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살아가는 것을 인생살이라고 한다. 좋은 인생살이도 있고 나쁜 인생살이도 있다. 행복한 인생살이도 있고 불행한 인생살이도 있다. 붙임단어(語尾)의 “살이”라는 말은 고난을 견디어 내는 삶이라고 한다. 그래서 추운 겨울을 견디는 “겨우살이”는 있어도 봄살이나 여름살이나 가을살이라는 말은 없다. 그런데 무엇이 우리의 인생살이를 행복하게도 하고 불행하게도 하고 성공하게도 하고 실패하게도 할까? 하나님을 믿지 않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타고난 운명론을 믿는다. 사주팔자나 풍수지리 같은 것에 운명을 의존하려는 관습이 있다. 그들은 환경이 운명을 결정한다고 믿는다. 그런 사람들은 거의가 다 인생의 실패자나 불행한 사람들로서 자기의 운명을 환경 탓에 돌린다. 반대로 성공한 사람들이나 행복하게 살아온 사람들을 보면 환경이 운명을 결정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운명은 내 태도에 달렸다고 믿는다. 그들은 운명이 내 자신에게 달렸다고 생각한다. 운명이 내 자신과 태도에 달렸다는 마음가짐은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사고방식이기 때문에 우리가 추구해 나가야 할 태도이다.
어떤 면에서 사람의 태도와 마음가짐은 배의 돛에 비유할 수 있다. 불어오는 폭풍을 사람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운명론자들이다. 그러나 적극적인 성공자들은 바람이 불 때 배의 돛을 어느 방향으로 정하느냐에 따라서 배를 동쪽으로도 서쪽으로도 몰아갈 수가 있다고 믿는다. 인생을 살다보면 불가항력적으로 몰려오는 많은 인생의 문제들에 대해서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이 있는 건 사실이다. 인간의 연약한 한계 때문이다. 그러나 그 문제들 속에서 내가 어떤 사람이 되느냐 하는 것은 전적으로 내 자신에게 달린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내 마음의 태도 그리고 그것이 결정하는 가치관에 따라서 내 운명이 얼마든지 변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 인생살이에 몰려오는 수많은 뜻하지 않는 환경의 문제들을 어떻게 내 인생을 실패하지 않고 복되고 값있게 만들 수 있을까? 지금은 시대의 말이라 모든 환경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모든 것이 예측할 수 없을 만큼 급변하는 시대이다. 만일 우리가 환경의 어려움을 당할 경우 이것이 내 운명이다 하고 받아들이면 환경에서 결코 헤어날 수 없을 것이다. 이럴 때 우리의 삶의 자세는 어떠해야 할까?
인생은 꿈을 꾸고 살아야 한다. 꿈은 내 인생의 목적이다. 꿈은 내 인생의 방향을 정한다. 꿈은 내 인생을 이끌어가는 원동력이다. 환경 때문에 꿈을 버리면 휘몰아치는 풍랑에 휩쓸려 갈 수밖에 없다. 살아남으려면 꿈을 버리지 말아야 한다. 성경의 인물 중에서 우리는 꿈의 사람 요셉을 안다. 그는 피를 나눈 형들에 의해서 원수의 나라 이집트의 노예로 인신매매를 당했다. 노예로 살았다. 억울한 일을 당하여 정치법 수용소에 갇혔다. 이때 운명론자들은 이게 내 운명이라고 무섭고 어두운 감옥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먼저 우리가 요셉에게 배워야 할 교훈은 불의와 타협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운명론자들은 쉽게 불의와 타협한다. 그리고 어쩔수 없었다고 자기합리화를 하려고 한다. 그러나 요셉은 이집트 왕의 경호실장 보디발의 미쎄스 보디발의 유혹에 빠지는 안일한 삶을 단호하게 거절했다. 노예의 신분으로서 조금이라고 자유를 누리고 편하게 살고자 했다면 불의와 타협했을 것이다. 그러나 비록 억울하게 중상모략을 당하여 감옥살이를 할지라도 그는 불의와 타협하지 않았다. 그럴때 당장은 고난을 당할 수 있다. 그러나 불의는 반드시 들어나고 정의는 끝까지 산다.
