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밤 지새우고 풀잎마다 맺힌 진주보다 더 고운 아침이슬 처럼 ..
한국사람 치고 <아침이슬>이라는 노래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특히 80년대 한국의 격동기를 산 사람들은 이 노래를 데모현장에서 떼창으로 혹은 술자리에서 어깨동무를 하고 같이 불러왔다. 저항가요라고 하기에는 노랫말이 너무 시적으로 아름답고 거기에 우리의 정신을 일깨우는 울림이 있다. ‘태양은 묘지위에’ 라는 가사의 한 구절 때문에 군사정권에서 금지곡이 되었고 그래서 독재에 항거하는 젊은이들이 더 많이 불렀던 노래 아침이슬을 만든 사람이 김민기이다. 서울대 미술과를 나온 화가이지만 자신의 노랫말에 곡을 붙이는 작곡가, 가수 그리고 소극장 학전을 운영하는 연출가이다.
그를 내 기억속에 다시 불러낸 것은 우리 교회에 새로 오신 전집사님의 선배여서 그와의 일화를 들려줌으로 그의 노래를 다 찾아듣다가 <봉우리>를 듣게 되면서이다.
사람들은 손을 들어 가리키지 / 높고 뾰족한 봉우리만을 골라서 / 내가 전에 올라가 보았던
작은 봉우리 얘기 해줄까/ 봉우리, 지금은 그냥 아주 작은 동산일 뿐이지만 /그래도 그때 난 그보다 더 큰 다른 산이 있다고는 생각지를 않았어 / 나한테는 그게 전부였거든 … 저기 부러진 나무 등걸에 걸터 앉아서 나는 봤지 / 낮은 데로만 흘러 고인 바다 / 작은 배들이 연기 뿜으며 가고 …
그의 낮고 깊은 동굴에서 울려 나오는 목소리로 들려주는 봉우리를 열번 정도 들으며 내 가슴에 슬며서 눈물이 고이고 내가 오르지 못했던 봉우리가 생각나고 나무 등걸에 걸터 앉아 바라본 계곡의 물이 더 낮은데로 흘러 흘러 바다가 되는 것을 상상해 보았다. 그래, 낮은데로 흘러 바다가 된 물은 자기 몸을 내주어 작은 배들을 띄우는데… 사람이 높은 봉우리만 바라보고 오르려고 하는 것은 얼마나 이기적인가..
김민기는 1987년 많은 군중들이 모인 어떤 행사에 갔다가 많은 사람들이 너무나 절절하게 아침 이슬을 부르는 것을 보고 그는 고개를 숙여 신분을 숨긴 채 혼자말로 되뇌었다고 한다. 이건 그들의 노래야 ‘그럼 저 사람들 노래지’ 나는 그 이야기를 2년전 그가 오랫만에 방송에 출연해 손석희 와의 인터뷰에서 무심코 하는 말 가운데서 들었다. 그가 만들었고 양희은과 많은 가수들이 불러 너무나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은 그의 상징과도 같은 노래 한국의 억눌린 젊은 세대가 마치 성가처럼 혹은 국민 가요처럼 부르는 그 노래는 이미 내 노래가 아니고 그들의 노래라는 그의 비움이 잔잔한 감동으로 찾아왔다.
그렇다. 예술, 음악이나 미술은 그 작품이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으면 이미 그것은 국민의 것이 아닐까? 그렇게 사랑을 받는 작품은 생명이 길다. 바라건데 정치인들도 그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세종대왕처럼 혹은 링컨 대통령처럼 정말 자신을 내주어 국민을 사랑한 지도자는 세월이 가도 잊혀지지 않는다. 목회자는 어떨까? 자기를 낮추어 생명을 주신 예수님처럼 하나님과 성도를 사랑하는 목회자는 복음을 담은 교회를 통해 방황하는 영혼을 위하여 나를 비워 생명을 나누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한 해가 저무는 이즈음 조용히 나의 것을 내어주는 김민기의 정신이 그립다. 코로나가 끝나서 이 담에 서울에 가면 그가 연출한 <지하철 1호선>을 꼭 보고 싶다.
조의석 목사
우드랜드 빛사랑교회 담임목사, 수필가.
저서: 수필집 <블루보넷 향기>(2010), 시집 <거듭남>(1991)
832-212-3339
Ischo61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