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모든 사람들의 공통분모(共通分母)가 아닐까? 모든 사람들은 행복하기를 원한다. 아마도 태초에 에덴동산에서 가졌던 인간행복의 본성이 누구에게나 잠재되어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간은 누구나 행복의 가치와 개념이 각각 다를 수 있기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 어떤 사람은 돈이 행복의 기준이고 어떤 사람은 사랑이 어떤 사람은 명예가 어떤 사람은 자식이 행복의 기준일 수 있다. 행복의 가치와 기준이 천태만상(千態萬象)이다. 그 결과 인간 삶의 목적이 다변화(多邊化)일 수밖에 없다. 그 결과 행복(幸福)해 보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진정으로 행복(幸福)한 사람이 있다. 모든 것을 다 가져서 행복(幸福)해 보일지는 몰라도 진정으로 행복하지 않을 수 있다. 그렇다면 공허한 빈 껍데기 행복일 뿐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해 보이는 사람이 있었다. 솔로몬 왕이다. 그는 아버지가 이루어 놓은 후광을 입고 어린 나이에 통일왕국의 왕이 되었다. 전에도 없고 후에도 없는 전무후무(前無後無)한 최고의 지혜를 소유한 왕이었으며, 가장 강력한 군대를 가진 왕이었으며, 일천명이나 되는 주변국가의 공주들을 아내로 둔 사람이었으며, 경제적으로 가장 풍성한 재력을 가진 왕이었다. 그의 왕궁은 온통 금은 보석으로 치장되어 있었다. 가장 많은 책들을 섭렵하고 공부를 가장 많이 한 왕이었다. 그러나 그가 자신의 인생에 내린 결론은 무엇이었는가? 그의 고백서와 같은 전도서에서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고 헛된 것뿐”이라고 고백한다. 그는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해 보이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결코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의 내면에는 진정한 만족과 넉넉한 기쁨이 없었다. 그가 말년에 깨달은 것이 무엇이었는가? 전도사의 마지막 구절은 이렇게 끝이 난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문이니라.”(전12:13)
참 행복과 기쁨과 만족을 어디서 찾아야 할까? 그 길은 너무나 간단한 길이다. 인간이 진정으로 행복할 수 있는 길을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셨다. 그것을 일컬어 “예수님의 행복론”이라고 말하고 싶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진정으로 행복하기를 원하신다. 그래서 에덴동산(기쁨의 동산, 행복한 동산)을 지으시고 그 안에서 아담과 하와가 살도록 하셨다. 행복하게 살고 있는 두 사람을 보시고 기뻐하시고 만족하셨다. 그러나 최초의 인류의 조상에게 불행이 찾아왔다. 뭣 때문이었을까?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불순종함으로 인간은 불행과 고통과 죽음이 찾아온 것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지도자 120세의 노년이 된 모세는 마지막 설교에서 이렇게 하나님의 뜻을 유언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달했다.
“내가 오늘날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신10:13)
무슨 말인가? 사람의 행복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킬 때 찾아온다는 말이다. 그렇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신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하는 생각이라.”(렘19:11)
우리가 진정으로 행복한 인생을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예수님께서 그 길을 가르쳐 주셨다.
바로 “서로 사랑하라”(요13:34)는 새계명이다. 생각해 보라.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눈물을 흘리게 하고 내가 어찌 기뻐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살인하지 말라”고 하셨다. 다른 사람에게 손해를 끼치고는 내가 행복해질 수 있겠는가? 그래서 “도적질하지 말라”고 하셨다. 다른 사람의 것을 탐내고 어찌 기쁨이 있겠는가? 그래서 “내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고 하셨다.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비판하면서 어찌 행복할 수 있을까? 그래서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고 하셨다.
사랑은 혼자서만 기뻐하는 것이 아니다. 당신이 기뻐함으로 내가 기뻐하고, 당신이 행복함으로 내가 행복하고, 그대가 웃음으로 내가 웃는 것이 사랑이다. 다른 사람이 불행한데 어떻게 나만 기뻐할 수가 있겠는가? 그래서 사랑은 함께 나누는 것이다. 어느 책의 서문에는 “우리가 진짜 행복을 느낄 때는 내 것이 많을 때가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함께 나눌 사람이 있을 때입니다.”라고 씌여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이루어 놓은 것, 나의 것을 나눌 사람이 내 곁에 있을 때, 진정한 행복이 있다. 모든 걸 다 가지고 있을지라도 함께 나눌 사람이 곁에 없다면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인생의 의미는 함께 나눔에 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살아가는 이유가 사랑에 있다고 말씀하신다. 어떻게 서로 사랑하라고 하는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13:34)
송영일 목사 (Y Edward Song, Th.M, D.Min)
케이티 새생명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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