두번째로 배워야할 교훈은 충성심이다. 요셉으로부터 세 가지의 충성심을 찾아볼 수 있다. 먼저 하나님께 충성했다. 하나님을 섬기는 자로서 하나님 앞에서 범죄할 수 없었다. 그것이 바로 코람데오(Coram Deo)이다.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하나님께 충성된 태도를 가졌다. 다음으로는 비록 노예의 신분이었지만 섬기는 주인 보디발에게 충성된 마음을 가졌다. 요셉은 미쎄스 보디발에게 “주인이 아무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그의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창39:9)라고 대답했다. 맡겨진 일에 충성한 사람이다. 현실에 충성하지 못한 사람은 결코 내일을 보장받을 수 없다. 오늘 나의 존재는 어제(과거) 내가 어떻게 살았느냐에 대한 결과이다. 내일(미래)의 내 자신은 오늘 내가 어떻게 충성했느냐에 대한 결과로 나타날 것이다. 그리고 요셉은 자기 자신에 대하여 충성했다. 내 자신에 대한 충성의 첫걸음은 내가 누구인가를 아는 것이다. 내가 누구인가를 알면 내가 할 일을 알게 된다.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면 그리스도인으로서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한다. 그것이 바로 자신에 대한 충성이다.
세번째로 요셉으로부터 배워야할 교훈은 꿈을 버리지 않고 꿑까지 붙들었다는 점이다. 그가 어려서 가진 꿈을 믿었다. 밭에서 열 한 곡식단이 요셉에게 절을 하는 꿈을 꾸었다(창37:7). 해와 달과 열 한 별이 요셉에 대하여 절을 한 꿈을 꾸었다(창37:9). 비록 형들로부터 버림을 받고 노예로 팔려 감으로 비참한 세월을 살았지만 한시도 하나님께서 주신 꿈을 의심치 않았다. 언젠가는 그 날이 오리라, 언젠가는 이루어 지리라는 믿음을 버리지 않았다. 꿈이 요셉의 고난을 이기게 했다. 꿈이 요셉의 인생을 이끌어 갔다. 꿈이 요셉을 살아 있게 만들었다. 그런 인생의 태도를 가져야 한다. 잠언 29:18에 보면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한다” 하는 말씀이 있다. “방자히 행한다”는 말은 “멋대로 행한다, 자포 자기한다, 교만하게 행한다, 망한다”는 뜻이다. 꿈이 없으면 망하는 길이다. 그래서 영어번역은 “꿈이 없는 백성은 망한다”고 번역한다. 꿈이 없는 사람의 특징이 무엇인가? 멋대로 사는 것이다. 꿈이 없는 사람들은 멋대로 살다가 결국은 망한다.
목회의 경험을 통해서 많은 것을 깨닫게 된다. 하나님의 성도들 가운데는 예수를 믿고 교회의 직분자라고 하면서 자기 멋대로 자기가 원하는 대로 행동하는 것을 본다. 목회자가 어떤 성도에게 부탁을 하거나 잘못을 교훈 할 때는 특히 믿음이 가든지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에게만 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대부분이 교훈의 말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도리어 나쁜 영향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예전에 서로 신뢰할 수 있다고 믿는 분에게 바른 교훈을 부탁하는 태도로 겸손하게 말씀으로 교훈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런 말씀하시면 딴 교회로 갈래요. 제가 어떻게 하든지 간섭하지 마세요”라고 했다. 가슴이 철렁했다. “모든 성경(모든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딤후3:16) 이것은 말씀의 목적이다.
후회없는 인생살이는 먼저 불의와 타협하지 말아야 한다. 충성된 태도로 살아야 한다. 그리고 끝까지 꿈을 버리지 말아야 한다. 꿈꾸는 사람은 결코 내 맘대로 살지 않는다.
송영일 목사 (Y Edward Song, Th.M, D.Min)
케이티 새생명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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