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기고 (詩) – 이사라(등단 시인/수필가)
봉숭아 꽃
아주 오래전 내가 어렸을 때
우리집 꽃밭에 다닥다닥 붙은 봉숭아 꽃에는
동네 계집아이들의 붉은 꿈이 매달렸었지
검은 망토 걸치고 지팡이를 멋드러지게 올리듯
짚고 다니는 할아버지 한약방에서
소금덩이 같은 백반 사다
봉숭아꽃과 같이 넣고
동그랗게 모여 앉은
아이들의 꿈부스러기도 넣고
콩콩 찧었지
분꽃잎에 얹인 헝겁 조각에
질적하게 이겨진 봉숭아꽃 위에
손톱 맞추어 정성스레 감싸고
실로 칭칭 감아
조심스레 이불 밖으로 두손 내놓고
빠알간 물들기를 소원하며 잠들었지
일찍 잠이 깬 아침
손가락 조여 얼얼해고
더 기다리는 동심
눈 비비며 모두 모여
손가락 펴보이며
붉게 물든 손톱보고
하나같이 행복헤 했던 어린 시절
손톱엔 빨간 물이
가슴엔 파란물이 든
그 친구들 보고파
앞이 흐리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