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유명한 설교가 중에 테오도르 파커(Theodore Parker) 목사라는 분이 있다.
링컨 대통령의 “국민의/국민을 위한/국민에 의한” 이란 연설을 테오도르 파커 목사의 설교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한다.
그분의 설교 가운데 이런 내용이 있다.
“역사의 진보는 나선형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쪽에서 그 끝을 보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막막하고 절망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난 역사를 돌아볼 수는 있습니다. 역사는 하나님의 일하시는 장소요 시간입니다. 그 역사의 중심에 예수님의 삶과 십자가와 부활이 있습니다. 그 역사의 끝에 그의 다시오심이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오직 소망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고난 중에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데오도르 파커는, “감사의 마음은 얼굴 화장의 마지막 손질과 같아서 아름다움을 더해 주는 것”이라 했다.
감사에는 세 가지의 차원의 감사가 있다.
1차원의 감사는 조건적 감사이다.
이는 무엇무엇 때문에 감사할 조건이 있어서 표현하는 감사이다.
보통 평범한 사람들이 하는 감사의 삶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조건적 감사에는 한 가지 위험성이 있다.
감사의 조건이 사라지면 더 이상 감사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2차원적인 감사는 신앙적 감사이다.
이는 무엇무엇 때문에 조건적으로 드리는 감사가 아니다.
오히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리는 감사이다.
한 단계 높은 보통 그리스도인들의 감사이다.
현실속에서는 감사의 조건을 발견할 수 없지만 합력해 선을 이루어 주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며 믿음으로 드리는 감사이다.
욥이 드리는 믿음의 감사였다.
죽음 직전까지 이르는 처절한 고난속에서 드린 욥의 감사를 말한다.
다니엘의 세 친구의 감사였다.
극렬한 풀무불 속에서도 건저주실 것을 믿습니다.
“그리 아니할지라도” 한 번도 나를 배반한 적이 없는 그 하나님을 나는 하나님을 배반치 않을 것이라”고 감사를 드렸다.
3차원의 감사는 희생적 감사이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소아시아 지역에서 가장 핍박과 극심한 고난을 당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이유로 신자들에게서 모든 비지니스를 로마정부에 다 빼았겨 버렸다.
살길이 막막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는 누구에게도 없는 희생의 사랑이 넘쳤다.
그 핍박과 고난을 견디는 힘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과 인내로 견뎠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편지로 위로하였다.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 그러므로…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다”(살전1:6-7)고 칭찬했다.
그리고 “하나님을 향하는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졌으므로 우리는 아무 말도 할 것이 없다.”(살전1:8)고 위로했다.
그들에게 감사의 조건이 있었는가?
넉넉한 가운데서 모든 교회의 본이 되었는가?
아니다.
진정한 감사는 극심한 환란 가운데서도 희생에서 비롯되었다.
송영일 목사 (Y Edward Song, Th.M, D.Min)
케이티 새생명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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