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산타처럼 사람들이 잠든 사이에 찾아온다. 크리스마스를 한달 쯤 남긴 지난 주 영국 평범한 사람들이 모여사는 동네에 재미있는 그림이 하나 등장했다. 약 25% 경사진 언덕길에 있는 한 할머니 집 벽에 <에이취> 라는 그림이 그려졌다. 작가는 한 밤중에 찾아와서 스프레이 페인트로 그림을 그려놓고 간 뱅크시, 한 할머니가 계단을 오르다가 ‘에이치’ 하고 재치기를 크게 하며 손에 든 지팡이와 가방까지 떨어 뜨리는데 그 바람에 그 앞에 놓인 쓰레기통과 지나가던 사람까지 쓰러진다는 내용이다. 그 작품이 유명한 뱅크시 작품이란 사실이 알려지자 한 미술 평론가가 찾아와서 그 벽화를 약 70억원 이라고 감정하고 할머니는 4억에 매물로 내놓았던 집을 거둬 들인다.
2018년 크리스마스를 앞둔 18일 저녁 영국 웨일스의 남부 철강도시 포트 탤벗의 주민들은 벽에 그려진 그림 하나를 선물로 받는다. 한 철강 노동자의 집 담벼락에 그려진 그림속에는 한 소년이 하늘을 향해 팔을 벌려 흩날리는 눈을 반기고 있다. 그러나 코너를 돌면 불이 붙은 통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재가 보인다. 소년이 눈처럼 반긴 것은 사실 불에 탄 재였던 것이다. 그 소도시는 영국에서 공장 먼지로 많이 오염되어서 극심한 공해에 시달리고 있는 곳이다. 뱅크시는 서정적으로 보이는 벽화를 통해 이 지역의 심각한 환경문제를 고발한 것이다.
1974년 영국 남부 브리스톨 태생인 그는 본명이 ‘로버트 뱅크스’로 알려져 있는데 열 네 살에 학교를 그만두고 브리스톨 지역의 그래피티 집단 멤버로 ‘프리핸드 그래피티’(스프레이로 벽에 직접 그림을 그리는 것)를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몇 차례 체포를 당하면서 그는 짧은 시간에, 완성도 높은 그림을 그리는 방법을 궁리하다 ‘스텐실 그래피티’를 시작했다. 스텐실이란 종이 등에 그림을 그려 구멍을 낸 후, 그 위에 스프레이를 뿌려 완성하는 기법을 말한다. 정교하고 위트가 넘치는 그의 스텐실 그래피티는 금세 알려졌고, 90년대 후반에는 이미 런던과 브리스톨에서 주목받는 스트리트 아티스트가 되었다.
그의 그림이 그려진 장소는 경찰서, 관청, 난민 쉼터 등이었고 그가 전하는 메세지는 반전, 반권위주의, 인간존중 등이고 그의 그림엔 비판 정신이 생생하지만, 동시에 허를 찌르는 위트와 은유, 휴머니즘이 넘친다.
그는 예술이 돈으로만 평가받는 것에 대하여 비판적이며 예술은 가진 것이 많지 않아서 불안한 자들을 편안하게 하고 지위와 돈과 권위로 행복을 사려는 자들을 불안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가 10여년 전 영국 빈민촌 이동식 주택에 시리즈로 스프레이 그림을 그렸는데 그것이 유명해져서 살려는 사람들로 넘쳐나자 500배가 넘은 가격에 팔리므로 결국 모빌홈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이 큰 덕을 보게 되었다.
그는 자기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데 기발한 유머 감각과 신랄한 현실 비판이 담긴 그래피티로 더 유명해져 가는 얼굴없는 예술가이다. 2018 년 10월에는 그의 유명작품 <풍선과 소녀>가 소더비 경매에서 140만 파운드에 팔릴 때 그의 그림이 액자뒤에 설치된 파쇄기에 의해 찢어지는 사건이 발생했는데 뱅크시 스스로 인스타 그램에 자신의 계획이었음을 밝혔다. 뱅크시는 자기가 몇년 전에 그 그림에 파쇄기를 설치했다고 밝히며 ‘파괴하고자 하는 욕구도 창조적인 것이다’ 는 피카소의 말을 인용했다. 그의 기행은 스스로 쓰레기 같다고 생각하는 그림을 비싼 값에 사는 미술시장에 대한 비판이요 돈을 신처럼 섬기는 현대 사회에 대한 조롱이었다. 오일 경기가 나빠 풀이 죽은 텍사스에 이번 성탄절에 그가 산타처럼 찾아와서 우리의 상식을 깨는 멋진 벽화를 하나 선물하고 갔으면 좋겠다.
조의석 목사
우드랜드 빛사랑교회 담임목사, 수필가.
저서: 수필집 <블루보넷 향기>(2010), 시집 <거듭남>(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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