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코너를 처음 시작하며 내가 좋아하는 영국 수상 처칠이나 탐험가 죤 고다트의 명언과 스토리를 먼저 쓰려고 했는데 마음을 바꾸었다. 우리 국산(죄송) 가운데 먼저 소개하고 싶은 명품인간과 명언이 있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김병양 씨는 전남 장성 평범한 농가에 태어나서 중학교도 못가고 어려서 부터 공장이나 배달 등 직업 전선에 나서야 했다. 30대에 어머니가 논을 팔아 보태준 돈으로 서울로 이사를 가 각종 배달로 얼마간 돈을 모아 50대 초반에 매물로 나온 명동 명품 수선가게를 인수해서 30년을 넘게 운영해 오고 있다. 루이비통이나 샤넬 그리고 명품 구두 등 많은 명품들을 수선하여 돈을 모았지만 정작 자신은 명품 한 번 사본 적 없는 검소한 인생을 살았다.
나이 80이 넘은 지난 4월 그는 큰 결심을 했다. 자기가 어릴 때 학교는 가지 못하고 가끔 놀러 갔던 전남대에 12억을 기부하기로 한 것이다. 현금으로 6억 그리고 사후에 살고 있는 집 6억을 기부하기로 했다.
3남매를 키웠는데 자식들이 기대만큼 잘 풀리지 않았다. 성공하지 못한 자식들에게 유산을 남겨주고 싶은 것이 부모 마음일 텐데 그는 그렇게 돈이 없어지는 것보다 가난하지만 공부 잘하는 학생들에게 주어 더 값지게 쓰고 싶었다.
기자가 물었다. “돈을 받는 학생들에게 또 대학 측에 어떤 말을 하고 싶습니까?”
“뭐 그런 것 없어요… 구태여 바람이라면 그들이 공부 잘해서 부모 기쁘게 하고 사회에 보탬이 되면 좋겠지요.”
도움을 받는 이들에게 특별히 남기고 싶은 말이 없다는 “그런 것 없어요” 하는 그 분의 말이 내 마음에 맴돌았다. 명언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단순한, 너무 꾸밈없는 그 말이 왜 내게 조그만 감동을 주었을까.
사람들은 남이 알아주기를 바란다. 존칭만 붙이지 않아도 심술이 나고 자기의 선행에 대하여 이름이 빠져 있기라도 하면 사과를 받아내야 한다.
김병양 씨는 기부를 결심했을 때 아내하고만 상의하고 자식들에게는 알리지 않았다고 한다. 자녀들은 신문 보도를 보고서야 알았다. 혹시 있을지 모르는 반대와 흔들릴 수 있는 마음을 미리 차단한 것이리라.
사회에서나 교회에서 내가 인정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면 초라해진다. 성경에 나오는 사마리아인처럼 내가 할 수 있는 선행을 묵묵히 하면 세상보다 더 귀한 하나님 나라에 기록될 것이다.
그는 명품을 수선하는 일을 30년 동안 하며 짝퉁을 진짜로 알고 들고 오는 사람을 몇 사람 만났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이 짝퉁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남편이 외국 출장을 다녀오며 명품이라고 사왔는데 그렇게 믿고 수선을 맡기러 온 부인에게 구태여 “이것은 가짜입니다”고 말해서 그 집에 사단을 낼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 대신 수리비도 명품 수리비처럼 똑같이 비싸게 받았다고 한다. 하하… 그렇다, 때로 출생이 가난하고 불우한 환경에 있을 지라도 자신을 명품이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자신을 사랑하고 도전하면 명품 인생이 되는 것이다.
중학교도 못나온 명품 수선공, 남의 사치품을 수리해주고 돈을 버는 인생을 살았지만 번 돈을 자기와 자식들만을 위해 쓰지 않고 멋지게 기부하는 그의 삶이 나는 명품이라고 생각한다. 많이 배우지 못해서 특별히 전할 말이 없는 “그런 것 없어요” 하는 한 마디도 귀담아 들으면 진솔한 진리로 들린다. 인생은 누구나 값지다. 시골 농부이든 도시 어느 재래시장 국밥집 사장이든 그의 삶 속에는 배우고 싶은 교훈이 있고 한 마디 명언이 있다. 잘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다.
조의석 목사
우드랜드 빛사랑교회 담임목사, 수필가.
저서: 수필집 <블루보넷 향기>(2010), 시집 <거듭남>(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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