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y 변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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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한국 방문 때 친정 부모님과 저녁식사 후 둘러 앉아 드라마를 본 적이 있었다.
눈물 콧물 흘리게 만드는 막장 드라마를 보다가 장난기가 돌아 얼른 뒤를 돌아보았다.
친정 엄마가 울고 계시겠지 했는데 웬걸 엄마는 무덤덤하셨고, 오히려 옆에 계신 아버지를 놀리셨다. “아이고 당신 울어?” 이 말에 얼른 아버지 얼굴을 보니 정말 눈이 벌게지셔서 입술까지 실룩거리며 연신 눈물을 닦고 계신 것이 아닌가. 나는 기막힌 드라마의 결말 보다 아버지 눈물에 더 울음이 북받쳤었다.
자식들이 바깥세상에서 머뭇거릴 때 늘 든든한 버팀목이 돼주셨던 분 아니었던가? 어떤 어려움에도 의연하셨던 분이 그깟 주말 드라마에 눈물을 흘리시다니…많이 심약해지셨구나. 새삼 늙어버린 아버지를 확인한 참 서글펐던 그 때였다.
한인사회는 음력설이 지나면 바로 일상으로 돌아가는 편이지만, 아시안 커뮤니티는 2월 한 달 내내 음력설 행사가 이어진다. 샌안토니오에서 30년간 조행자 고전무용단(The Jones Korean Dance Group)을 이끌어오고 있는 조행자 단장은 최근 한 무대에서 눈물을 쏟았다. 2월1일, 6일, 12일 연달아 음력설에 맞춰 주류사회의 공연 요청에 방송국과 쇼핑몰 무대, 컨벤션센터 대형 무대에 이르기까지 여러 공연들을 강행군했다. 코로나19 중에도 집을 오픈하면서 수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지만 막상 무대에 오르게 되었을 때는 대부분 흩어진 다음이었다. 몇몇 제자들을 모아 무대에 같이 오르거나 혹은 곁에 남은 제자의 북 장단에 맞춰 80대의 조행자 단장 홀로 춤을 추었다.
12일은 샌안토니오 다운타운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TMEA(Texas Music Educators Association) 클리닉/컨벤션 마지막 날이었고, 최종 All-State 그룹에 선발된 텍사스 내 최고 수준급 학생들이 초대되어 다양한 클리닉과 콘서트에 참가하고 있었다. 공연 의뢰는 지난 해 4월 받았지만 공연을 하루 앞둔 리허설에서 비로소 배경 음악이 ‘아리랑’임을 알았다고 한다. 외국학생들이 연주하는 아리랑에 맞춰 즉흥적으로 춤사위를 펼쳤다. 리허설 직후 많은 학생들의 박수 속에 지휘자가 포옹해주었을 때 와락 눈물을 쏟았다. 갑자기 찾아온 추위에 하루 종일 벌벌 떨기도 했고, 여러 제자들과 함께 무대에 올랐으면 더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 그리고 앞으로 얼마나 더 무대에 설 수 있을까 하는 마음들이 한꺼번에 덮치면서 괜스레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고 했다. 공연날에는 후반부로 갈수록 빨라지는 음악을 맞추느라 애를 먹기도 했으나, 수백 명의 관중들은 기립박수로 예의를 표했고, 공연 후 TMEA 측에서도 음악교사들과 부모, 학생들의 피드백이 좋았다는 인사말과 함께 2023년 컨벤션에서 난타 연주를 해주었으면 좋겠다는 의사도 전해왔다.
“울다가 웃다가 하는 것이 코로나 탓인지 나이 먹은 티를 내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하소연 섞인 근황도 듣고 있지만, 각종 유명 페스티벌에서 아직도 조행자 무용단을 찾고 있다는 자긍심이 있으니 아직은 감사의 눈물이 맞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