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은 전세계가 코로나19 바이러스를 통해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미국 내에만 하더라도 백만명 이상이 코로나 바이러스에 걸려서 고통을 겪고, 이 중에 많은 사람들이 생명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또한 간접적이지만 코로나 바이러스를 통해서 경제 활동을 하지 못해 가게의 리스비를 비롯해서 물건 값을 계산하지 못하고, 가정의 필요한 것들을 구입하지 못해서 어려움을 겪고 계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평소에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갈 수 있었던 식당은 To Go 밖에는 되지 않고, 기분 전환이라도 하려고 가던 쇼핑몰도 문을 닫고 자주 드나들던 마켓은 마스크로 중무장을 하고 다른 사람들이 가까이 오는 것을 최대한 눈치껏 피해가면서 필요한 것들만 구입하고 나와야 되는 일상의 삶을 보내고 있습니다. 불과 한 두달 전만 하더라도 상상을 하지 못하던 모습들이 우리가 지금 보내고 있는 일상의 모습일 것입니다.
‘이러한 시기를 우리들은 어떤 마음을 가지고 보내야 될 것인가’라는 생각을 하며, 무엇보다도 이런 환경에 대해 두려워하는 생각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1347년 경부터 중세 유럽에는 흑사병이 유행을 해서 이천만명 이상이 목숨을 잃게 됩니다. 시간이 흐른 다음 죽은 사람들을 역학 조사해 보니 흑사병으로 인해서 죽은 사람보다 ‘두려움’으로 인해서 죽은 사람이 더 많았다는 것입니다. 흑사병이 유행하게 될 때 비슷한 증상을 보이는 사람에게 ‘너 혹시 흑사병 아니야’라고 하면 너무 두려운 나머지 집 안으로 들어가서 나오질 않고, 음식을 먹지 못하고, 활동도 하지 못하게 되어 면역체계가 약해지면서 다른 합병증으로 죽은 사람들이 흑사병에 걸려서 죽은 사람보다 많았다는 것입니다.
분명 코로나 바이러스는 우리에게 큰 위기를 가져다 주는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위기’라는 말을 바꾸어 말하면 ‘기회’라고 할 수 있듯이 우리 안에 두려워 하는 마음을 제거하고 다시 한번 우리 환경을 정리한다면 분명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교회를 개척하고 유학생들을 위한 교육 센터를 짓는 과정에서 리모델링만 하면 되는 건물을 구입하여 어느 건축 업자를 통해 리모델링 공사를 하게 한 적이 있습니다.
세 달이면 끝나야 되는 공사가 2년이 넘게 걸리게 되었고, 결국은 법정 소송까지 가게 되는 상황을 맞이하게 되고 교회는 다시 개척 교회 수준으로 거의 모든 성도님들이 나가는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법정 소송을 진행하는 중에, 용서를 구하는 건축업자를 보면서 환경과 제 마음에는 용서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지만 그럼에도 목사이기에 억지로 용서를 해주었습니다.
보통의 상황이라면 이렇게 힘들고 어려움 속에 용서를 해주면 나머지 일들을 잘 풀려야 되는데, 법정 소송을 마무리 한지 얼마 되지 못해서 짓다가 만 교육 센터가 홈리스들로 인해서 불이 나게 되고, 하루 아침에 감당할 수 없는 금전적인 손해를 보게 되었습니다. 말 그대로 앞을 봐도 뒤를 봐도 좌우가 모두 막힌 상황이었습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내려 놓고 싶은 심정이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말씀데로 문제보다 크신 하나님, 우리의 환경보다 크신 하나님을 바라보게 되니 두려워 하는 마음보다는 이 환경, 상황 가운데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가’에 대한 마음이 들게 되었습니다.
환경에 대한 두려움보다 이 환경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가에 대한 기대감을 갖게 되었을 때, 감당할 수 없는 것처럼 느껴졌던 어려움들을 잘 뚫고 나올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이야기 중에 영국까지 살아있는 청어를 옮겨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영국의 북해에는 청어가 많이 잡히지만 성질이 급한 청어는 육지에 도착하기도 전에 다 죽어버리기 때문에 제값을 받기가 쉽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 어부는 싱싱항 청어를 육지까지 살아있는 채로 가지고 와서 큰 돈을 벌고 있었습니다. 그 비결은 청어를 잡은 통에 메기를 한 마리씩 집어 넣는다는 것입니다. 물론 결과적으로 몇 마리의 청어는 메기에게 잡혀 먹히게 되지만 나머지 청어들은 통 안에서 메기를 피해 이리저리 다니다 보니 육지에 도착할 때까지 싱싱하게 살아있다는 것입니다.
메기라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서 우리에게 피해를 줄 수 있지만 잘 생각해 보면 우리 안에 잃어버린 것보다 아직 남아있는 것, 회복해야 할 것이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시각을 잃어버린 것에 두지 마시고 아직 남아있는 것에 둔다면 우리는 두려움을 떨쳐버릴 수 있고 코로나 19로 인한 위기의 시기를 잘 보낼 수 있을 것입니다.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고린도후서 1:3~4)
2020년 4월의 어느 날 서재에서
사랑의 교회 담임 목사 최재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