 범주화(帆柱化)란 상대방에 대한 개인적 평가인식 중의 하나이다. 우리는 타인의 언어, 억양, 옷차림, 행동을 보고 그 사람을 범주화하고, 같은 범주에 속한 사람들은 유사한 특성들을 공유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가령 어떤 사람이 그의 사투리에 의해 경상도 사람이라고 범주화가 되면, 우리는 자동적으로 그 사람이 경상도 사람들의 특성들(무뚝뚝, 다혈질, 끊고 맺음이 분명)을 가졌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영어에서 고정관념의 “Stereotypes”이라는 단어는 “Walter Lippmann”이라는 언론인이 처음으로 소개했다고 한다. 그는 고정관념을 “머릿속의 그림”(Pictures in the head)라고 했다. 이 시대는 상대방은 무조건 잘못된 것이고 나는 무조건 옳은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절대화한다.
고정관념의 위험은 굳어버린 생각이다. 사람의 생각은 차갑고 빳빳하게 굳어버리기 쉽다. 경직된 사고는 사람의 생각과 행동을 제약할 수 밖에 없다. 굳어버린 생각은 틀에 박힌 “공식”을 좋아하기 마련이고 경직된 사고는 새로운 세계를 닫아 버린다. 고정관념에 빠지면 어떤 일이든 개척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나태해지기 쉽다. 그래서 공산주의가 최고라는 고정관념을 절대화하면 누구와도 타협하려 하지 않는다. 평화조약을 맺여도 눈속임일 뿐 뒤로는 상대방을 죽임 음모를 꾸민다. 그들은 양심도 도덕도 선악의 기준이 모두 내 자신이기 때문이다.
고정관념의 위험은 고정된 시각이다. 사물이나 현상을 한쪽에서만 보려고 하니 상대방의 의견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 고정된 시각에 빠지면 사물이나 현상을 제대로 볼 수가 없다. 사물이란 여러 각도에서 봐야 제대로 파악이 되는데 한쪽에서만 보니 문제가 된다. 사람은 세월이 흐르면서 습관과 관습, 전통에 길들여진다. 옛날부터 그래왔다는 것에 지나치게 가치를 부여하다 보니 그것을 새롭게 전환시키는 걸 망설이게 된다. 새 구두를 신으면 발이 아프지만 헌 구두를 신으면 발이 편한 이치와 비슷하다. 누구나 옛것을 편하게 여기고 변화하기를 거부한다. 공산주의자들은 권력의 맛을 즐기다 보니 모든 사람들을 억눌러 내 발 아래 두려고 한다.
고정관념의 위험은 도덕과 선한 가치관이 사라진다. 본질은 무엇이고 수단은 무엇인지, 변하는 것은 무엇이며 변하지 않은 것은 무엇인지, 중요한 것은 무엇이며 덜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를 파악하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본질보다 수단, 절대적 가치보다 상대적 가치, 내용보다 포장에 더 가치를 두고 의미를 부여하려고 한다. 그래서 겉으로 그럴듯한 선전선동술에 능란하다. 위기의 시대에 살고 있다. 선한 것이 악이 되고 악한 것이 선이 되어 간다.
송영일 목사 (Y Edward Song, Th.M, D.Min)
케이티 새생명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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