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사스한인침례교협 산증인 이용봉 목사 40여년 목회 은퇴
2번의 은퇴와 2번의 떠남이 남긴 깊은 울림

By 변성주 기자
kjhou2000@yahoo.com
지난 11월 29일(일) 센트럴 텍사스의 작은 소도시에 있는 코브한인침례교회에서 담임목사 이·취임식이 있었다. 올해 창립 39년을 맞은 코브한인침례교회는 13년 담임목회를 끝으로 은퇴하는 이용봉 목사의 이임식과 제 8대 담임 김상수 목사의 취임식을 가졌다.
코브한인침례교회는 남침례교단의 전형적인 소형교회로 어스틴 북쪽에서 약 60마일, 킬린에서는 10마일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해있다.
향년 84세의 이용봉 목사는 팔순이 넘어서까지 목회 현장에 있었고, 강산도 변하는 10년이 훌쩍 넘도록 성도들과 희로애락을 같이 해왔던 터라 이민교회 성도들에게는 담임목회자 이상의 아버지와 같은 존재였을 것이라는 짐작은 틀리지 않았다.
이날 이·취임식 순서 중 환송 및 환영사를 맡았던 코브한인침례교회 박정인 집사는 “교회 성도들의 이름은 물론 손자손녀 직계가족들의 이름까지 다 기억하며 새벽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호명해가며 기도해주셨던” 영적인 아버지 이용봉 목사, 사모와 전도사로서 헌신적으로 1인 2역을 해왔던 이경자 사모님, 그리고 부모님의 목회 사역을 위해 기도와 물질로 힘을 보탠 4명의 자녀들에게 일일이 감사 인사를 전했다.
교회 부임 이후 휴가 한 번 제대로 가지 않고 강단을 지켜오면서 교회 안팎 구석구석 손길 닿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매만지고 고치고 손질해온 자리들, 처음 부임하여 심은 감나무들이 해마다 추수감사절이면 풍성한 열매를 맺어 강단과 성도들의 가정까지 한 봉지씩 손에 쥐어 주셨던 따스한 기억들도 고이 간직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누구도 정리하지 않은 교회 역사자료들을 모두 정리하고 재정부터 행정적인 정리정돈까지 말끔히 해놓으셨고, 특히 후임 목회자가 오면 고생할까 교회에 필요한 것 하나라도 더 마련해놓고 떠나시려고 애쓰시던 모습은 잊을 수가 없다”며 구구절절 아쉬움과 존경을 전했다.
갈보리침례교회 개척부터 21년여 시무
이용봉 목사는 휴스턴 교계와도 인연이 깊다. 휴스턴 갈보리침례교회(담임목사 두지철)를 개척하고 21년 6개월 시무하며 지금의 교회 부지를 구입해놓고, 새성전 건축과 입당의 역할은 2대 목회자에게 넘겼다. 2007년 8월 은퇴하여 원로목사로 추대 받았지만, 후임자의 소신 있는 목회를 위해 은퇴 다음날 바로 휴스턴을 떠났다. 본지와의 통화에서 “71세에 은퇴하여 다시 목회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는 이용봉 목사는 그러나 담임목회자가 없었던 코브한인침례교회에서 다시 만 13년간 담임목회자로 사역했다.
그는 휴스턴 갈보리침례교회와 코브한인침례교회에서 두 번의 은퇴, 두 번의 원로목사 추대, 그리고 두 번 모두 이임 직후 곧바로 가족 같은 성도, 교회, 거처를 뒤로 하고 떠났다. “왜 저라고 정들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나 하루아침에 리더십이 바뀌는데 후임자의 리더십을 위해선 미련 없이 떠나야한다며 “애착은 갖되 집착은 안 된다”는 노(老) 목사의 소신에는 일절 변함도 일말 후회도 없어보였다.
이용봉 목사는 텍사스 한인침례교회협의회의 산증인이기도 하다. 미 남침례회 한국총회 제 12대 총회장을 역임했고, 교단장기발전 특별정책위원장으로 만 5년간 연구 활동을 했으며, 친교 모임 형식이었던 교단 총회를 사업 총회로 바꾸고 유급 전담 총무제를 도입하는 등 교단 개혁에도 앞장서왔다.
이제 그의 여생은 가족적으로 선교활동을 해오며 설립한 ‘광야의 소리 선교회’에 에너지를 쏟을 예정이다. ‘광야의 소리 선교회’는 목회자 자녀들의 교육을 재정적으로 후원하고 농어촌 교회 목회자들을 돕는 일 등 힘이 닿는데까지 선교 전반의 일을 해나갈 계획이라고 전했다.
이용봉 목사는 떠난 사람, 내려놓은 사람이었으나 그가 지나간 자리는 부흥했으며 열매가 풍성한 모습으로 그를 기억하고 있었다.