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고백은 시편 23편 다윗의 찬양 가운데 고백이고 또 작가인 정연희 권사가 그의 동명 소설에서 쓴 주인공 맹의순의 고백이기도 합니다. 항상 평안해서 이런 고백이 나온 것은 아닙니다. 때로 사망의 골짜기를 다닐찌라도 주의 보호하시는 손길을 느끼고 원수의 목전에서도 내게 상을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나 커서 흘러 나오는 감사의 고백입니다.
청년 맹의순은 부유한 장로의 아들로 태어나 조선 신학교를 다니며 남대문교회 전도사로 섬기던 중 6.25전쟁이 발발하고 인민군 패잔병으로 오인을 받아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갇히게 됩니다. 자기도 포로 신세였지만 북한과 중공군 포로들을 돕고 부상자들의 병간호를 위해 밤낮없이 봉사하고 씻기면서 복음 전파에 힘썼습니다. 늘 찬송을 부르고 시편 23편을 외우면서 자기 몸을 돌보지 않고 희생하던 그는 결국 과로로 쓰러집니다.
처음에는 말도 통하지 않고 의심하고 멸시하던 중공군 포로들은 그에게서 참된 천사의 모습을 보았노라고 고백합니다. 한 손에는 성경책을 들고 늦은 밤 병실을 찾아와서 고통에 시달리던 환자들의 손과 발을 씻어주고 잘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기도하고 나즈막히 찬송하는 그가 다녀가고 나면 고통이 사그러들고 천사가 만져준 것 같은 포근함을 느꼈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젊은 그 청년을 맹의순 선생이라 불렀습니다. 밤 2시 늦은 시간에 찾아와서 마지막 환자를 다 씻기고 일어난 선생은 눈물을 닦을 생각도 하지 않고 시편 23편을 우리말로 더듬더듬 읽어 주셨습니다. 다 봉독하신 뒤 높은 곳을 바라보시며 다시 한번 말씀하셨습니다.“ ‘내 잔이 넘치나이다.’ 우리는 다 그의 얼굴을 보며 그 말씀을 따라 외었습니다.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내 잔이 넘치나이다.’ ”
휴스턴에 극심한 한파가 지나간 오후 후배들 몇 명에게서 카톡이 왔습니다. 추위에 집에 전기나 물이 없어서 고생하지는 않았는지 묻고 자기들은 고생했지만 오히려 평소에 당연하다고 생각하던 것을 잃고 나서야 주어진 것을 감사하게 되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아무 일이 없어서 늘 평안해서 사업이 번창하고 자녀가 자랑할 만큼 잘 되어서만 내 잔이 넘치나이다고 고백하는 것은 아닙니다.
고난을 지나고 나면 작은 것에도 그리고 당연한 것에도 감사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아침에 고구마 한 개와 커피 한잔의 가벼운 아침 식사를 하면서 감사하고, 코로나가 나를 비껴간 것만도 감사하고, 교회에 적은 숫자가 모이지만 고난을 뚫고 모여 예배드리는 것이 기뻐서 마음으로 내 잔이 넘친다고 고백합니다. 내일 아침이면 다시 거저 주실 따뜻한 햇빛과 돈을 지불할 필요가 없는 풍성한 산소와 마음대로 쓸수있는 물을 주신 이에게 저절로 감사가 나옵니다. 주여 내 잔이 넘치나이다.
작가 정연희도 평탄하지 않은 굴곡진 삶을 살았습니다. 이혼을 한 뒤 10년 동안 많은 작품을 집필하고 간통죄로 고소된 뒤 말씀을 통해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습니다.
정 작가는 얼마전 인터뷰에서 자신을 키운 것은 고통이란 이름의 양식이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이내 그는 ‘고통의 동아줄’은 짐승의 우리에 떨어지지 않도록 자신을 지켜준 ‘은총의 동아줄’이었으며 하늘로 이어진 ‘은혜의 탯줄’이었음을 전 인생을 통해 깨달았다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은 고통 가운데서도 넘치는 생명의 잔을 들 수 있습니다.
조의석 목사
우드랜드 빛사랑교회 담임목사, 수필가.
저서: 수필집 <블루보넷 향기>(2010), 시집 <거듭남>(1991)
832-212-3339
Ischo61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